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동거에서 최고의 파트너로
조직 내에서 컴플라이언스(Compliance)와 보안(Security)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어려운 관계로 여겨지곤 합니다. 한쪽은 법규와 규정이라는 ‘지켜야 할 규칙’ 목록을 들고 있고, 다른 한쪽은 시시각각 변하는 ‘실질적인 위협’을 막아내야 하는 방패를 들고 있죠. 이 둘 사이의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는 생각보다 많은 조직에서 벌어지는 익숙한 풍경입니다.
규정을 지키기 위한 서류 작업에 인력이 묶여 정작 중요한 보안 강화에 소홀해지거나, 보안팀이 시급하다고 판단한 조치가 규정 우선순위에 밀려 지연되는 일. 이러한 내부의 마찰은 단순히 부서 간의 불편한 관계를 넘어, 조직 전체를 취약하게 만드는 숨겨진 리스크가 됩니다.
이 두 팀의 갈등은 왜 생길까요? 컴플라이언스는 ‘정해진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역할에 가깝습니다. 감사에서 지적받지 않고, 규정을 100% 준수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반면, 보안은 예측 불가능한 ‘야생의 위협’으로부터 조직을 지키는 역할입니다. 공격자는 정해진 길로 오지 않기에, 보안팀은 늘 새로운 위협에 대비해야 합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언어와 목표를 가진 두 팀이 각자의 사일로(Silo)에 갇혀 일할 때, 조직은 ‘보안을 위한 보안’, ‘규정을 위한 규정’이라는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이는 결국 중복 투자, 비효율적인 자원 낭비, 그리고 실제 위기 상황에서의 대응 능력 저하로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을까요? 해법은 이들을 ‘통합된 하나의 관점’으로 묶어내는 데 있습니다. 컴플라이언스와 리스크 관리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규정 준수가 곧 실질적인 보안 강화로 이어지고, 보안 활동이 자연스럽게 규제 요건을 충족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두 팀을 한 회의실에 앉히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조직의 ‘위험 지도’를 함께 그리고, 모든 활동이 ‘안전하고 신뢰받는 조직’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하도록 방향을 재설정하는 일입니다. 이를 통해 조직은 단순한 방어 태세를 넘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회복탄력성’을 갖추게 됩니다.
통합적 접근법은 이론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미 많은 기업이 이를 통해 실질적인 가치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금융 분야: 한 글로벌 은행은 자금세탁 방지 규정을 단순히 지켜야 할 의무로 보지 않았습니다. 규제 데이터를 리스크 분석 시스템과 통합하여 의심스러운 거래 패턴을 실시간으로 감지하는 데 활용했습니다. 그 결과, 규제 준수는 물론, 금융 범죄를 선제적으로 차단하여 고객의 자산을 보호하고 기업의 신뢰도를 높이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의료 분야: 민감한 환자 정보를 다루는 대형 병원은 개인정보보호 규정(HIPAA)을 병원의 핵심 리스크 관리 체계에 녹여냈습니다. ‘규칙이니까 지킨다’가 아니라, ‘환자의 안전과 신뢰가 최우선’이라는 원칙 아래 데이터 접근 통제를 강화하고 직원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이는 값비싼 소송과 과징금을 피하게 해준 것은 물론, 환자들이 믿고 찾을 수 있는 병원이라는 명성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조직의 컴플라이언스와 리스크 관리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요? 다음의 4단계를 통해 간단히 점검해볼 수 있습니다.
1. 알아보기 (Learn): 우리 자신을 알자
우리 조직이 직면한 가장 큰 리스크는 무엇인가? 과거에 어떤 보안 사고나 규제 위반이 있었는가? 우리의 고객과 임직원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모든 변화의 시작입니다.
2. 방향 잡기 (Align): 같은 곳을 바라보자
컴플라이언스와 보안팀이 각자의 목표가 아닌, ‘안전한 비즈니스 성장’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정렬되어 있는가? 모든 정책과 절차가 이 목표를 지원하도록 설계되었는가? 역할과 책임이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는가?
3. 실행하기 (Perform): 계획을 현실로 만들자
보안과 규정 준수가 일부 전문가의 일이 아닌, 모든 직원의 일상 업무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가? 기술 도입뿐만 아니라, 사람 중심의 보안 문화를 구축하기 위한 지속적인 교육과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가?[1][2] 계획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4. 돌아보기 (Review):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나아가자
우리의 노력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정기적으로 측정하고 있는가? 새로운 위협이나 규제 변화에 맞춰 우리의 전략을 유연하게 수정하고 있는가? 성공과 실패로부터 배우고 개선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는가?
컴플라이언스와 보안의 불편한 동거는 더 이상 숙명이 아닙니다. 이 둘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것은 비용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것을 넘어, 예측 불가능한 위기 속에서 조직의 생존력을 높이는 핵심 전략입니다. 특히 인공지능(AI)과 같은 신기술이 보안의 지형을 바꾸고 있는 오늘날, 이러한 통합된 기반 없이는 새로운 기술의 잠재력을 온전히 활용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이 모든 노력은 ‘신뢰’라는 하나의 단어로 귀결됩니다. 고객의 신뢰, 시장의 신뢰, 그리고 조직 구성원 간의 신뢰. 이 신뢰를 단단히 구축할 때, 컴플라이언스는 더 이상 귀찮은 족쇄가 아니라 조직을 미래로 이끄는 든든한 전략적 자산이 될 것입니다. 지금, 당신의 조직은 최고의 파트너와 함께 미래를 향한 여정을 떠날 준비가 되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