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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인프라 투자 DNA

김신곤 (2024.11)

by 김정덕

1. 경부고속도로 인프라 투자

1.1 들어가며

인류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발명 가운데 하나인 인공지능이 우리 사회 전반의 변인으로 작용하면서 ‘지능화 사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역사적 대전환기에는 국가별로 승패와 부침이 갈리게 마련이다. 이번 전환은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고, 그 중심에는 데이터와 AI가 있다. 데이터와 AI는 국가 사회 전반에서 혁신을 견인하는 원동력으로서 이는 곧 국가의 역량으로 직결되는 등 전략적 가치가 높다.

역사적 대전환기의 길목에서 ‘앞으로 갈 길이 궁금하면 지난 온 길을 돌아보라’고 한다. 여러분은 무엇이 보이는가?

인프라(Infrastructure)는 다른 말로 ‘사회간접자본 (Social Overhead Capital: SOC)’이라고도 한다. 기업이 직접 자본을 들여 구축하는 시설은 아니지만 국가가 대신 설치하고 그 수혜는 기업과 국민이 골고루 받는다는 점에서 그렇게 부른다. 다시 말해 인프라는 경제와 사업이 지속적인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초 시설을 의미한다. 국가의 가장 대표적인 인프라로 고속도로를 들 수 있다. 제대로 된 인프라는 사회 전체의 효용을 높이고 사회의 발전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발전하는 나라가 꼭 구축해야 할 ‘통과의례’와 같은 것이다.

1.2 경부고속도로 신화 탄생

대한민국의 근대화·산업화와 고도 경제성장을 이끈 대표적인 인프라는 고속도로였다. 국토의 대동맥인 고속도로는 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 개통을 시작으로 지난 54년 동안 전국 곳곳을 연결하며 각종 산업의 발달과 지역개발 촉진, 생활권 확대 등 대한민국의 고도 국민경제 성장을 이끌었다.

고속도로 건설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기획 초기에는 건설 타당성 및 기여도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확신이 부족해 국내는 물론 외국 기술진들 마저 회의적이어서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야당을 중심으로 지식인과 언론의 반대론은 나름대로 논리와 이유를 갖추고 있었고 여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건설계획을 밀어붙였다. 무엇보다 그는 경부고속도로를 자신의 캐치프레이즈였던 ‘조국 근대화’의 상징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1964년 서독의 본-쾰른을 연결하는 아우토반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시속 160km로 고속도로를 달렸다. 번듯한 도로에 큰 감명을 받은 박 대통령은 중간에 몇 번이고 차에서 내려 아우토반을 둘러보았다. 엎드린 상태에서 바닥에 뺨을 맞대고 모난 곳 없이 평평한 도로의 포장상태를 살펴보았다고 한다. 이처럼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아우토반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실제 자금 조달과 건설은 대한민국의 자체 역량으로 이루어졌다. 세계은행을 포함한 국제 금융기관들의 지원 거절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독일 차관을 받아 이 대규모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지금으로부터 54년 전인 1970년은 한국 현대사, 특히 경제사에서 뜻깊은 해였다. 그해에 포항제철이 기공식을 열었고,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됐다. 1970년 7월7일 준공된 경부고속도로는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인프라 사업으로 마침표를 찍으며 오늘날까지 퇴색하지 않는 ‘신화’를 낳았다. 이를 건설함으로써 한국 경제는 오랜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 눈부신 발전의 길로 접어들었고, 우리 힘과 우리 기술로 이루어낸 하나의 기적과도 같은 대역사였으며, 당시 반대 여론과 반발이 컷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영단으로 관철한 결과 이제는 아무도 그 타당성을 의심하지 않는 신화가 되었다.

전 세계 바다에 떠있는 선박 절반이 ‘메이드 인 코리아’요,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이 세계 선두권을 달리며, 한국 무기를 앞다투어 사가는 오늘의 강한 수출제조업 경제는 경부고속도로 인프라를 바탕으로 1970년대에 박 대통령이 중화학 공업 육성을 목표로 철강·비철금속·기계·조선·전자·화학 6개 분야에 집중 투자한 결과다.

