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야카르타속으로…
욕야카르타(족자카르타, 일명 족자)로...
친구들과 함께였던 자카르타의 2박을 뒤로하고 이른 아침 욕야카르타로 출발한다. 다른 나라를 여행하며 번거롭기도 하지만 흥미진진한 일이 그 나라의 교통수단을 경험하는 일이다. 자가용택시가 없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동남아는 그랩과 고젝 어플을 이용해서 저렴한 자가용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정식 택시도 있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서 그랩과 고젝을 이용하게 된다. 인도네시아 국내선 비행기와 기차의 예매는 트래블로카라는 인도네시아 여행어플을 사용한다. 예매도 편리하고 기차역 티켓팅도 편리해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물론, 현지인을 위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여행자 입장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흔히 있다. 자카르타에서 욕자카르타행은 인도네시아 저가항공을 선택했다. 전날 오후에 예약했던 비행스케줄이 취소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전화를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메세지와 함께.(현지 데이터 유심만 사용하고 있어서 전화를 받을 수는 없었다.) 마땅한 대체 비행편이 없어서 저녁을 먹으면서 비행기와 기차편을 검색하고 있는데 다시 메일이 왔다. 아침 8시 25분 비행기가 7시 45분으로 변경되어 출발한다는 내용이다. 좀 황당하기는 했지만, 다행이다 싶어 e-ticket을 확인하고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저녁식사 후 숙소에서 짐정리를 하며 e-ticket을 확인해 보니 이번에는 터미널 번호가 없다. 구글링을 통해 내가 구입한 저가항공사의 터미널은 3번 터미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3번 터미널은 국제선 터미널. 불완전함을 깨뜨릴 수 있는 방법은 부지런함이다. 새벽같이 자카르타 공항 3번 터미널에 도착해서 티켓팅을 한다. 불안한 출발이지만 어쩨든, 욕자카르타행 비행기에 오른다.
족자 공항은 족자시 외곽에 자리하고 있다. 공항철도 티켓을 사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5분 후에 열차가 출발하니 서두르라고 역무원이 안내해 준다. 고맙기는 하지만 시골에서 처음 올라와 서울 지하철을 이용하는 아저씨처럼 티켓팅 기계 앞에서 헤매고 있는데 역무원이 목적지를 묻고 현금 20,000루피(1,700원)를 받고 티켓팅을 도와준다. 가까스로 열차를 타고 티켓을 살펴보니 현금결제가 아니고 gopay결제라고 표시되어 있다. 아마도 공항직원이 본인의 모바일페이로 결제하고 현금을 받은 듯하다. 안내에서부터 미소까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친절함이 묻어나는 역무원이다. 이 역무원뿐 아니라 내가 접한 대부분의 인도네시아인들은 친절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려는 모습을 보여서 여행 내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조금 좌충우돌했지만 시원한 공항철도를 이용해서 족자 기차역에 도착한다.
첫 번째 식사 구덱 아얌 수위르
요즘 음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도 먹는 것에 진심인 사람이다.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해서 혼밥에도 이력이 나 있어 혼자서도 열심히 맛있는 음식들을 찾아 나서는 편이다. 여정을 계획하며 인니에 대한 기본적인 음식정보와 먹어보고 싶은 음식들을 조사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매 끼니를 다른 음식들을 먹기 위해 노력했다. 먼저 아는 것이 힘이라는 생각으로 인니의 기본적인 음식용어들을 정리했다.
