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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형 Mar 07. 2023

2023년 일본

Ep 01. 가족여행, 교토(きょうと)

2023.02.23~24 교토(きょうと)


청수사(기요미즈데라, きよみずでら) / 닌넨자카, 산넨자카(にねんざか、さねんざか) - 은각사(긴카쿠지, ぎんかくじ) - 교토어소(きょうとごしょ)


           아들 녀석의 입대 전 기념여행. 아이들과 아내가 원한 곳은 일본이다.  30개국 가까운 나라를 여행했지만 가장 가까운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처음이다. 대학시절(벌써 30년이 되어버렸다) 첫 해외여행지였던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의 경유지로 도쿄에 들렀던 것을 제외하면 일본은 첫 방문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일본은 가성비가 떨어지는 여행지라는 생각도 있었고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에 좀 더 색다르고 이국적인 여행지를 선택하곤 했다. 환전을 하면서도 느꼈지만 원화대비 엔화의 가치가 많이 떨어져서 여행의 가성비가 개선되었고(1000엔 = 972원 환전) 무엇보다도 아빠의 여행 스타일 덕분에 중국과 동남아등지에서 버스와 기차, 더위에 지친 아내와 아이들이 모던하고 맛있는 여행을 위해 일본을 선택한 이유가 컸다. 어쨌든, 그렇게 우리 가족은 일본의 교토와 오사카로 떠난다.  


 일본에서의 첫 식사    


          이른 아침 집을 나선 우리 가족은 김포를 거쳐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도착해 교토행 열차(하루카열차)를 타고 교토의 숙소에 오후 1시쯤 도착했다. 숙소 인근 소바집에서 점심을 먹으며 일본이 정말 가까운 나라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일본에서 선택한 첫 식사는 청수사 가는 길에서 찾은 소박한 동네 식당이다. 식당의 외관이 일본 드라마에 나올법한 모습이어서 맘에 들었고 이면도로의 작은 식당임에도 구글평점이 꽤 높아서 들어가게 됐다. 70대 노부부와 아들인 듯 보이는 젊은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이었고 우리 가족은 따뜻한 국물이 있는 소바와 장국에 적셔먹는 정통 소바 그리고 카레 소바를 주문했다. 면은 너무 훌륭했고 노부부의 상냥함에 친근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국물이 짜서 국물과 함께 나온 소바를 주문한 아내와 아들 녀석은 인상을 구겨야 했고, 국물에 적셔 먹을 수 있었던 카레 소바와 일반 소바를 주문한 나와 딸은 맛있는 소바의 면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아직도 의문스러운 것은 교토의 모든 국물이 짰다는 것이다.(오사카는 좀 덜하긴 했지만...) 이 후로도 담백하고 조금은 슴슴한 일본의 음식을 예상했던 우리 가족은 일본의 짠맛에 적잖이 놀라야만 했다.

교토 야부소바  薮そば 일본 〒600-8353 Kyoto, Shimogyo Ward, Takatsujiinokumacho, 341


청수사(きよみずでら) / 닌넨자카, 산넨자카(にねんざか、さねんざか)


          식사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청수사로 향한다. 우리는 청수사로 향하는 길목인 산넨자카와 닌넨자카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 때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상당수의 일본인들이 기모노 차림이어서 의아했다. 알고 보니, 오늘이 일본 천황의 생일이어서 많은 일본인들이 기모노 차림으로 고찰인 청수사를 찾은 것이다. 천황의 생일이 어떤 의미인지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산넨자카와 닌넨자카 거리의 수많은 인파와 많은 기모노 차림의 일본인들을 보며 일본인들 속에서 일본 천황의 위치가 상당하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산넨자카, 닌넨자카 거리


          청수사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사찰의 건축구조였다. 사찰의 반 이상이 절벽의 허공에 건설되어 있었고 이 하중을 목재의 세로와 가로 부재들이 지지하고 있는 구조였다. 또한, 서로 마주 보는 건축물이 같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건축물에서 서로의 건축구조를 조망할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다. 더불어 건축물이 서쪽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어서 해질녁 노을 풍경이 기대되는 장소이다. 어두워지기 전에 닌넨자카의 거리를 구경하고 싶어서 노을을 바라볼 수는 없었지만 맑은 날 청수사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분명히 아름다울 것이다.

