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과 닮아 있는 우리, '오페라'라는 문화

오페라 <리골레토>를 보고

by 뚠구름잡는얘기

*본 글에는 오페라 <리골레토>에 대한 대략적인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과거 속 시대를 살아간 그들과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닮아있다. 과학적 발명과 발전,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삶의 방식과 모습은 달라졌지만 근본적인 생각과 가치, 이념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과 비슷한 주제를 고민하고, 비슷한 문제로 갈등하며, 비슷한 가치에 공감한다. 이는 곧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수세기 전 그들의 문화를 통해 바라본 삶의 모습이 오늘날 현대인 삶과 닮아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문화를 통해 관찰할 수 있다. 나는 오늘 오페라라는 문화의 분류를 통해 그들이 살던 시대를 경험해보고자 한다. 오페라 <리골레토>를 통해


문화란 무엇일까

오페라를 통해 과거의 문화를 살펴보기 위해서 우선, 문화가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문화를 나타내는 'Culture'는 라틴어의 'Cultus'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이는 ‘밭을 갈아 경작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는 이러한 의미에 착안하여 문화를 인간의 영혼을 돌보고 다스린다는 의미로 전용시켰다. 이후 푸펜도르프는 문화를 과학․예술․문학․지혜․진리 등을 돌본다는 개념으로 확대하였다. 이는 키케로의 정의에서 살펴볼 수 있는 개인의 영혼 수련이나 인간의 고양된 상태를 설명하는 것과 같은 한정된 의미에서 과학과 예술, 문학과 같은 사회적인 작용과 맥락으로 확대․발전되었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후로도 문화의 개념은 지속적으로 확대․발전되어왔다. 현대 인류학자 에드워드 타일러는 ‘넓은 민족지적 의미에서의 문화 또는 문명이란 지식, 인식, 예술, 도덕, 법, 관습, 그리고 기타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간에 의해 획득된 모든 능력과 습관들을 포함하는 복합적 전체이다.’라고 설명한다. 문화란 사람들의 가치, 인식, 세상에 대한 인식 등으로 구성된 것이며, 이러한 요소들이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공유된 인식이 다시 사회적 행위에 반영되어 전체 사회 구성원들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는 구성원들에 의해 유지되고, 지속적으로 계승되며, 발전해나간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화에 관한 담론 과정을 통해 살펴본 문화를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나는 문화란 ‘개인들이 모인 집단에서 공통적으로 공유되는 가치와 인식이 반영된 물질적․관념적 결과물과 이를 공유하고 살아가는 모든 생활양식’이라 정의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문화에는 시간이 지남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계승, 유지, 발전되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보자. 오페라는 문화일까.

오페라는 집단에서 공통적으로 공유되는 가치와 인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예술이다. 관념적인 결과물이며, 한편으로는 물질적인 결과물이기도 하다. 우리는 오페라 속에 담긴 생각을 공유하기도 하고, 오페라가 쓰인 대본이나 자료를 공유하기도 한다. 이를 공연을 통해 공유하기도 한다. 과거에 만들어진 오페라는 지금까지 계승되고, 유지되며, 발전하고 있으며 현재 사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는 오페라는 문화인 것이다. 필자는 오페라를 통해 문화체험을 하기로 생각했다. 그리고 여러 작품 중 세계적인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의 작품인 <리골레토>를 선택했다. 문화의 한 분류인 오페라, 그중에서도 공연을 관람했던 오페라 <리골레토>는 무엇인지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리골레토>, 늙은 광대의 슬픔

“제발 소원이오, 늙은 아비에게 딸을 돌려주오. 내 딸이 당신에게는 하잘 것 없으나 내게는 목숨보다 귀하오. 제발 좀 도와주오, 제발.” 한 명의 광대가 다른 남성의 다리를 붙잡고 간절하게 호소한다. 하지만 그 남자는 호소하는 남자를 외면한 채, 다른 무리들과 사라진다. 이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생각나는 말이 있다. “당신이 어느 날 마주칠 불행은 당신이 소홀히 보낸 지난 시간의 보복이다.”라는 나폴레옹의 말이다. 광대가 마주친 불행은 다른 사람들의 소중한 여인들을 하잘 것 없이 생각한 지난날의 보복이었던 것이다.

