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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호너구리 Nov 16. 2023

나의 아저씨

감사의 말

살아가면서 처음으로 늪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느새 목을 넘어 입과 코도 늪에 잠기면서, 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고, 아무것도 외칠 수 없었습니다. 도와달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입을 벌려도 점점 늪으로 내려가고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습니다.

방향감각도 상실하게 되어 어디가 위인지 어디가 아래인지 몰라 그저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머리 위로 팔을 뻗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내 손을 잡아서 이 늪에서 날 꺼내주길 바라면서 열심히 손을 들었습니다.


결국 그 늪에서 내손을 꺼내준 건 선생님이었습니다. 묘령의 연인도 아니고, 천사도 아니고, 구원자도 아니고, 신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배 나온 아저씨였습니다. 저에게 구원이라는 건 없고, 세상에 홀로 남았다고 생각하여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저 머리 위로 손을 뻗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4년 전 집과 직장의 스트레스에 끼어,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떠오른 건 정신과였습니다. 검색해서 나온 모든 정신과를 전화하였지만, 대부분 진료시간이 끝이 났고, 제가 갈 수 있는 곳은 없었습니다. 그때 유일하게 내 전화를 받아준 곳이 선생님이 계신 병원이었습니다.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어린아이처럼 울었습니다. 앞에 있는 갑 티슈의 모든 휴지를 쓸 만큼. 펑펑 울었습니다. 단순히 슬픔에 대한 눈물이 아닌, 울부짖음이었습니다. 늪에서 손을 잡아주고 얼굴까지는 꺼내졌고, 이제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외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4년이란 긴 시간 동안 선생님에게 울부짖기도 하고, 편안하게 이야기하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그렇지만 제 슬픔의 크기는 그렇게 작아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슬픔을 담는 그릇은 커졌습니다. 말도 안 되는 그릇에다가 담았던 슬픔은, 이젠 넘치지 않고, 그릇 안에서 차분하게 제 안에 있습니다.


선생님의 치료 덕분에 하루하루 열심히 나아졌습니다. 어느 순간 더뎌지고, 제자리걸음이었던 적도 있었지만, 늘 저에 대해 지지해 주셨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마지막 인사를 할 때도, 많이 좋아졌고,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해주신 것이 참 힘이 났습니다.


아직 제가 늪에서 빠져나온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 제 얼굴과 상체정도는 늪을 빠져나온 듯합니다. 세상이 보이고, 들리고, 외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다른 병원의 도움도 필요하겠지만, 스스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를 구원해 준 나의 아저씨에게.

너구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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