청수사




          오랜만의 해외 여행길에, 이른 새벽부터 서둘러서인지 숙소 인근 식당에서 간단한 저녁 식사와 생맥주를 한 잔 하고 가족 모두 깊은 잠에 빠졌다. 아무리 피곤해도 늦잠을 자지 못하는 슬픈 중년의 회사원은 일본에 여행을 와서도 여전하다. 일상의 챗바퀴를 벗어나지 못한 채, 5시 30분에 잠에서 깨어 뒤척이다가 6시에 기어이 일어나 여느 날 출근길처럼 가족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옷을 챙겨 입고 숙소를 빠져나왔다. 다행히 호텔 1층에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휴게실이 있어서 커다란 컵에 커피를 가득 담아 아직 남아있는 잠기운을 걷어내 본다.


          해외에 여행을 오면 언제나 빠뜨리지 않는 것이 아침 산책이다. 아침 산책은 낮에 볼 수 없는 여러 가지 현지의 모습들을 보고 느끼게 해 준다. 태국에서는 이른 아침 현지인들의 아침 식사를 위한 아침 반짝 시장을 만날 수 있었고, 미얀마에서는 이른 아침 승려들의 탁발행렬과 아침 안개에 둘러싸인 인레호수의 전경을 선물 받았다. 각 나라마다 이른 아침에 만날 수 있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별건 아니지만 우리나라에도 꼭 아침에만 만날 수 있는 것들이 있으리라. 더불어, 아침시간에는 여행자의 시간이 더디 가게 마련이다. 특히,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는 아버지는 낮 시간보다 홀로 하는 아침시간이 몇 배는 더 천천히 움직이게 마련이다. 일본에서도 그런저런 이유로 매일 아침 산책을 나서게 된다.


교토의 아침산책


           교토 아침 산책을 하며 먼저 궁금했던 것은 "일본 직장인은 아침식사를 어떻게 해결할까"였다. 아침식사를 위해 구글맵을 봤을 때 이른 시간에 장사를 하는 식당들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책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일부 식당들이 장사를 하고 있었지만 많지 않았고, 편의점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들르고 있다는 것. 주로 주먹밥(오니기리, おにぎり)와 샌드위치를 많이 사는 것 같았다. 편의점을 이용하는 것은 예상했던 바였지만, 출근시간이 시작하는 7시에 대형 카페들이 장사를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카페에서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있었다. 우리도 편의점을 많이 이용하고는 있지만, 아침 장사를 하는 식당 수가 적었고 카페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 그리고, 노점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우리네 모습과 좀 달랐다. 어쩼든, 일본 답게 아주 조용한 출근길이었다. (일본의 편의점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하고 싶지만 후술 하기로...)

교토의 편의점과 카페


옛 것을 지키려는 일본의 노력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은 큰 도로를 벗어나 이면도로의 골목길로 들어선다. 교토의 전면도로에 늘어선 빌딩의 21세기의 모습이라면 교토의 이면도로 주택가는 20세기에 멈춰있는 듯하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어린 시절 기억나는 고향 목포의 유달동과 선창 주변 골목 주택가와 비슷했다고 말하고 싶다. 작은 이층 구조, 빗물받이, 지붕, 기와 그리고, 출입구와 창문의 모양 등 비슷한 주택가들이 많았다. 물론, 일제 식민지 하에서 만든 일본풍의 건축물들이었을 것이다. 어쩼든, 20세기 중반 건축물들이 상당 부분 유지되고 있었다. 시내뿐 아니라, 어제 청수사의 닌넨자카와 산넨자카 거리도 마찬가지였다. 용도와 인테리어는 현대식으로 변화를 줘서 상점과 식당, 카페로 운영하고 있지만, 건축물 외관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중국 윈난성 리강고성(云南省 丽江古城) 골목과 비슷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아마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보전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고 정부의 정책이 관여하지 않았을까 예상해 본다. 전면도로와 다르게 이면도로의 전기배선들이 지하로 매설되지 않고 아직도 공중에 매달려 지나가는 것으로 보면 건축물들을 보전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공중의 전선들이 말끔히 정리되어 있는 모습을 보며 일본 답다는 생각을 해본다.)


