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일. 30년이 흐른뒤 https://www.youtube.com/watch?v=A1L2xODZSI4
1990년도 또 2012년도에 액티브했던 밴드. 당시 CERN 연구자 남자친구를 둔 비서 셋이서 만든 거라고 했다. 2012년도에는 무려 앵콜공연도 해주셨다.
you never spent night with me 로 시작해서 you only love your collider 로 끝난다 ㅋㅋ 처음알게 됐을 때도 웃겨서 저장해둔 동영상인데 2015년도에 세명의 대학원생이 만든 cern의 새로운 밴드를 보았다.
30년 후가 흐른 뒤, 과연 비교할 만하다. 나와 밤을 보내는데도 관심없고 only love collider 라 문제라던 ㅋㅋㅋ 귀요미 white man engineer만 얼굴을 비추던 90년도의 영상과 달리 2015년에는 아시안 히스패닉 러시안 유러피안 여성과 남성이 함께 나온다. 클린룸에서 손흔드는데 빵터졌닼.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이 30년 전의 그들과 다를바 없이 한결같이 너디하게 귀엽다 ㅋㅋ. 앞으로 30년 후엔 어떤 세상이 올까? 가끔은 궁금하다.
2. 8일.
15년도 가을 어느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멈추면 무섭다. 상공 15미터 벽 위의 길을 찾아나설 땐 생각보다 높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멈추먼 무섭다. 쉬는 것과 멈추는 건 다르고 그래서 흐름에 맞게 길을 찾고 쉬고 또 나아가고 하는것이 중요한 가 보다. 크게 다르지 않은 것들.
오늘도 그런 생각을 했다. SV와 요새 합이 정말 잘 맞는다. 자주가야 일주일에 한번, 한달에 3.7번 정도 가는 셈인데 그래도 미세하나마 늘고 있다. 서로 우리 더 자주와야 한다고... 말하지만 주 일회 이상은 무리ㅠ 재정적으로.
올라가면서 다음 홀더에 막힐 때마다 이 운동을 시작하고 몇년 째 똑같은 생각을 한다. 헉. 못잡겠어. 할 수 있을까? 뒤를 돌아보면 그제야 높이를 인지하고 식은땀이 난다. 그 순간의 두려움과 망설임을 이겨내는 동작은 생각보다 한끝차이. 놀라울 정도로 웬만한 건 다 잡을 수 있다. 그렇지만 매번 새로운 못할 것 같은 돌이 나타나면 나는 헉, 할 수 있을까? 못잡겠어. 혼잣말을 한다. (이 운동의 묘미는 바로 그 점이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을 이겨내는 것)
한국에선 그래서 나는 다음단계를 잡을 수 있는 자신감이 확실히 생길 때까지 이전 코스를 몇십번이고 답습하는 등반자였다. 다르게 말하면 성실이지만 안 좋게 말하면 겁보였다. 이전 코스가 몸에 익고 익어서, 충분한 자신감이 생겼을 때야 새로운 코스를 도전하곤 했다. 도전적인 동작을 하지 못해서, 마음의 자신감을 위해 몸을 트레이닝했다.
그렇지만 만 5년, 6년차 아마추어클라이머인 난 이제야 등반이란(또한 살아가는 것도) 내가 자신감을 충분히 가질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살아간다는 건 푹신한 아래 매트가 있는 같은 동작을 몇십번이고 답습해볼 수 있는 공간의 암장이 아니라 상공 15미터를 자일에 매달려 매번 새로 길을 찾아나가야 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결국은 눈딱감고 일단 해보는 것.
3. 제주에 온 예멘 난민이 화제였다. 어떤 미디어에서는 난민 한명 한명을 인터뷰하더라(보진않았다).놀라웠던 건 다른 문화권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와 무시, 또 분노.(AfD의 대부분이 못생기고 알코홀릭에 아무도 사랑해주지않는white old 들이야라고 짜증내던, 내가 너 말좀 심한거 아니니? 되묻자 그래도 어쩔수 없어 사실이거든! 하고 말해준 블라블라카 차주를 생각하면 나는 세상에 빚을 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 21.07,18). 브렉시트도 과거의 영광을 못잊는 노인네들의 입김 때문이라며 젊은 세대로부터 욕먹었고, AfD도 사랑받지못하는 늙은이들 때문이라는 의견과 달리 교육받은 젊은 세대의 목소리일 줄 몰랐다. 하기야 소녀시대 팬이었던 한 친구는 트와이스가 처음 나왔을 때 외국인 멤버가 너무 많다며, 미스 동남아냐고 정이 안간다고 했었다. 당시 2초 고민했다. 연을 끊어버릴까. 현재 트와이스는 명실상부 케이팝 아이돌의 한 축이다.
동시에 사회적인 인프라가 우리와 다른 문화와 경제를 고려하여 그들이 새로운 사회 적응에 어려움이 없지않도록 잘 구성이 될지 사실 믿음이 안 가는 게 사실이긴 하다.