2. 인터넷 인프라 투자

2.1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 정보화 캠페인

꼭 30년 전인 1995년 우리는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정보화 캠페인으로 여야를 초월한 인터넷 보급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냈다. 1996년에는 초등학생에게 인터넷과 컴퓨터를 가르치는 키드넷(KidNet) 운동도 일어났다. 밑으로부터의 정보화를 확산하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유치원 학생들을 가르쳐야 되겠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2.2 사이버코리아 21계획 (1999)

우리 정부는 IMF경제 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된 1999년부터 초고속 통신 인프라에 본격 투자했다. 초고속 정보 통신망은 정보화 사회로 가는 인프라였기 때문이다. 25년 전, 우리 정부는 당시 새롭게 떠오르는 디지털 경제에서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하여 ‘사이버 코리아 21′이라는 계획을 통해 전국적 광대역 인터넷 접근성을 확대하고 새로운 광섬유 네트워크와 이동통신 기술과 같은 인터넷 인프라에 약 28조원을 투자했다.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인터넷 강국으로 발돋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정보화 인프라 기반을 산업화하기 위하여 전통 산업에 IT를 접목시켰다. 조선, 자동차, 철강 산업 등에 IT가 녹아들었다. 정보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이버 코리아 21’ 계획을 기반으로 대한민국은 IT 강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이다.

2.3 '디지털 커넥티비티'로 패러다임 전환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앞서 투자한 인프라, 도로에 대한 패러다임도 바뀌고 있다. 도로가 물리적인 공간을 연결하는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도로 자체가 디지털 망으로 발전한다. 사람이 업무·회의·여행할 때 이동하기 위해 지나치는 곳이 도로였으나 이제는 도로 자체가 서비스 공간이 된다. 도로 위에서 원격회의를 하고 영화를 보는 등 여가생활을 즐기는 시대가 온다. 도로 네트워크가 디지털 커넥티비티(connectivity)로 전환되는 것이다. 완전 자율주행자동차가 달리는 도로의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도로를 데이터 도로로 바꾸는 인프라 구축 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도로가 차와 사람이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고 공유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자율주행과 안전운전을 위한 지능형교통정보체계(C-ITS : Cooperative-Intelligent Transport Systems)도 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50여년 전 고속도로 인프라 투자에 더하여 25년전 정보 인프라를 구축한 사례에서 국가의 발전과 번영에 ’인프라가 알파이며 오메가’라는 진리와 믿음을 실제로 증명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인프라 투자 DNA에 깊이 새겨 넣었다. 대한민국은 앞선 두(2)번의 결정적인 인프라 투자로 70년 전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에서 오늘날 세계의 반도체 시장과 AI 등 디지털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대기업들과 활발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보유한 글로벌 기술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3. 한국의 AI 리더십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AI)가 경제, 산업, 안보, 문화를 비롯한 사회 전반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문명사적 대전환을 경험하고 있다. AI는 단순한 기술 진보가 아니라, 마치 ‘전기’처럼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경제, 사회, 국가 안보를 형성할 혁신적 기반 기술(Enabling Technology)로서 산업 전반에 막대한 전후방 효과를 주고 있다. AI는 이제 명실상부한 게임 체인저이다. AI가 국가 역량과 성장을 좌우하고 경제안보의 핵심이 되는 시대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AI 전환을 통한 ‘국가 대개조’가 우리 미래의 명운을 결정할 것이다.

이번 대문명 전환기의 중심에는 데이터와 인공지능(AI) 혁명이 있다. 세계 주요 국가들은 AI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주도권 선점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전 세계 국가의 AI(인공지능) 투자규모에서 미국 비중이 60%를 넘는 압도적 1위이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인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MS)·메타·알파벳의 2024년 자본지출 규모가 2000억달러(약 276조원)를 돌파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는 전년 대비 42% 늘어난 규모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값비싼 엔비디아의 최첨단 AI가속기를 경쟁적으로 구매하고, 데이터 센터 증축 등에 천문학적 돈을 투입했기 때문이다.