교토시내 이면도로


철학의 길에서 만난 부끄러운 나의 선입견


          아침 산책 후, 가족들과 편의점 도시락으로 아침을 때우고 은각사(긴카쿠지, ぎんかくじ)로 향한다. 촐촐히 내리는 때 이른 봄비에 우산을 받쳐 들고 정원사의 정성으로 완성되고 유지되어 가고 있는 일본스러운 정원을 가진 은각사를 구경하고 다음 행선지인 교토어소(きょうとごしょ)를 향하던 길이었다. 버스정류장 옆에 철학의 길이라는 작은 천을 따라 조성해 놓은 산책길이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산책을 하다 버스를 타기로 했다.

은각사
은각사 인근의 철학의 길

          봄 비를 맞으며, 드문 드문 핀 꽃을 보며 철학의 길을 산책하고 있는데 후줄근한 차림의 한 일본인 할아버지를 만났다. 조금 지저분한 옷에 오래된 우산을 받치고 나를 바라보며 우산 밖으로 손을 내밀면서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일본어라고는 여행가기 전 한 달 동안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외우고 인사말 공부한 것이 전부인 내가 할아버지의 말을 이해할리 없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어르신은 "아메, 아메"라고 말하며 나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돈을 달라는 말로 이해하고 영어로 돈이 없다고 말하고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어르신을 지나쳐 왔다. 그 어르신이 안 보일 정도로 멀리 떨어져서는 도대체 아메가 무슨 뜻인지 인터넷 사전을 찾아봤다.(한 달 공부한 보람으로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쓰고 읽을 수는 있게 되었다.)


          사전을 찾아본 나는 어르신이 외치던 "아메, 아메(あめ、雨)"가 "비"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겨울이 지나고 봄 비가 내리는 날. 산책길에서 만난 여행자에게 어르신은 우산 밖으로 손을 내밀며 천진한 미소와 함께 비가 오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반가운 봄비가 말이다.


          봄비가 온다는 감성적인 말에 돈이 없다는 자본주의적 태도로 보여주다니, 실소와 함께 사뭇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여행에 대해 아내와 아이들에게 말할 때면, 나는 "행복한 여행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여행이 그 나라, 그 장소만을 보는 것이라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여행은 현지인과 다른 여행자를 만나면서 비로소 완성된다. 그래서, 상대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없으면 여행은 반쪽자리가 될 뿐이다."라고 말해왔다. 어쨌든, 어르신은 "비가 와! 봄 비가 와. 참 걷기 좋은 날이야"라고 말했을지 모른다. 후줄근한 외모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부끄러워 잠시 서서 봄 비속에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다. 조금 열린 여행을 해야 한다고...


교토의 저녁식사 장어덮밥(우나기동, うなぎどん)


          추적추적 내리는 빗 속에서 교토어소를 관람하고 저녁식사를 예약한 식당으로 향한다. 어제 점심과 저녁식사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너무 짠맛이 심했다. 읽었던 책 중에 "교토 사람들은 입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오사카 사람들은 먹을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란 말처럼 오사카에 가면 좀 좋아지려나하고 생각도 했지만 좀 제대로 된 일본식사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 검색을 하고 저녁식사 예약을 했다.


           저녁식사 메뉴는 장어덮밥 소위 '우나기동'으로 정했다. 큰 아이가 일본에서 먹어보고 싶다던 음식 중 하나였고, 구글맵에서 예약이 가능하고 평점도 좋은 식당이 있어서 예약하게 됐다. 식사 후에 오사카로 가야 하기 때문에 이른 저녁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향한다.

우나기 소라 うなぎ 昊-そら-   〒604-8054 Kyoto, Nakagyo Ward, Nishidaimonjicho, 602番地


           일단, 맛있었다. 최고의 맛이라고 할 만하지는 않았지만, 장어와 밥 그리고 무엇보다도 간장소스가 아주 맛있었다. 아내는 장어보다도 간장소스가 기성품이라면 집에 사가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고 한다. 적절한 장어구이의 간에 슴슴한 밥 그리고 단맛과 간장맛이 어우러진 끈적한 덮밥소스가 인상적이었다. 아내와 내가 소스맛이 훌륭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평범한 밥과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즐길 수 있는 장어에 비해 소스맛이 독특해서가 아닌가 싶다. 깔끔한 매장과 영어 소통이 가능한 직원들이 있어서 주문이나 서비스가 원활했다는 점도 이 식당의 큰 장점이다. 그렇게 아내와 아이들이 만족할만한 식사를 마치고 오사카로 향한다. 오사카의 숙소까지는 전철로 1시간 정도 걸린다. 이렇게 우리 가족의 1박 2일 교토여행이 너무 짧아 아쉬움을 남긴 채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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