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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형 May 28. 2023

여전히 나를 설레게 하는 것, 여행!

삼척시내~울진군 죽변항

동해바다 도보여행길인 해파랑길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직장 때문에 한 달에 2-3일씩 나눠서 여행하고 있습니다. '해파랑 일기'라는 제목으로 도보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해파랑길 32코스(삼척터미널) ~ 27코스(울진군 죽변항)


4월 14일 흐림(삼척-맹방-궁촌항)


여전히 나를 설레게 하는 것, 여행!


          삼척으로 떠나는 날 이른 아침이다. 새벽 3시 반. 어젯밤 업무 때문에 가벼운 술자리가 있었음에도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 술 때문이기도 하고 여행 멀미 탓이기도 하다. 여행은 봄 소풍을 앞둔 초등학생처럼 여전히 내 마음을 덜컹덜컹 흔들어 놓곤 한다. 특히, 여행 전날이면 왠지 들뜬 마음에 잠 못 이루는 날이 많다. 여행은 쉰이 넘은 나를 여전히 설레게 한다.


          여행은 왜 여전히 나를 설레게 할까? 일상을 떠나는 기쁨 그리고 새로운 것, 변화에 대한 설레임이 아마도 내 멀미의 이유일 것이다. 그것은 두려움인 동시에 설레임이며 살아 숨 쉬는 스스로에 대한 증거이다. 나는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끼며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을 안고 오늘 아침도 길을 나선다. 오늘 아침은 매일 보이는 아파트도, 매일 보이는 상가도, 버스정류장도, 거울에 비친 내 모습도 조금은 다르게 보인다. 오늘은 어제와 다르다. 여행은 나를 어제와 다르게 만든다. 여전히 나를 설레게 만드는 것, 여행이다.


          리모델링되어 항공기의 탑승장이 연상되는 반포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삼척에 도착했다. 삼척에서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길을 나선다. 4월 중순, 좀 흐린 날씨가 흠이긴 하지만 걷기에는 최적의 봄 날이다. 삼척의 강변길을 따라 걷다가 오르막 도로를 걷다 보니 삼척화력 1,2호기를 만난다. 삼척은 화력발전소와 가스 관련 플랜트 등 에너지를 가공 생산하는 시설들이 즐비하다. 아마도 삼척이 이전에는 대규모 석탄 탄광이 위치했던 탓일 것이다. 대규모 플랜트는 바다나 해변 한가운데 괴물 같은 공장들이 들어선 느낌을 준다.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평생 이 일을 해 온 사람으로서, 여행을 하며 안타까울 때가 많다. 특히 이곳 삼척이 그렇다. 고성부터 이어진 아름다운 바다의 풍경은 사라지고 미래의 황폐해진 도시를 비추는 양, 거대 철물들이 바닷가를 채우고 있다.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라면 더 늦기 전에 바다나 해변과 어울리는 설계와 시공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주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엔지니어이자 여행자인 나는 씁쓸한 눈빛을 남긴 채 길을 지나친다.


유채꽃 축제 _ 맹방해변

          삼척에서 높지 않은 산 하나를 넘어 맹방해변에 들어선다. 유채꽃 축제를 한다는 플랭카드가 보인다. '도대체 어디서 한다는 거지'라고 고개를 들어 시선을 넓히는 순간, 노오란 유채꽃밭이 시야에 들어온다. 유채꽃밭은 마치 수채화를 보는 듯했다. 물을 먹은 옅은 물감을 점점이 찍어 만든 수채화. 노란 수채화는 옅은 검은색의 볼품없는 전봇대마저도 그림 안에 반드시 필요한 구도로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다. 유채꽃 한가운데로 길이 나있고, 길가에는 커다란 바람개비가 사람들을 맞이한다. 유채꽃과 살랑거리는 봄바람을 타고 돌아가는 색색의 바람개비 사이로 엄마와 아빠의 손을 잡은 아이가 유채꽃만큼이나 노란 표정으로 꽃밭을 따라 걷는다.


          평일이라 그런지 유채꽃밭은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여유 있게 꽃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았고 나만큼이나 사람들도 여유 있는 모습이다. 연인들은 쑥스러움을 꾹 참고 갖가지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초로의 부부도 꽃밭에서 만난다.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카메라를 들고 사진 찍을 자리를 찾아다는 부인의 뒤를 따르는 남편은 싫지 않은 얼굴입니다. 꽃밭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들은 중년의 여성들인가 보다. 색색의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한다. 세상 풍파를 아는 듯한 주름이 힐끗 보이지만 소녀 같은 웃음으로 주름을 묻어두고 소녀소녀한 포즈와 웃음소리는 혼자인 나의 웃음과 시선을 붙잡는다. 언젠가 4월이 되면 아내와 같이 맹방해변을 찾게 될 것 같다. 나의 멋쩍은 웃음을 섞어 찍은 유채꽃밭 속 아내의 사진을 한 장 갖고 싶다.