질다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노래하는 리골레토 출처 : 수지오페라단제공


오페라 <리골레토>는 이탈리아에서 사라진 만토바 궁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만토바 공작은 젊지만 호색한이다. 오직 여인들만을 찾아 나선다. 만토바 공작은 부하들의 딸이나 부인 등 가리지 않고 모두 유혹한다. 그리고 이러한 만토바 공작의 만행을 부추기고 앞장서는 역할은 광대 리골레토가 도맡아 수행한다. 그러자 만토바 공작의 만행에 대한 귀족들의 분노는 리골레토에게 향한다. 귀족들은 리골레토가 아끼고 사랑하는 그의 딸 질다를 납치하여 만토바 공작에게 데려간다. 만토바 공작은 질다를 유혹하는데 만토바 공작의 만행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리골레토는 이에 분개한다. 끝없는 분노를 느낀 리골레토는 만토바 공작 암살 계획을 세운다. 그렇지만 질다는 만토바 공작을 사랑하고 있었다. 질다는 리골레토의 공작 암살 계획을 알게 되자 공작을 살리기 위해 자객의 칼을 대신 맞고 죽음을 맞이한다. 만토바 공작의 시신이라 생각하고 이를 강에 버리려고 했던 리골레토는 자루에 든 시신이 공작이 아닌 자기 딸임을 알게 된다. “죽지 말아라, 불쌍한 내 딸. 죽으면 안 돼, 내 사랑아. 질다! 나의 질다, 죽었네! 아! 저주로다!”, 리골레토의 처절한 절규를 끝으로 오페라는 막을 내린다.


베르디는 <리골레토>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오페라 리골레토는 빅토르 위고의 희곡 <왕의 환락>을 원작으로 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리골레토>는 16세기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와 그의 궁정 광대였던 트리불레를 주인공으로 한 빅토르 위고의 희곡 <왕의 환락>을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가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베르디는 과연 오페라를 통해서 무엇을 전하고자 했을까. 이 오페라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 오페라 <리골레토>는 끊임없는 환락을 즐기는 왕과 광대, 귀족들과 같은 권력자들의 부도덕성과 횡포를 고발하고 신분사회 시스템에 대한 도발적인 비판을 관객들에게 전한다. 이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권력자와 지도자 계층의 부정과 부패를 시민들이 단죄하였던 경험을 바탕으로 시민들 사이에 자리 잡기 시작했던 국가와 정부에 대한 사회비판의식이 나타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권선징악과 애절한 부정(父情)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수세기 전 그들은 사랑을 고민하고, 권선징악을 미덕으로 삼았으며, 부모의 사랑을 노래했다.


다른 시간 속 그들과 우리, 오페라

만토바 공작의 아리아 <여자의 마음>. ㅇㅇ마트 CM송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출처 : 매일경제 칼럼

오늘날 우리는 사랑을 노래한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드라마로도 만들고, 노래로도 만든다. 누군가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면 함께 슬퍼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는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사랑의 감정에서 비롯된 잘못된 선택으로 파멸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뉴스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 현대인들은 사랑에 대해 고뇌하고 고민하며, 사랑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마치 <리골레토>의 질다의 모습과 흡사하다. 그녀는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며 노래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그를 대신하여 죽음을 선택한다. 그녀는 사랑을 선택했고, 스스로의 목숨을 희생하는 파멸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200년 전 작품 속에 등장하는 그녀 질다. 비록 시간이 지났지만 오늘날의 현대인들이 고민하는 것과 똑같은 것으로 고민하고 노래한다. 질다를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이 말하고자 했던 것과, 오늘날의 현대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닮아있다.

