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의 절반은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덩치만큼이나 먹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식문화에는 그 나라 사람들의 사는 모습, 자연환경, 역사가 시간에 따라 겹겹이 쌓여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몽골은 유라시아의 깊숙한 내륙이며, 나라의 대부분이 초원과 사막이다. 몽골인들은 수 천년동안 드넓은 초원과 사막에서 양과 소, 말을 키우며 유목민으로 살아왔다. 이들의 일상 음식에도 유목민 음식의 특성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음식을 기대하며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을 준비할 때면 여행하는 지역에 가면 꼭 먹고 싶은 음식을 정리해 보곤 한다. 이번 몽골 여행 수첩에는 몽골식 찐만두 부즈(Buuz), 몽골식 볶음국수 초이완(Tsuivan), 고기와 야채가 소로 들어간 호떡같은 모양의 튀김만두 호쇼르(khuushuur), 양고기와 감자 그리고 각종 야채를 함께 삶아 만든 허르헉(khorkhog), 마유를 발효시킨 막걸리 같은 요거트 아이락(Ailag)등이 있었다. 나는 여행 때면 즐거운 숙제라도 하는 양, 하나씩 하나씩 찾아내고 탐닉한다. 이번 글에서는 그 수첩 속 음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몽골식 만두 부즈(Buuz)와 볶음 국수 초이완(Tsuivan)
부즈와 초이완
몽골식 찐만두 부즈는 우리 만두와 비슷하지만 만두 속이 두부와 고기, 야채 등으로 구성된 우리 만두와는 다르게 다진 양고기만으로 속이 구성되어 있었다. 육즙이 많이 있기는 했지만 소가 고기만으로 되어 있어서 우리 만두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소 퍽퍽한 느낌이었다. 부즈를 주문하면 양배추나 당근을 초절임 한 절인 야채들이 함께 나오는데 부즈의 기름진 소와 약간의 퍽퍽함을 잡아주어 조화가 좋았다. 부즈와 함께 몽골 식당에서 대중적으로 볼 수 있는 음식 중 하나가 볶음면 초이완이다.
초이완은 양고기나 소고기와 야채를 몽골 특유의 길이가 짧은 밀가루 면과 함께 기름에 볶은 음식이다. 면의 질감이 조금 생소해서 우리 입맛에는 호불호가 있을 듯한 맛이다. 초이완을 맛보면서 이전에 책 속에서 만난 음식이 떠올랐다. 꽤 오래전 KBS의 다큐멘터리로도 방영된 적이 있었던 이욱정 PD의 ‘누들로드‘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이 책은 국수의 기원을 찾아가는 여정을 기록하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최초의 국수로 추정되는 음식은 유목민에게서 비롯되었으며 지금처럼 길이가 긴 국수의 모습이 아니라 다소 길이가 짧은 밀가루 면이었다고 한다. 몽골의 초이완이 ’누들로드‘에 기록된 조상국수에서 유래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며 다행히 내 입맛에는 잘 맞았던 볶음 국수 초이완을 즐겼다.
뚜까씨의 손맛 허르헉(Khorkhog), 튀김만두 호쇼르(Khuushuur)
허르헉과 호쇼르
울란바토르에서 아들 재환과 여러 가지 음식을 즐겼지만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 허르헉과 호쇼르였다. 일정 중간에 투어가 시작되고 투어가이드인 뚜까씨가 몽골 음식 중 먹고 싶은 음식이 있냐는 질문에 단박에 허르헉과 호쇼르라고 대답했다. 뚜까씨는 투어 이틀째 저녁 메뉴가 허르헉이니 본인의 솜씨를 보여 주겠다고 말했고 호쇼르는 여정 중에 호쇼르를 파는 식당이 많아서 꼭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투어 두 번째 날 쳉헤르 온천으로 향하는 도중 뚜까씨는 양고기 정육점에 들러 싱싱한 양고기를 골랐고 양배추와 감자, 당근 등 야채를 구입했다. 몽골의 대표적인 요리인 허르헉을 위한 재료이다. 몽골투어는 운전기사와 가이드가 손님들의 여행을 조력한다. 가이드는 여행을 소개하는 가이드이기도 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요리사이기도 하다. 가이드로서는 친절한 뚜까씨가 요리사로서는 어떨까 의구심을 가지며 저녁식사를 맞이한다.