궁촌항 영길이네


          맹방해변의 유채꽃 향기에 취해 시간을 지체해서 걸음을 재촉한다. 덕산항과 대진항을 거쳐 오늘 여행의 종착지인 궁촌항에 도착했다. 궁촌항은 생각했던 것보다 작은 어항이었다. 숙박시설의 선택지가 많지 않아서 민박을 예약했다. 오후 6시가 다 되어갈 쯤 궁촌항에 도착해서 샤워를 하고 1층의 식당에서 돼지불백과 막걸리를 주문했다. 작은 시골포구의 음식이지만 맛있고 군더더기 없는 상차림이 맘에 들었다.(숙소도 아주머니의 음식만큼이나 깔끔했다.) 맛있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주인아주머니는 인근에 가게가 없어서 아침식사로 라면과 김치를 조금 챙겨주신다. 피로와 막걸리 한 잔 그리고 주인아주머니의 따뜻한 배려에 푸근해진 마음을 안고 어둑해진 작은 포구를 산책한다. 조그마한 등대와 선착장, 횟집과 중식집, 야경이 꽤 괜찮은 카페도 있다. 작지만 아늑한 포구. 궁촌항이다.


4월 15일 ~16일 흐리고 비(삼척시 궁촌항 - 임원항 - 호산항 - 울진군 석호항 - 죽변항)


          이른 아침잠에서 깨어 일출을 보고 싶었지만 날씨가 그리 좋지 않다. 어제 민박집 아주머니가 챙겨주신 라면을 끓여 먹고 길을 나선다. 비 예보도 있어서 우산까지 챙겨뒀지만 비가 오면 난감한 일이기 때문에 발걸음이 바빠진다. 오늘 여정은 삼척에서 울진으로 향하는 산속 지방도이다. 문암해변을 거쳐 산길을 통해 말굽재라는 고개를 넘어간다. 이름만큼이나 굽이 굽이 산길이다. 조그만 개울이 흐르고 개울을 따라 작은 길이 정겹다. 이어폰을 떼어버리고 새소리와 물소리, 바람소리를 벗 삼아 길을 걷는다.


임원항, 물회로 기억되다


         아침에 먹은 라면과 산속에서 먹은 간식도 뱃속에 더 이상 남아있을 리 없는 오후, 임원항에 도착했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일단 임원항을 좀 둘러보고 메뉴를 결정하기로 했다. 임원항은 어제 궁촌항보다는 훨씬 큰 항구이고 관광객도 상당히 많은 곳인지 항구로 가는 길에 식당도 즐비하다. 이제 식당을 골라야지 생각하는  순간 손님이 없었는지 아련한 눈빛을 건네시며 호객 아닌 호객을 하는 아주머니의 눈에 이끌려 작은 횟집에 들어간다. 주문한 물회가 나오는 순간, “잘 들어왔구나! 맛 볼 필요가 없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며 만족스러웠다. 비주얼 못지않게 물회맛도 그만이었다. 회는 국수마냥 길고 넓적했고, 무엇보다 싱싱했다. 맵고 짜고 시큼하고 달짝지근한 초장도 적당해서 물회의 맛을 더했다. 무엇보다도 쌓아 올린 회가 더미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 만족스러웠다. 회를 조금 덜어 먹은 뒤에야 밥을 말아 제대로 된 물회를 즐길 수 있었다.(얼마나 만족스러웠는지 몇 주 뒤 근처로 가족여행을 와서 한 번 더 들렀었다.)


          임원항에서 든든한 점심식사를 마치니 날씨가 심상치 않다. 길을 재촉해서 오늘의 종착지인 호산항에 도착했다. 이미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어플을 통해 예약해 뒀던 모텔에 도착했지만 체크인을 할 수가 없었다. 주말이기 때문에 추가요금을 현금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추가요금 1만원도 문제이지만 시골의 모텔 촌로의 욕심이라 치부하더라도 들어가자마자 손님을 맞이하는 찌든 담배냄새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어플회사에 전화를 해서 정중히 취소를 요청했고 다행히 30분 내에 환불문자를 받을 수 있었다.


