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책 30권을 봐도 몰랐던 '기다림' p.173
“선풍기 전원을 끄더라도 선풍기는 한참 더 돌다가 멈춘다. 화도 마찬가지다.” 93번째로 기록한 노트에 쓴 문장으로 틱낫한의 <화>에 나오는 말이다.
<왜 읽었는데 기억나지 않을까>(남낙현, 씽크스마트, 2019.08.15.)
점심을 먹으면서 팀장님과 이야기를 하는데 거의 대화의 절반 이상은 질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 사람 있잖아. 키가 크고 웃긴. 이름이 뭐더라?"
"그 배우 있잖아. 조연으로 자주 나오는..."
"그 영화 주인공이 누구였더라?"
"그 남자 부인 있잖아. 유명한..."
최근 기억해야 할 것이 많아서인지 기억력이 사라져서인지 기억력이 예전만 못하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사람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금세 끝날 대화가 스무고개가 되었다. 그리고 막상 이름이 생각나면 할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는다. 점점 대화의 속도는 느려지고 대화는 길을 잃어버린다. 어려서 스무고개는 수수께끼로 시간을 보내는 놀이였는데, 이제는 내 삶의 대화가 스무고개가 되어버렸다.
최근 유명 강사의 알츠하이머 고백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노인들의 치매는 많이 들어봤는데, 젊은 나이의 알츠하이머는 스트레스가 원인일 것이라 추정이 되지만 아직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다. 최근 강의는 여전히 유쾌했는데 충혈된 눈이 불안해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자신의 삶을 통해 사람들을 위로하는 모습은 오래 남아 주길. 치료제가 개발되어서 알츠하이머 걱정이 없는 세상이 오길 기대한다.
예전 어머니가 했던 말도 뒤집어 버리고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해서 가족들이 부모님 건강검진에 치매 검사를 함께 했던 일이 있었다. 이모도 알츠하이머로 약을 복용하여 증세를 늦추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우리 어머니도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결과는 기억력이 조금 떨어진 상태일 뿐이라고 해서 안도했다. 되돌아보니 어머니는 자신이 뱉어버린 말을 수습하지 못하면 기억이 안나는 척한 것은 아닌가 싶다. 가끔 너무 확인하려 계속 파 물었나 죄송하기도 했다. 사실 나도 가끔 내가 했던 말이 창피하거나 되돌릴 수 없을 때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우긴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 기억은 잘 못하고 자꾸 까먹는 일이 늘어나겠지. 이제는 멀티태스킹은 무리이다. 분리수거를 생각하면 가방을 두고 나오거나, 짐을 챙기면 핸드폰을 두고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사람은 나이를 들어가면서 기억력은 떨어지지만 이해력은 깊어진다는 위로 같은 말을 들었다.
"앞으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말은 하지 말고, 따뜻한 위로 같은 말을 하는 사람으로 늙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