유럽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테러들은 사실 무슬림을 믿는 불특정 난민의 사건이 아닌 사회적응도에 실패한 특수성을 보이는 사건이었다. 뿐더러 조직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의 가담자들은 대체로 이미 서구 사회에 대해 익숙한 그 일원 때로는 1.5세대나 2세대, 나아가 되려 전통적인 무슬림 문화권에서 자랐다고 하기엔 어려운 유러피안 국적의 젊은이었다.
한국의 독실한 기독교 친구들만큼이나 가까운 무슬림 친구들이 많은 나는 솔직히 말해 종교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에 대한 미미한 거부감과 동시에 호기심이 있다. 까닭에 종교에 무지한 만큼 다양한 종교에 관심이 간다.
크리스마스엔 성당에서 미사를 봤다. 주변에 기독교에 대해 고민하는 모태신앙 친구들이 많았다. 얼마전에 한 이는 한국 교회가 지닌 갖가지의 시스템적인 문제를 감안하여도, 혼란스럽거나 회의하더라도 자신은 세계 어디의 교회에 들어가면 안정감을 느끼더라 했다. 그것은 아마도 이 커뮤니티가 함께 가지는 공동의 가치가 때문인거 같아 란 말을 했는데, 난 그렇게 생각해본 적도, 실제로 다수의 타인과 같은 가치를 공유한다는 안정감을 느껴본 경험도 없어서, 인상적이었다. 함께 연구실썼던 이는 꽤 종교적인 편이라 집회가 열리는 목요일에는 버스안 하교길서 코란 말씀을 읽어보곤 했는데 내가 옆에서 무슨 문장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해석해주는 말도 못 알아들어서 도대체 그게 무슨 말..? 인 표정으로 허공을 떠돌면 걔 원래 그런 애 아닌데) 인자하게 웃었다. 얼마 전엔 몰몬교 미셔너리 팀(사실 요새 종교란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종교를 가질까에 대해 좀 꽂혔다)을 만났다. 그들에게 나는 종교자체에는 관심이 없지만, 어떻게 종교를 가지는지에 대해 궁금해 라고 말했더니 그게 바로 우리가 미셔너리 활동을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trial시련을 극복하기 위해서 혹은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 같은 의지적인 행동을 보면 때론 내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보다 더 나은 것 같아, 모든 순간을 의지있게 살아가기란 넘 힘든데..ㅠ.. 하여 리스펙하는 구석이 있다. 결국 살아가는 자세라는 것이 같다면, 혹은 내가 원하는 자세로 살아갈 수 있다면, 종교를 가지는 것이 더 나은 길 아닐까. (난 좀 망나니같이 살아가는 모양......;)
종교의 철학 및 가치관이란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해석하는 법에 따라 달라진다. 한국 사회는 놀라울정도로 정말 빠르다. 겨우 일 하기 시작한 정부가 안정되기도 전에 다문화에 대해 고려야한다니.외국인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다문화 사회의 일원인 한국인 유학생 사회도 문명화 덜 되었던데. 인종차별적 발언부터 시작해 유러피안을 만나는 한국인에 대한 편견, 은연중에 깔려있는 사대주의. 솔직히 이 한민족 사회, 서로 다른 용모와 문화를 백그라운드로 하는 다문화가 안정될 수 있을까? 이 부분만큼은 회의적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난민에 대한 혐오가 얼마나 말이 안되고, 또 말이 되고 안되고를 떠나 페미니즘처럼 또 동성 결혼의 합법화처럼 육아하는 아빠처럼 매우 유연하게 진화하는 인류에게 당연한 흐름이란 걸 알맞게 표현해야하는지 시간 들여 쓰지 않아 아직은 미완성이지만 천천히 쓰겠습니다. 오랜만에 페이스북 둘러보다가 짜증이 나서 일기를 써버렸다.
4. 노트북 키보드에 노란색 포스트로 이것저것 써서 붙여놓는데 읽고싶은 책이 생각날 때마다 써놓는다.
약 6개월간 쌓인 목록을 업데이트. 영미권과 독어권 중 꼭 마음에 드는 것은 요샌 아마존 장바구니에 대신 담아놓는 다른 버릇도 생겼다.최근에 쓴 것들은 아래와 같다.
.... (비공개)
뭐 사기도 읽기도 쉽지않겠지. 아주 게으르게 말해보았다.
5. 7월 8일
첫째주 주말에 만난 사람들 못생긴 도시 Stuttgart
완전한 4명의 타인을 Sh과 만났다. 친구는 러브콜을 두 군데에서 받았는데 그 두 사람이 데려온 각각의 친구를 포함해 만났다. 자본주의의 중심에서 일하는 C와 드레스덴에서 온 국제구호 센터에서 일하는 J를 만났다. 서로다른 극과도 같이 다른 일의 정체성을 가진 두 사람은 여러모로 대조적이었다. (2차세계대전 잔해를 쌓아올려 기존의 높이보다 더 높은 곳이라고) 야산에서 뒤에서 edm틀고 히피히피하게 레이저 나무에 쏘는 청년들을 배경으로 야경보다가 들어갔다. 돌아가는 길엔 반딧불이를 봤다. 대전 학교의 노천극장이 기억이 났다.
