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8년 4월 18일, 남연군묘 도굴 미수 사건

by 글터지기

1868년 4월 18일, 충청도 덕산에 위치한

남연군의 묘가 외국인에 의해

도굴될 뻔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조선 후기 외세의 압박과

내부의 불안정한 정세가 맞물린 가운데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잡고

강력한 쇄국정책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천주교 탄압과 외국 선교사 처형 등으로

서양 세력과의 갈등이 깊어지던 시기였고,

조선은 외부와의 접촉을 극도로 제한하며

내부 질서를 유지하려 했습니다.


이 틈을 노린 인물이 바로

독일 상인 에른스트 오페르트였습니다.


그는 조선에 억류되거나 처형된 선교사 문제를 빌미로,

흥선대원군을 압박할 방법을 찾다가

그의 부친 묘를 도굴해 협상 카드로 삼으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오페르트 일행은 무장한 채

남연군묘를 파헤치려 했지만,

지역 주민과 관군의 강한 저항에 부딪혀

결국 실패하고 도주하게 됩니다.


이 사건은 조선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왕실과 관련된 묘까지 노린

외세의 행동은 단순한 침입을 넘어

국가의 존엄을 위협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계기로 외세에 대한 경계심은 더욱 강해졌고,

흥선대원군은 쇄국정책을 한층 더 강화하게 됩니다.


남연군묘 도굴사건은 조선이 외세와

본격적으로 충돌하기 시작한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이후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등이 이어졌습니다.


* 이미지 출처 및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남연군묘 도굴 미수 사건'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8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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