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기운
살다 살다 이렇게 꽉 막힌 기분은 군입대 전날 이후 오랜만이다.
"기대했던 상황이 물거품이 되니 이후 세웠던 계획은 순식간 파도에 쓸려간다."
살면서 계획이 엎어지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사실 미래를 알 수 없으니 계획이라는 것이 어떤 시기에는 좋은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쓸데없는 삽질에 불과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죽이지 못하는 고난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는 니체의 말처럼 나는 단단해지는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위로하며 살았다. 하지만 계획과 예측이 모두 나를 비웃듯이 뒤통수를 강하게 강타한다. 내가 잘못 결정한 것인가 하는 느낌에 억울함과 속상함이 뭉쳐 답답하다. 가슴을 치며 울고 있는 이들이 이런 심경이구나 싶다.
"다양한 가정을 두고 해결책을 고민했다."
다양한 가정을 두고 플랜 A, B 등을 준비했다. 하지만 나의 플랜들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선행 과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플랜이 발동할 수 없었다. 우주의 기운이 나를 돕지 않는 느낌에 좌절감이 몸을 감싼다. 영화 〈라이온 킹〉(1994)에서 아버지 '무파사'의 죽음에 죄책감에 시달리는 '심바'의 초반 위기 상황과 유사하다. 심바는 어떻게 용기를 내서 위기를 극복했던가 다시 복기해 본다. 과거를 마주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친구들에게 힘을 얻어가는 과정을 통해 심바는 사자의 왕이 되었다.
"현재의 문제를 나름 분석하니..."
단순히 운이 안 좋았던 것이다. 우주의 기운이 나를 돕지 않았던 것이다. 살면서 운이 이렇게 나를 돕지 않는 시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운이 없었다. 무엇이 되려면 운이 따라줘야 한다. 물론 터무니없는 욕심에 운만 바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운이 따르지 않으면 욕심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저 그 자리에 좌절감만 차지할 뿐이다. 복잡한 머리를 단순하게 눈앞에 해결해야 할 것들만 해결하는 방법만 생각하기로 했다. 다양한 대안도 다양한 의견도 있지만 현재는 다 듣어주고 다 비교할 여유가 없다. 너무 다양한 메뉴가 보이는 키오스크에서는 맨 처음 메뉴를 주문한다. 오늘은 거기까지가 나의 최선의 선택이다.
톨스토이 | 산만한 삶에는 몰입이 없다 p.61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고법 하나가 바로 오컴의 면도날 Ockham’s Razor이다. 오컴의 면도날은 중세 시대의 철학자인 윌리엄 오컴 William of Pckham에게서 유래한 개념으로 “설명에 있어서 필요 이상의 가정을 늘리지 말라 Entia non sunt multiplicanda praeter necessitatem”는 원리를 담고 있다. 즉,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가능한 한 가장 단순한 가장 단순한 가설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복잡하게 여러 가정을 유추하기보다는, 가장 간결하고 단순한 설명을 선호하면 어려운 문제도 쉽게 풀 수 있다.
《왜 당신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있는가》(고윤, 딥앤와이드, 2024.03.15.)
꼬인 매듭을 푸는 자가 왕이 된다는 예언에 매듭을 칼로 잘라버린 오컴의 지혜처럼 나도 눈앞의 걱정들을 단숨에 잘라내어 버리고 싶다. 사실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단순화하여 하나씩 해결하다 보면 언젠가 답이 나온다. 그래도 왠지 오늘은 단칼에 단호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욕심이 억울함 뒤에 튀어나온다. 그럴 땐 나의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에게 원기옥을 던지는 상상을 해본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아 나에게 힘을 나눠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