인도네시아의 기본적인 음식용어
나시(nasi) - 쌀밥, 미(mie) - 면, 로띠(roti) - 빵, 소또(soto) - 국, 고랭(goreng)-튀기다, 사떼(sate) - 꼬치, 아얌(ayam), - 닭, 이깐(ikan) - 생선, 사삐(sabi) - 소, 바비(babi), 삼발(sambal) - 고추 양념, 떼(teh) - 차, 에스(es) - 얼음
인도네시아의 대표음식으로 꼽는 것이 나시고랭과 미고랭이다. 나시고랭은 상기의 기본 음식용어롤 조합해 보면 튀긴 밥 즉, 볶은밥이다. 미고랭은 당연히 볶은 면이 된다. 인도네시아 식당가를 지나다 보면 미고랭, 나시고랭, 소또(국, 소고깃국이나 닭국, 어묵국 가게가 많다.) 간판을 쉽게 보게 된다. 이 정도 용어를 알고 있으면 음식주문에도 상당히 유용하다. 앞서 말했듯이 음식에 진심인 나는 매 끼니 음식을 달리하며 사떼, 소또 아얌, 박소, 나시고랭, 나시짬부르 등 10여 가지 이상의 인니음식을 즐긴다.
아침밥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너무 돌아왔다. 오전 10시쯤 족자역에 도착해서 늦은 아침을 해결한다. 지역음식으로 유명하다는 식당을 찾아 들어가자니 분위기가 무색하다. 식당 직원인 듯한 사람들은 앉아있는데 손님은 한 명도 없고 식당 조명마저 꺼져있어 을씨년스럽다. 해가 있는 동안에는 음식은 물론, 물도 마시지 않는 이슬람의 라마단 기간이기 때문이다. 무색함을 뒤로하고 식사를 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들어와서 앉으라고 한다. 불 꺼진 식당에 혼자 앉아 눈치 아닌 눈치를 보며 주문을 한다. 여전히 식당은 어둡다.
족자에서 먹은 첫 번째 음식은 구덱 아얌 수위르이다. 구덱 아얌 수위르는 달달한 양념의 닭고기에 밥을 더한 족자지역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손으로 찢은 닭고기를 코코넛 밀크에 볶은 듯한 달달한 맛이 난다. 인도네시아의 음식이 달고 매운것이 특징이라는데 단맛의 전형은 이런 코코넛 맛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닭고기와 밥 옆에 같이 나온 두 조각의 음식은 생전처음 먹어보는 식감이었다. 먹고나서 물어보니 인도네시아어 답변이 돌아온다. 번역기를 돌려보니 소가죽이라는 번역이다. 옳바른 번역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생각해보니 소가죽을 물에 불려 삶으면 그런 식감일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해 본다. 식사와 같이 주문한 아이스티는 동남아 국가에서 마실수 있는 전형적은 아이스티의 맛이고 인니에서는 ‘es teh(에스떼)’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식당에서 준비된 음료이다.
Gudeg Yu Djum (족자기차역 인근 식당)
족자의 번화가는 족자역을 중심으로 남측으로 뻗은 말리오보로 거리이다. 내가 숙소로 정한곳은 말리오보로 거리에서 4km 정도 떨어진 Prawirotaman 거리이다. 말리오보로 거리보다는 복잡함이 덜하고 배낭여행객을 위한 숙소들이 많고 식당이나 중규모 여행사들도 많아서 시내중심의 복잡함에서 조금 벗어나는 것을 선호하는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있는 장소이다.
걸어서 족자속으로…
식사를 마치고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갈까 하다가 주위도 둘러볼겸 걸어가 보기로 한다. 동남아의 한 낮 더위속에서배낭을 메고 4km를 걷는것이 만만한 일은 아니지만 걷는 것만큼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여행도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걸어보기로 한다. 족자의 중심가인 말리오보로 거리는 대만이나 홍콩에서 볼 수있는 쇼핑가의 모습니다. 더위와 비를 피할 수 있는 처마가 이어지는 긴 회랑형태의 쇼핑몰이다. 더위를 피하며 느긋하게 쇼핑하기에는 그만인 형태의 거리이다. 회랑의 형태가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맞은편에 차이나타운이 보인다. 차이나 타운을 지나고 나면 쇼핑몰 거리가 끝나면 정글에서나 있음직한 커다란 열대 나무들이 즐비한 거리가 나타난다. 중심가를 벗어날수록 도로와 인도는 좁아지고 공장이나 소규모 상점들이 나타난다. 말리오보로 거리와는 사뭇 다른 어두운 풍경들이다. 드디어 좁아지던 보도는 아예 사라지고 어느새 쇼핑가가 사라지더니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구역질나는 악취에 둘러쌓인 구간을 지나가게 된다. 쓰레기 더미 바로 옆 포장마차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스쳐지나가며 친구들에게 들었던 이 나라의 심각한 빈부격차를 실감하게 된다. 숙소가 있는 Prawirotaman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주위는 조금 깨끗해지고 동남아 거리답게 오토바이와 젊은 친구들의 활력이 쓰레기 더미를 대신한다.
