'아무것도 하지 말고 온전히 쉬세요'라는 조언

내가 멈춰선 자리

by 글터지기

지난해 첫날부터 매일 새벽 글을 발행해 왔습니다. 9월부터는 겁도 없이 종이책을 발간해 보겠다고 용을 쓰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12월부터 전자책 발간으로, 새해에는 각종 완독 챌린지에 참여하며 시간을 쪼개고 아끼며 살아왔습니다.


8년쯤 전에 머릿속에 '미상의 혹'이 있다는 걸 알고, 평생 혹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던 시간이 조금 있었지만 마음에 한이 남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퇴원하면서 마음에 새긴 다짐이 바로 '하루도 허투루 살지 않겠다'였습니다.


매일 배송 노동을 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빚을 청산하겠다며 배달대행을 겸해 온 시간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인생 자체가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군에서 3월 31일에 전역하고 4월 1일에 서울 의료기기 업체에 근무했고, 4월 30일 업체를 그만두고, 5월 1일부터 지금 배송하는 일을 시작했으니, 마음 편하게 쉬어 본 적 없이 살아온 느낌입니다.


최근 부쩍 할 일이 많아서 부담스럽다고 생각해 왔는데, 멘토이신 '사랑주니'님께서 그런 제 모습을 보고 조언해 주셨지요.


"종이책이고 나발이고, 2주간 좀 쉬세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글도, 책도 손에서 놓으시고 편안하게 휴식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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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오전 배송만 있는 화요일이기 때문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오늘은 실컷 쉬어봐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배송을 하면서도 오늘은 어떻게 쉬어볼까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어떤 게 쉬는 거지?'에 생각이 미쳤다는 겁니다. 막상 '쉬어 봐' 하니까 '어떻게?'가 떠오르는 형국입니다.


'퇴근하면 여유 있게 커피 한 잔 하고, 책을 좀 여유 있게 읽어보고... 음... 커피 한 잔 하고.. 책은 읽지 말고 쉬자고 했으니까 빼고...음... 커피 한 잔 하고...음....'


결국 퇴근해서 미뤄두었던 차량 엔진오일과 정기점검을 하고, 그 사이에도 토지 책을 가져가서 대기실에서 읽고, 캐나다에서 온 조카의 여권을 대신 수령하고, 매장에 납품이 있다고 미리 물건을 가져다 달라고 해서 가져다주고 이제 집에 들어왔습니다. 커피 한 잔 하러 간다는 건 귀찮아서 패스. 에라이 한심한 놈아.


그 시간에도 제가 생각했던 '쉼과 휴식'은 무엇일까를 생각했습니다. 결국 쉼이라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굳이 무엇을 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려면 그 '불안'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먼저, 스스로 매일 새벽 글을 발행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자. 그래서 브런치북 연재를 '매거진'으로 바꿨습니다. 새벽 글을 쓸 수 있는 여건이라면 쓰고, 일상 글은 매거진에 부담 없이 쌓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두 번째, '보기에 좋더라' 하는 일은 그만 두자. 예를 들면, 완독 챌린지에 원고지 필사가 그렇습니다. 원고지에 필사하며 글을 쓰는 느낌과 만족을 높여보자는 취지는 좋았으나, 숙제처럼 하게 되는 일은 책을 읽고 마음에 남기겠다는 애초의 의도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그만 내려놓으려 합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을 쓰고 모바일 환경을 고려해서 보기 좋게 편집하는 것은 이제 그만두겠습니다.


세 번째, '나만의 온전한 휴식'을 찾아야겠습니다. 쉬어 본 놈이 쉴 줄 안다고, 이제 빚도 청산했고 수입도 온전하게 내가 운영할 수 있을 정도면 된 거니까 한 달에 한 번은 여행이나 휴식을 즐길 줄 알아야겠습니다. 그래도 꼭 하고 싶은 일은 독서하는 즐거움을 놓지 않으려 합니다. 더해서 글 쓰는 즐거움도 그렇겠지요. 그렇다면 휴식과 하고 싶은 일을 적절하게 조절해야겠습니다.


아이러니한 건, 이렇게 써놓고 보니 오늘도 휴식은 물 건너갔습니다. 하하하. 하지만 제게는 무척 의미 있는 하루였습니다. 오늘 쉼은 제 삶의 속도와 습관을 정직하게 들여다본 것이 더욱 의미 있는 게 아니었을까.


아직은 멈추는 법 보다 움직이는 법이 더 익숙한 사람이고 '쉬는 것'을 '시간을 허비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라는 걸 확실하게 깨달은 날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오늘의 휴식은 제대로 누리지는 못했지만 '왜 휴식을 못하고 살아왔는지'를 이해하게 된 날입니다.


이 정도면 꽤 잘 쉰 거라고 스스로 토닥여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