<리골레토>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환락을 즐기는 왕과 귀족들, 그리고 그들을 부추기는 광대를 통해서 권력의 부도덕성과 그들의 부패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수세기 전 그들이 말하고자 했던, 비판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오페라에서 나타난 18세기 말의 지배하는 자들의 냉혹함이나 지배받는 자들의 처절함이 지금 현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우리는 곧 느낄 수 있다. 오늘날에도 철저하게 부패한 권력자들의 모습을 직시할 수 있으며 부패한 권력자들의 지배를 받는 민중의 안타까운 모습을 주위에서 살필 수 있다. <리골레토>가 만들어지던 시대와 우리의 시대가 닮아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들이 시대와 나라를 불문하고 어디서나 벌어졌던 과거형이자 이제는 현재형이며, 앞으로의 미래형임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오늘날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가 있다. 바로, ‘출생의 비밀’ 모티프이다. 이러한 극적 전개에 우리는 감탄하기도 하고, 분개하기도 하며, 감정적인 동조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과거에 만들어진 오페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모차르트의 작품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서 우리는 ‘출생의 비밀’ 모티프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시대 사람들 역시 ‘출생의 비밀’이라는 해결방법이 가지는 황당함과 분개, 감정적인 동조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가진 해학적 요소는 오늘날의 우리가 가지는 해학적 요소와 닮아있다.

지금까지 설명한 오페라 작품 이외에도 많은 작품들이 당대 인간이 생각하는 가치와 인식, 그리고 시대적 상황들을 담아내고 있다. 그들이 오페라 속에 담아낸 가치와 인식은 오늘날의 것과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니다. 시대를 거치면서도 여전히 유효한 의미를 가진 가치인 것이기에 당시 시대로 막을 내린 것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계승과 유지, 발전되어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그들이 생각한 가치는 오늘날에도 우리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 보편적 가치인 것이다. 우리는 19세기 만들어진 오페라를 통해 그들의 시대를 보고, 그들의 가치를 생각하고, 그들의 인식을 살필 수 있고, 오늘날의 시대적 가치에 대해서도 통찰해볼 수 있다. 오페라를 통해 살펴본 그들의 모습과 생각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생각과도 닮아있지 않은가. 우리는 발전한 과학기술과 문명에 혜택을 누리며 그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말하지만, 이는 겉모습만 바뀐 것일 뿐이며, 진정한 모습은 아직까지 닮아있다.


그들과 닮아있는 우리, 오페라


오페라는 창작되는 시대의 인간들이 가지는 가치와 이념을 담아내고, 당시의 사람들의 생각과 같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그리고 이를 인간의 목소리로, 인간의 행동으로, 인간이 만들어낸 무대미술로 대중들에게 전달한다. 대중들은 오페라를 통해 그들이 공유하는 가치와 이념을 찾아내고 전달받고 공감한다. 그리고 이를 계승, 보존, 발전시켜나간다. 이러한 과정의 결과로 오늘날까지 오페라는 이어져왔다. 오페라는 인간이 가지는 가치와 인식이 담겨 있는 관념적 결과물 그 자체이자 물질적 결과물인 것이다. 그리고 이를 공유하는 생활양식이기도 하다. 따라서 오페라는 문화이며, 우리는 오페라 속에서 문화를 찾아볼 수 있다.

오페라는 그들의 시대와 우리의 시대의 닮은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문화 매개체이다. 그들은 그들의 시대를 노래했다. 애절한 사랑을 노래하고, 애끓는 부정(父情)을 노래했다. 사회 비판을 담아내기도 했다. 오늘날의 우리는 오페라를 통해 그들의 시대를 여행하고 그들의 노래를 듣는다. 시대는 변화했고 우리의 모습은 달라졌으며 살아가는 방식과 방법도 달라졌다. 교통수단도 발전했고 통신수단도 발전했다.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이 해결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과 닮아있다. 같은 것을 노래하고, 같은 것으로 고민하며, 같은 것을 생각한다. 사랑을 노래하고, 사랑에 절규한다. 부패한 권력층에 분노하고 반복되는 모습에 좌절한다. 그들이 웃었던 유머 코드는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웃음을 전한다. 오페라를 통해 우리는 닮아있는 그들의 모습을 느끼고, 그들과 연결된다. 오페라는 그들과 우리를 이어주는 문화이자 그들의 문화, 우리의 문화인 것이다.

사랑을 고민하고, 사랑에 절규할 때. 누군가가 고민했던 사랑을 느끼고 싶을 때. 오페라를 보라. 오페라는 공연장 너머 당신과 같은 것으로 고민했던 누군가를, 당신과 닮아있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