주요 AI 투자국 중에서 한국의 경우 상위 10개국엔 들지만, 실제 AI 투자 액수는 주요 AI 강국에 비해서는 크게 열세이다. AI 기술 발전의 핵심인 고성능 반도체와 데이터 처리 비용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수반되지만 우리나라는 국가 차원의 투자가 이를 따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미국이 2040년 도달할 인공지능(AI) 수준을 우리가 달성하려면 447년이 걸릴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국과 미국 간의 AI 기술 격차가 발생한 원인으로 느린 투자 속도와 인프라 부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인프라 부족은 AI 기술 개발과 산업적 적용을 어렵게 만들고 국가 경쟁력에 치명적인 문제가 되어 대한민국의 산업·경제적 미래를 위협할 수 있다.

AI 분야의 국제적인 경쟁력을 말하자면 한국은 잠재력이 좋은 나라이다. 왜냐하면 전 세계에서 구글에 대항하는 어떤 검색 서비스를 갖고 있는게 중국, 러시아, 한국 밖에 없다. 우리는 엄청난 대용량 데이터를 다뤄본 경험이 있고 학습시킬 수 있는 풍부한 학습 자료도 갖고 있다. 현재 생성형 AI 시스템이 학습한 데이터는 보통 문서 5조 개 정도이다. 그런 대용량 데이터를 다뤄본 경험이 없는 나라는 데이터가 있어도 생성형 AI 시스템을 못 만든다. 대용량 분산 처리가 보통 고급 기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 기술을 갖고 있다.

더구나 네이버, LG가 내놓은 거대 AI가 나름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시점에서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인터넷 초창기에 네이버가 검색을 하지 않았으면 지금 지위를 가질 수 있었을까? 처음 초창기에 카카오가 메신저를 만들지 않았으면 지금 지위를 가칠 수 있었을까? 신기술 시대가 도래하였을 때 인프라 투자와 선점 효과(first mover advantage)는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다.

현재 전 세계가 생각하고 있는 AI란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 시스템이다. 이 생성형 AI는 최근 질문에 대해 답을 그대로 내놓는 방식이 아닌, 추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가진 획기적인 모델로 진화하고 있다. 진정한 ‘지능의 시대’ 문턱에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곧 다가올 ‘지능의 시대‘에 디지털 기술이 가져다 줄 번영의 혜택을 온전히 누리고 세계의 모범이 되는 디지털 강국으로서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AI 인프라는 여전히 중요하다.

기술은 우리를 석기시대에서 농업시대로, 그리고 산업시대로 이끌었다. 컴퓨터와 인터넷 시대를 거쳐 데이터와 인공지능이 만드는 ’지능의 시대‘로 가는 길을 여는 것은 AI 인프라이다. 즉 AI 혁명의 미래가 AI 인프라의 확장에 달려 있다. AI 혁명을 가속하기 위해 필요한 AI 인프라는 크게 다섯(5) 부문으로 나눌 수 있다. ① 데이터 인프라(예: 데이터 센터 등), ② 컴퓨팅(파워) 인프라(예: GPU 등), ③ 에너지 인프라(예: 발전 시설 등), 이를 연결하는 ④ 네트워크와 같은 물리적 인프라(예: 5G특화망(Private 5G)), 그리고 ⑤ AI 인재(예: AI 교육 등)가 그것이다.

우리에겐 인프라 투자에 대한 DNA가 있다. 대한민국이 55년전 도로 인프라에 투자하고 25년전 인터넷 인프라에 투자, 구축하므로써 오늘 디지털 기술의 선두 그룹으로 나설 수 있었듯이 이제 AI 인프라에 투자하고 전 세계에 ‘지능의 시대‘에 공동 번영의 길로 가기 위한 모범적인 디지털 국가 모델을 구현하여 보여줌으로써 다른 나라도 따라올 수 있도록 글로벌 AI 리더십을 보여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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