배낭을 메고 한낮 족자거리를 헤매고나니 온 몸이 땀범벅이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땀을 식힌뒤 가벼운 발걸음으로 하릴없이 주위를 어슬렁 거리며 동네구경을 한다. 카페, 편의점, 식당, 여행사, 리쿼스토어(이슬람국가여서인지 술을 파는 가게가 따로있다)의 위치를 파악한다.
주위를 웬만큼 둘러보고 몇가지 스케줄을 정리하기 위해 호텔인근 여행사로 들어간다. 여행사는 작지만 50대 중반의 푸근한 인상의 주인과 마주앉아 여행스케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단기여행을 할 때는 현지 여행사의 버스와 티켓팅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여러가지로 유리한 점이 많다. 여러가지 스케줄을 고려하여 불교사원인 프롬바난은 내일 오후에, 힌두사원인 보르부두르는 일출투어를 포함하여 모레새벽에 출발하는 일정이다. 마지막으로 므라피 화산 짚차투어를 신청했지만 비수기라서 그런지 신청자가 많지 않아서 신청자 상황을 보고 연락을 받기로 한다. 화산투어 share를 위해 인근의 다른 여행사에도 연락을 부탁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what’s app이라는 메신저를 주로 사용한다고 한다. what’s app을 깔고 여행사 매니저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늦은 오후이다.
궁금해지는 인도네시아의 라마단
하~~ 덥다. 듣던대로 덥다. 여행사의 도움을 받아 여행스케줄도 정리했고 숙소 인근에 여행자들에게 유명하다는 아이스크림가게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땀도 식히고 가이드북을 뒤적이며 시간을 보낸다. 식당도, 아이스크림 가게도, 길거리도 한산하다. 지금이 이슬람 금식기간인 라마단이기 때문이란다. 한가해서 좋기는 한데 좀 심심하기도 했고, 화산투어 share가 힘든 이유도 라마단기간에 현지인들이 여행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녁식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아이스크림 가게를 나와서 큰길을 향해 걸어나가는데 거리의 분위기가 사뭇 바뀌었다.
큰길에는 오토바이의 숫자가 크게 늘어났고 작은 거리에는 시장이 생겼다. 어디서 나왔는지 몰려든 사람들로 식당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일몰과 함께 라마단의 금식시간이 끝난것이다. 하루 종일 굶은 사람들의 맹렬한 주문대열에 끼여서 숙소앞 노점에서 박소(어묵 or 미트볼 국) 한그릇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한다. 숙소로 돌아와 카운터의 젊은 직원과 이야기를 해보니 라마단 기간에는 새벽 5시에서 6시 사이에 아침식사를 하고 저녁식사는 6시 즈음이 되어야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라마단기간에는 오후 5시가 되면 라마단기간에만 열리는 노상 시장이 열린다고 한다. 숙소 인근 모스크를 중심으로 한 라마단 노상시장을 소개해 주며 관심있으면 가보라고 한다. 인도네시아 여행의 걸림돌이 될 줄 알았던 라마단은 여행내내 인도네시아와 이슬람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라마단에 관련된 곳들은 차차 둘러보기로 하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남반구의 열대 도시 한 낮을 헤멘 50대 아저씨는 더위를 먹고 맥주 한 캔과 함께 족자에서의 첫번째 날을 일찍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