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내향인
Part 6. Communication
1. 경청
· 경청은 진심에서 시작되고 방법으로 표현된다 p.220
원래 듣는 사람은 듣고 안 듣는 사람은 절대 안 듣는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듯이, 경청은 나이와 크게 상관이 없다. 게다가 "말이 너무 많으면 안 된다. 말하는 양의 두 배를 들어라."라는 탈무드의 이야기도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는 말처럼, 경청은 상대방의 마음을 얻고 그 사람을 당신의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말을 배우는 데는 2년밖에 걸리지 않지만, 경청을 배우는 데는 60년 이상이 필요하다. 어쩌면 그보다 시간이 더 필요하거나 평생을 노력해도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말하기는 자신감이 중요하다면, 경청은 상대방을 향한 진심이 중요하다. 만약 자신은 경청을 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이 경청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면, 이는 그냥 양아치적인 행동이다. 솔직히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것, 경청이란 상대방의 이야기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 그래서 거짓된 마음으로 경청이 불가능하다. 상대방을 싫어하면서 어떻게 상대방의 이야기를 공감하면서 들을 수 있겠는가?
<위로보다 월급이 소중한 직장 생활 2>(INJI, 좋은땅, 2023.10.10.)
나이가 들어가니 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두 유형으로 나뉜다. 호르몬의 영향인지 말이 많아지는 사람도 있고, 묵언수행을 하듯 말이 없어지는 사람이 있다. 말이 많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에너지가 소진되는 느낌이 들어서 개인적으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말이 많은 사람을 피하게 된다. 예전에는 실없는 농담만으로도 하루를 보낼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카프카의 <변신>처럼 벌레로 변하지는 않았지만 점점 말하는 시간도 줄고, 말이 많은 사람을 피하게 되고 내향적인 삶을 살고 있다. 어쩜 어린 시절 나는 내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으면서 외향적인 사람처럼 행동하려던 것 같다. 알고 보니 나는 어쩔 수 없는 내향인이었다.
나의 성향을 알아가는 시간이 없이 그냥 눈앞에 주어진 과제 같은 삶을 살다 보니 내가 정작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군대 훈련소에서 받은 심리검사로 나는 신체검사에서 문제가 발견된 사람들과 함께 훈련에서 열외 되어 국군병원에 가는 버스를 타게 되었다. 힘든 훈련을 하루 빼먹는다는 즐거움으로 버스를 타고 병원에 도착하니 다른 사람들은 외과, 내과 등 다양한 진료과로 이동하는데 나만 별관에 있는 정신과 앞에서 대기하였다. 드라마에서 본 구치소 같은 느낌의 정신과는 쇠창살 이중문을 통과하면 철문 안의 군의관을 만나는 구조였다. 정신과에 도착해 군의관을 만났는데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편하지 않겠지만 삶이 다 그렇고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짧은 조언을 해주셨다. 그리고 다시 이중문을 통과하여 병원 밖에서 대기하던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가끔 졸다가 심리검사 문제를 놓쳐 나름 학창 시절 수학시험 답안지처럼 분배하여 2, 3번으로 마킹한 검사지로 방문해 본 정신과 내 의사 선생님의 따뜻한 조언은 기억에 남았다.
가끔 새로운 환경에서 느끼는 어색함으로 집으로 돌아가 버리는 상상을 종종 한다. 새로운 부서로 발령만 나도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인지 하는 의문과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로 복잡하다. 새로운 곳에 대한 긴장감은 나이가 들어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어색한 만남의 긴장은 수많은 미팅이 존재하는 직장생활을 오래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생활하고 친해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나도 이렇게 세월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는데 예전과 같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싶지만 성향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여전히 나도 가끔은 내가 제정신인가 싶은 일들을 스스로 벌리고 후회도 하고 반성도 하면서 살아간다.
세월이 변해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동일해야 한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 사람도 나를 보고 집에 돌아가고 싶다면 문제가 있는 관계가 아닐까 싶다. 물론 상대방도 나를 존중하여야 이 태도는 유지될 수 있다. 예전의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참지 못하고 꼭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게 관계의 승리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생각하면 바보 같고 그것이 진리이고 그것이 정의라고 착각한 덕분에 참 많은 미움을 받으며 살았던 것 같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어차피 이야기를 들을 사람은 듣고 듣지 않을 사람은 듣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을 제외하고는 누군가를 바꿀 수 없다고 한다. 결국 내가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나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조금씩 변화하면서 살면 그만이지 내 옆에 누군가가 나의 방식대로 살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정신병이다.
"오늘 하루 바르게 살아가고, 이왕이면 저축하듯 좋은 사람들을 가급적으로 많이 옆에 두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