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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일철 Jul 03. 2024

직장인의 로망? 한자와 나오키

직장인 시절 내 로망 상사 무릎꿇게 하기를 실현시켜준 드라마

나의 첫 회사는 좋소였다(해당 글자를 순화해서 썼다). 

늘 책임 회피하는 상사, 임원, 난무하는 비리, 가벼운 것부터 시작해 무거운 성희롱, 

실적 안 좋다 하면 개인 선풍기도 못 쓰게 하는 회사 분위기, 

복도에서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 가는 모습을 회장님이 보고 

사원들을 빨리 걷게 하기 위해 설치된 걸음 측정기…


쓰고 나니 더 가관이군. 늘 육두문자를 달고 살았고 회사가 싫어서 미칠 것 같았다. 

그저 매일 회사를 욕하고 여길 탈출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부장급부터는 도대체 어떻게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거지 라는 강한 의문이 들 정도의 사람들뿐이었고 분해서 미칠 것 같은 마음을 

아침 조례 때 가운데 손가락으로 안경을 올리는 것으로 대신할 정도였다. 


그만큼 회사생활에서 회사 사람들의 존재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아마 나의 직속 상사나 팀장이 정말 

존경할 만하고 좋은 사람이었다면 그걸 자양분으로 삼아 거지 같은 회사 분위기를 조금 더 참고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여기 함께 일하고 싶은 상사 1위의 자리를 연신 차지하는 배우가 있다. 

‘사카이 마사토’라는 배우인데, 그가 맡았던 드라마의 역할 때문이다. 아예 캐릭터가 다르긴 한데 

우리나라로 치면 최수종이 영원히(?) 장군과 왕만 맡을 수밖에 없다든가? 또는 남궁민의 캐릭터성이 굉장히 짙어 늘 엉뚱한 직장인, 마이웨이 캐릭터로 나온다든가? 이런 식으로 드라마 역할이 너무 강력해서 약간은 

굳어버린 감이 있을 정도다. 그가 출연한 드라마의 제목이 바로 '한자와 나오키'다. 


 일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하다. 그 정도로 유명하고 시대를 휩쓸고 간 명작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최종화의 시청률은 말라 비틀어진 일본 TV 시장에서 42%를 기록할 정도였다. 최종화가 방영되는 그 시각 고급 온천 스파에 줄지어진 안마 의자에 앉은 중장년의 남성들의 안마 의자 앞 모든 스크린이 한자와 나오키로 뒤덮여 있는 사진이 트위터에서 화제가 됐었다. 패배감에 익숙해진 일본 국민들의 가슴에 사랑의 불꽃이 아닌 야망의 불을 지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일단 주인공 한자와는 아주 매력적인 인물이다. 처음엔 이런 상사를 만나고 싶다고 느꼈는데 

사실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 모두가 꿈꾸는 인물상인 것 같다. 사람을 대할 때 강강약약의 태도, 

자신의 정의를 절대 굽히지 않는 굳은 의지, 상사에게 이 모든 걸 해결하면 나에게 사과하고 무릎 꿇으라며 

무례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지만(물론 일본답게(?) 말투는 매우 정중하다), 

집에 들어가면 살짝 토라진 아내 앞에 털썩 무릎 꿇고 앉아 아내를 달래는 다정함도 지닌 캐릭터다. 

그리고 상사에겐 파워 당당, 부하 직원들에겐 책임감 있고 늘 격려해주고 모범을 보이는 배울 점이 많은 상사다. 어딘가 평범한 듯 보이지만 사실 절대 찾을 수 없는 신기루와 같은 타입이다. 

 

한자와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모토로 삼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당한 만큼 갚아준다, 곱절로 갚아주마’가 단골 대사다. 평소에 순한 양 같은 눈을 하고 다니는 한자와지만, 복수를 외칠 때 부당한 일을 겪을 때 본인 또는 부하직원을 권력으로 찍어 누를 때 등등 이런 일이 있을 땐 아주 무자비하고 무섭게 돌변하며 숨이 막힐 정도로 하나하나 잘잘못을 짚어대며 눈을 치켜 세우며 상대를 몰아세운다. 그래서 한자와 나오키 드라마에선 남자들이 참 많이도 운다. 기뻐서도 울고 패배감에 울고 자신의 자리를 보전해 안도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매력적인 요소가 팡팡 터지는 드라마다. 

 

한국에서 이 드라마에 대해 주목한 부분은 복수극이었다. 

예로부터 복수는 인기 주제 중 하나였고, 인생을 살다보면 알게 모르게 한 번쯤은 

복수심에 불타오른 적이 있을 것이다. 한자와의 아버지는 나사공장을 경영했는데 도산 위기에 몰렸고 은행에서 대출을 모두 거절 받았고 그 좌절감에 자살을 했다. 이에 한자와는 그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은행 소굴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고자 결심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자와 나오키는 복수극이 아니라 소명의식을 강조한 사회 생활을 보여주는 드라마라고 본다. 우리는 사실 취업 준비 때만큼은 그 회사에 들어가길 간절히 바라고 원하지만 막상 들어가면 간절했던 마음은 다 잊어버리고 권태기에 빠져 만연해진 자신을 만나게 된다. 또는 퇴사를 한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나 역시 퇴사했다!) 


한자와라는 캐릭터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열쇠는 단연 ‘사람’이다. 

부정을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사실 파악을 하고 이를 폭로하기도 하지만! 

정말 은행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대출과장으로서 대출 서류를 준비해주고 도와주겠다는 태도로 사람들을 대한다. 그러면서 은행원으로서 마땅한 태도를 보인 것을 계기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얻기도 한다. 일본에는 은행과 관련해 ‘맑은 날에 우산을 빌려주고 비 오는 날에 우산을 거둬간다’라는 말이 있다. 한자와는 이 말을 늘 가슴 한 켠에 두고 필요한 날에, 비가 몰려오기 전에 우산을 빌려주고자 노력한다. 그는 은행이 제 기능을 함으로써 사회에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함께 부흥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 드라마를  여러 번 보면서 느낀다. 사실 한자와 나오키는 보면 볼수록 ‘망할 상사 무릎꿇게 하기’라는 사이다 복수극이라기 보다는, 내 직업 즉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얼마만큼의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드라마라고. 물론! 무릎 꿇게 만드는 그 장면, 정말 압권이다. 복수의 대상인 임원의 삐죽삐죽 튀어오를 것만 같은 신경질적인 에너지, 무릎 한 쪽 한 쪽에서 느껴지는 굴욕감! 크으, 그 장면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를 악 물고 지켜봤을 거다(적어도 나는 아랫입술이 아플 정도였다). 


이렇게 한자와와 함께 눈을 뒤집으며 복수극에 몰입하는 것도 좋지만 그가 그로 인해 얻어내는 사회적 가치, 

그리고 소명의식 실현, 정말 사람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은행원으로서 취하는 행동에 대해서 주목해 보자. 복수의 통쾌함보다 분명 더 큰 울림이 있을 거다. 


중간중간 유머도 있지만 진지할 땐 늘 미간에 내천(川)자를 그리고 있는 한자와 나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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