조금은 아쉬웠는데 아쉬워야 또 만나지.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길 하기엔 입이 아팠다. 할당된 말할 수 있는 능력치를 다 써버렸지. 초면임을 감안해도 놀라울 정도로 많은 이야기들을 했다. 사실 안지 얼마 안된(정도가 아니라 초면인) 사람들과 이런 주제의 이야기들을 흡입력있게 나눌 수 있을진 몰랐다. 앞으로 나누게 될 의견들이 참 궁금하다. 슈트트가르트에 대한 인상이 매우 좋아짐.
6. 14일.
13년도에 읽은 이원재교수님의 일베에 대한 글이다. 일베는 12년도 13년도에 꽤 많이 구설수에 올랐다. 사회는 이 세력이 온라인의 한계를 넘어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그 때 읽은 한 기사에는 아래와도 같은 문장이 있었다.
"일베회원이 조직화되기 위해서 분노 뿐만이 아닌 리더쉽이 필요한데, 신원이 공개되면 극단적인 발언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일베의 구조에선 리더쉽이 나타나기 어렵다."
그 후의 시간이 증명해주는 바이다. 일베는 절대 한국사회에서 어떤 방향성을 가지는 목소리를 내고 그것을 주장하는 무브먼트로 형성되지 못했다. 잔잔한 잡음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여전히 생각한다.
이제까지 워마드는 여성형 일베와도 같이 묘사됐다. 한국의 페미니즘 흐름을 부정하는 이유가 되거나 혹은 잘못된 페미니즘의 예시가 되는 워마드는 일베와 비교(차이점 아니고 같은 점을 주목)하는 형세였다.
그렇지만 얼마전 천주교의 성체를 훼손한 사진이 올라왔다.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워마드는 과연 페미 일베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지, 우리는 그저 이것을 혐오의 한 종류에 지나지 않으며 쓸데없는 남녀싸움에 지나지않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폭력성을 어쩌면 이해할 수도 있겠다 였다. 이해해 줘야한다가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이해할 수는 있다. 지지하지는 않지만 이해할 수는 있다.천주교 커뮤니티에서 자라 그 가치를 향유해온 사람이 아니라면 이 같은 행동에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동시에 그 파장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온라인 세상 뒤에 숨은 한 사람의 특정 종교를 지목한 분노는 그 종교와 무관한 자의 방향없고 충동적인 분노라 여기긴 힘들었다. 그 종교 커뮤니티의 일원인 본인 내부에서 어떤 갈등이 있지않고서야 이런 행동이 가능할까 싶었다. 후에 워마드는 불태워버리겠노라는 잘못된 폭력의 형식을 빌려 인터넷에 모자이크된 사진 한장 이상의 목소리를 냈다. 그것은 종교집단을 향한 임신 중절에 대한 목소리였다.
일베와 달랐다. 방향도 목소리도 있었다.
후에 이런 글을 전혜정교수님의 페이스북에서 읽었다.
"종교적 억압에서 비롯된 여성의 퍼포먼스는 사실상 매우 전통적이며 오래된 형식이다. 물론 이 글을 쓴 자는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이 방식의 존재를 인정한다 하여 이것을 지지하거나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이 사진과 목소리에 상처 받은 천주교신자들의 마음을 함부로 여기고 싶지 않다.
나 역시 만약에, 코끼리를 학대하는 사진이라든가 고래를 학살하며 목소리를 냈다면 고통스러워 논의하기조차 꺼릴 것 같다. 그렇지만 코끼리와 고래는 인류 여성의 임신 중절 여부에 대해 관여하지 않으므로 워마드의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수단으로 사용되진 않을 것이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현재 온라인의 워마드를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아님, 극단적이고 선정적인 예, 여자 일베 정도로 치부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내는 목소리와 그리고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며 또 폭력적인 방식만을 빌려 익명 하의 낼 수 밖에 없는 목소리의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하는 시점이 온 것 같다.
종교 사회의 지도자 및 구성원 역시 마찬가지다. 예멘 난민 뉴스로 많은 사람들이 무슬림이 여자를 억압하지 않는 종교인지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미 익숙해있는 기존의 종교 사회는 어떠한가. 어떠한 형태의 억압도 존재하지 않던가?
라고 썼지만 후에 홍성수교수님께서 쓰신 글을 읽었다. 종교를 가지지않은 사람으로서 오만하게 함부로 지껄이지 말아야겠단 생각을 했다.
"물리적 방해 행위가 아니라면 법적 개입이 필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어떤 종교이든 다른 종교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것 또한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적인 룰이다. "성체"라는게 비천주교도들에게는 우습게 보일 수 있지만, 천주교도들에게 성체는 신앙의 모든 것이나 다름 없고 존중받아야할 신앙의 핵심이다."
살짝 대충 썼다. 다시 열심히 써야할 필요가 있는 일기.
7. 24일. 그를 추모하면서.
강한 의지로 살아가는 사람은 살아온 것과 같은 이유에서 죽음을 선택한다는 생각을 또 했다. 까닭에 그가 살아가며 엄격히 지킨 것들은 그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살아있는,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에게 긴 길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