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해법을 찾다 (25.06)
최근 사이버 보안 분야에서는 두 가지 상반된 철학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신뢰'를 바탕으로 직원의 자율성과 책임을 강조하는 ‘인간 중심 보안(People-Centric Security)’이고, 다른 하나는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모든 것을 검증하는 ‘제로 트러스트(Zero Trust)’입니다. 이 둘은 언뜻 보기에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현대 조직이 갖춰야 할 필수적인 상호 보완 관계에 있습니다.
인간 중심 보안은 직원을 잠재적 위험 요소나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대신, 신뢰를 기반으로 한 '보안 파트너'로 인식하는 접근법입니다. 이 전략의 핵심은 직원에게 자율성과 책임을 부여하여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보안 문화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이고 엄격한 통제보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제시하고, 직원들이 상황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도록 유도합니다. 이러한 '신뢰' 중심의 문화는 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헌신을 이끌어내 보안 수준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는 '신뢰하되 검증한다(Trust But Verify)'는 패러다임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반면, 제로 트러스트는 "절대 신뢰하지 말고, 항상 검증하라(Never Trust, Always Verify)"는 원칙에 기반한 보안 아키텍처입니다. 내부 네트워크든 외부 네트워크든 모든 접근 요청은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사용자의 신원, 기기 상태, 위치 등 다양한 요소를 지속적으로 인증하고 검증합니다. 내부자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권한만을 부여하고, 모든 활동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여 위협을 탐지하고 대응합니다. 이 모델에서 '신뢰'는 제거해야 할 취약점으로 간주됩니다.
기존의 경계형 보안 모델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클라우드와 원격 근무 환경에서, 제로 트러스트는 모든 접근 요청을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철저히 확인하는 강력한 방어 체계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많은 조직이 그 중요성을 절감하면서도 도입을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막대한 비용과 복잡성이라는 높은 장벽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로 트러스트를 기존 업무 환경에 통합하는 데 따르는 높은 비용과 기술적 복잡성은 경영진의 동의를 얻기 어렵게 만드는 주요 장애물로 꼽힙니다. 이로 인해 제로 트러스트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실제 구현 사이에는 상당한 격차가 발생하며, 전면적으로 도입한 조직은 소수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제로 트러스트 아키텍처를 구현하기 위해 기존의 모든 인프라를 한 번에 교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비용과 복잡성을 관리하며 점진적으로 보안 수준을 높이는 전략적 접근이 필수적입니다. 이를 위해 마이크로세그멘테이션(Micro-segmentation)이 우선적으로 수행되어야 합니다. 이는 네트워크를 작고 격리된 구역으로 나누어, 만약 한 곳이 침해되더라도 공격자가 다른 시스템으로 이동(횡적 이동)하는 것을 차단하는 기술입니다. 전체 네트워크를 뒤엎지 않고도 핵심 구역부터 분리 및 통제할 수 있어, 비교적 적은 비용과 노력으로 제로 트러스트의 기초를 다질 수 있는 효과적인 출발점입니다. 이를 통해 가장 중요한 데이터와 자산을 우선순위로 정해 단계적으로 보호 대상을 넓혀가는 명확한 로드맵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위와 같은 기술적, 전략적 해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제로 트러스트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역할이 결정적이며,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 중심 보안'과의 상호 보완 관계가 빛을 발합니다.
제로 트러스트는 '기술적 안전망', 인간 중심 보안은 '문화적 기반': 제로 트러스트는 "절대 신뢰하지 않고, 항상 검증한다"는 원칙 아래 모든 접근을 통제하는 강력한 기술적 토대입니다. 설령 직원이 실수를 하거나 계정이 탈취되어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합니다. 반면, 인간 중심 보안은 직원을 통제 대상이 아닌 '신뢰하는 보안 파트너'로 인식하고, 교육과 긍정적 소통을 통해 보안 의식을 내재화시키는 문화적, 전략적 접근입니다.
비용 효율성 극대화: 잘 훈련된 직원은 피싱 메일을 스스로 식별하고 의심스러운 활동을 먼저 보고하는 등, 고가의 보안 솔루션이 탐지하기 전에 1차 방어선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는 잠재적 위협의 수를 줄여 제로 트러스트 시스템이 처리해야 할 부하와 운영 비용을 자연스럽게 감소시키는 효과로 이어집니다. 즉, 사람에 대한 투자가 기술에 대한 투자의 효율을 높이는 것입니다.
'검증 피로감' 완화와 조직 문화 융화: 제로 트러스트의 엄격한 인증 절차는 사용자에게 불편함을 주고 업무 효율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하지만 보안 의식이 높은 직원은 위험한 행동을 할 가능성 자체가 낮아, 불필요한 경고나 추가 인증 절차를 마주할 일이 줄어듭니다. 또한, 직원들이 보안 정책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조직의 보호 노력에 공감대를 형성하면, 기술적 통제에 대한 거부감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제로 트러스트 아키텍처의 높은 비용과 복잡성은 이 전략이 틀렸다는 신호가 아니라, 기술만으로는 완전한 보안을 이룰 수 없다는 증거입니다. 가장 현명한 해법은 강력한 제로 트러스트 기술을 단계적으로 도입하며 안전망을 구축하는 동시에, 신뢰와 교육에 기반한 인간 중심 보안 문화를 조성하여 조직 구성원 모두를 능동적인 방어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기술이 흔들리지 않는 울타리를 세우고, 그 안에서 사람이 주체적으로 보안을 실천할 때, 비로소 비용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진정한 의미의 '디지털 신뢰'가 완성될 것입니다. '믿지 않음'을 전제로 한 기술과 '믿음'을 기반으로 한 문화의 결합, 이것이 바로 복잡한 디지털 환경에서 조직을 안전하게 지키는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