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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호너구리 Apr 08. 2024

아버지

나를 닮은 사내

어머니 폰을 바꿔주러 오랜만에 부모님 집에 들렀다.

이래저래 어머니의 폰을 교체해 주고, 집에 와서 같이 점심을 먹었다. 집을 나온 지 오래된 건 아니지만, 미묘하게 밥을 먹는 게 어색했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밥을 해준다는 것은 참으로 고귀하며,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행위이다. 오랜만에 부모님과 점심을 하고, 아버지가 집으로 태워준다고 하셔서 같이 길을 나섰다.


집으로 가는 시간은 20분 남짓. 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미묘하게 내가 느낀 것일지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굉장히 초연한 모습을 하였다.


나에게 조언을 하면서 일을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 딱딱하게 굴면 주변 사람들이 싫어한다. 빨리빨리 대충 넘겨 야한다 등,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내가 알던 아버지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일에 대해 굉장히 꼼꼼하고 깐깐하게 일을 하였다. 어찌 보면 하나의 부정도 용서하지 않고 청렴하게 살아왔다는 걸로 볼 수 있다,


어머니는 가끔, 아버지가 조금만 눈감고 살았으면, 더 잘살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신다. 그래도 난 아버지가 좋았다. 도덕적이고, 청렴하게 살아왔다는 게 자랑스러웠다.


그런 아버지가 공무원 퇴직 후 일반회사를 가면서 조금 허무한 마음이 들었나 보다, 잘하고 깐깐하게 굴어봤자, 다들 일을 편하게 하려고 한다고, 그렇게 사는 게 맞는 것이라고, 늘 정치 이야기를 하시면, 강경한 보수주의자였지만, 요즘은 아버지는 누가 되든 상관없다는 식의 말씀을 하셨다. 다 똑같이 썩었고, 우리의 삶에 하나도 영향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염세주의에 빠진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버지가 그동안의 강경함을 내려놓아서 편해진다면, 난 마음이 편하지만, 삶을 살아오면서 세상에 대해 실망한 것이라면, 조금 울적해진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온 나는. 어찌 보면 꽉 막히게 살았다. 열심히, 정직하게, 솔직하게 살아간다면, 뭐든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늘 내 일을 망치고 길을 잃었던 것은 나의 나태나 교만이 아니라, 나의 열정과 용기였다. 차라리 나태와 교만으로 무너졌다면 내 삶의 자세를 고치면 된다지만, 나의 열정과 용기로 무너졌을 땐, 나는 무엇을 고치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잘 모르겠다.


그래도 아버지처럼 살아가고 싶다.

대단하지는 않아도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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