          국내 여행을 하면서 가장 큰 문제가 숙소문제였다. 다행히 해파랑길에는 저렴하고 깨끗한 게스트하우스가 다수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10년 전, 초등학교 아들 녀석과 도보여행을 할 때도 가장 가장 큰 문제가 숙소였다. 주로 모텔을 이용했지만, 우리나라의 모텔이 아이뿐 아니라 아내와 이용하기에도 그리 좋은 환경이 아니다. 해파랑길이나 남파랑길 등 우리나라의 도보여행지만이라도 저렴하고 깨끗한 숙박시설이 많아지길 바래본다. 비가 오는 이 날, 비슷한 수준의 인근 모텔을 구했고, 순댓국에 소주를 한 잔으로 화를 가라앉히고 잠에 들었다.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호산항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길에 나선다. 다행히 어제 저녁 흩뿌리던 비는 멈췄고 봄비에 선선해진 날씨가 걷기에 딱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부지런히 산길을 걸어 지방도의 정상에 도착했다. 강원도 삼척과 경상북도 울진의 경계지점이다.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도경계를 넘게 되었다. 지난가을 시작한 해파랑길 여행이 300km를 넘어 절반이 되어가고 있다. 언덕배기에서 잠깐 경계표시를 쳐다보다 다시 길을 재촉한다.

도경계와 불 탄 그루터기에 자라나는 나뭇가지


불 탄 그루터기에서 자란 연녹색 나뭇가지


         강원도 산길을 걷다 보면 가끔 민둥산을 보게 된다. 더불어 검게 불탄 커다란 나무 그루터기들을 보게 된다. 아름다운 숲이 산불에 잿더미가 되어 민둥산이 되고 검게 불탄 나무둥치들은 절로 한숨을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숲을 잃어버린 민둥산은 스스로 치유하는지 봄비와 봄볕을 받아들여 초록색 언덕을 만들어 내고 생명의 씨앗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검게 탄 그루터기에는 초록색 나뭇가지가 자라는 모습은 기적을 보는 듯하다. 특히, 검게 탄 나무둥치에서 자라나는 연녹색 나뭇가지는 생명의 위대함을 보는 듯하다. 도대체 어떤 힘이 있관데 죽음의 둥치에서 새 생명이 자라날 수 있을까? 어쩌면 자연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존재가 아닐까?


석호항의 다방 그리고 일상의 이야기


          도 경계가 있는 언덕길을 내려와 오전 9시가 다 되어 강원도 울진군 석호항에 도착했다. 아침마다 커피를 마셔야 하는 카페인 중독자인 나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부터 찾았다. 그때 눈에 띈 것이 작은 다방이었다. 문을 열고 다방에 들어선다. 이른 시간이어서 인지 손님은 없고 다방 주인아주머니와 인근 가게의 여사장님들이 커피를 마시는 중이다. 커피를 시키고 머쓱한 마음에 가게를 멀뚱 거리고 있으니 아주머니들이 먼저 말을 걸어준다.


          40대 후반부터 50대 중반인 아주머니들은 도보여행을 한다는 내가 이색적이라 생각했는지 이것저것 호구조사를 한다. 좀 적적하던 차에 나도 아주머니들과 대거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여행이야기에서 일이야기 그리고 자식이야기까지 1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자식이야기에서는 모두 비슷한 또래의 자식을 가진지라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10시가 다 되어서 아주머니들이 다방을 떠나고 나도 어느새 아는 사이가 되어버린 다방 사장님의 가게 밖 전송을 받으며 길에 나선다. 길을 나서며 다시 한번 생각한다. ‘내가 열려 있다면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있다.’


죽변항 인근 강아지풀 군락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더니 오전이 지나가기도 전에 목적지인 죽변항에 다가서고 있다. 죽변항이 얼마 안 남을 즈음 작은 농촌마을에 접어들었다. 가까운 길을 두고 왜 조금 돌아가는 길로 여행길을 만들어 두었을까라고 생각할 즈음, 이내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 앞에 나타난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강아지 풀 군락이었다.

           작은 마을의 소로 양쪽으로 강아지풀 천지다. 유채꽃이나 다른 꽃밭들은 많이 보았지만 강아지 풀이 이렇게 지천인 곳은 처음이다. 강변에 논 둑에 조금씩 있는 강아지풀들은 흔하게 보았지만 군락의 강아지 풀은 처음 보는 모습이다. 굽이 굽이 소로를 중심으로 온통 솟아난 강아지풀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어떤 용도로 이런 군락을 만들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지나가는 여행자에게는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에는 강아지풀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지만 네이버의 스마트렌즈로 몇 번이고 확인해도 강아지 풀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굽이 굽이 강아지 풀 군락을 지나 곧 죽변항에 도착했다. 죽변항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죽변 간이 버스정류장에서 서울행 버스에 오른다. 이렇게 이번 여행을 마무리한다.




■ 아내와 다시 여행하고 싶은 아름다운 곳


ㅇ 삼척시 맹방해변 유채꽃밭

맹방해변 인근에 형성된 유채꽃밭이 장관이다. 4월에 유채꽃 축제가 열린다. 주위에 작은 시장도 형성되어 먹거리를 즐길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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