쳉헤르에 도착해 뜨끈한 물에 온천을 즐기고 근사한 허르헉을 기대하며 미리 구입한 얼음덩이에 맥주를 식히고 있는데 뚜까씨와 운전기사 미스터 반이 허르헉 솥을 들고 게르로 들어온다. 모두가 생전 처음 먹어보는 음식을 가운데 놓고 집중한다. 훌륭한 맛이다. 솥의 안쪽에는 양고기와 감자, 당근이 적당한 크기로 잘려져 있고 위쪽은 양배추로 잘 덮여 있었다. 양고기 냄새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의외로 냄새는 양배추 삶을 때 나는 냄새뿐 양고기의 역한 냄새는 전혀 없었다. 적당한 기름기와 고기의 담백함이 적절하게 섞인 부드러운 양고기는 모두의 호평을 받았다. 양고기뿐 아니라 양고기의 기름기를 적당히 머금은 양배추와 감자는 오히려 양고기보다 인기가 더 좋았다. 20대의 젊은 친구들도 너무 맛있다는 칭찬이 이어지자 요리를 준비한 뚜까씨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도대체 고기에 무슨 짓을 한 거냐는 물음에 소금만으로 간했다는 말과 함께 그저 손맛이라는 말을 미소와 함께 보낸다. 어쩌면 정말 몽골 어머니의 손 맛일지도…(뚜까씨는 10대 딸이 있는 엄마이다.)
호쇼르는 뚜까씨의 말처럼 여정 곳곳의 식당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나는 호쇼르에 대한 설명을 양고기나 소고기가 들어간 군만두라고 들었고 사진을 본 적은 없었다. 어느 날 이동 중에 작은 식당에 들어가 호떡처럼 생긴 고기전을 맛있게 먹고 차 안에서 뚜까씨에게 ‘오늘 점심이 맛있었어요. 그런데 호쇼르는 언제 먹지요?‘라고 물었다. 뚜까씨는 황당한 얼굴로 ‘삼촌! 금방 먹은 음식이 호쇼르예요 ㅎㅎㅎ‘ (뚜까씨는 여행 내내 나를 삼촌이라고 불렀다.)
호쇼르는 만두보다는 고기전이나 호떡에 가까운 음식이다. 밀가루 반죽 사이에 얇게 여민 양고기나 소고기를 넣어 튀긴 음식이다. 호떡처럼 기름진 음식이고 크기는 호떡보다는 크고 빈대떡 정도의 크기이다. 호쇼르는 간장이나 케첩에 찍어 먹는다고 한다. 워낙 기름진 음식이다 보니 콜라 같은 탄산음료와 잘 어울릴 듯하다. 호쇼르를 파는 소규모 식당들이 많은 것으로 봐서는 서민적이고 대중적으로 많이 먹는 음식인 것으로 보인다.
아이락, 수테차, 샤슬릭
축제장터에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아이락과 보드카를 잔 술로 즐길수 있었던 샤브샤브 식당
허르헉이나 초이완, 호쇼르처럼 맛있게 먹은 음식이 있는가 하면 웬만한 음식은 나라를 불문하고 잘 먹고 즐기는 나도 쉽지 않은 음식도 있었다. 바로 아이락이다. 아이락을 요거트라고 불러야 할지 막걸리 같은 주료로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마유를 발효시켜 만든 것이 아이락이다. 맛이 시큼한 막걸리를 마시는 듯한 느낌이고 시장이나 마트, 나담축제 행사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으로 봐서는 대중적으로 즐기는 몽골의 대표적 음료로 생각된다.
아이락만큼이나 몽골인들이 많이 마시는 음료가 하나 더 있다. 울란바토르에서는 물론이고 투어 중 들르는 도로 휴게소 식당에서도 대부분의 몽골인들이 식사 전 후로 마시는 음료가 있다. 바로 수테차이다. 몽골 첫날 울란바토르의 작은 식당에 갔는데 우리 돈 500원쯤 하는 따뜻한 음료를 마시고 있어서 호기심에 나도 주문했다. 짭짤하고 연한 육수 같기도 한 이 음료수가 수테차였다. 찻잎을 끓인 물과 우유 그리고 소금을 넣어 만든 차이다. 식사하면서 대부분의 몽골인들이 마시는 것 같았고 내 입에 잘 맞지는 않았지만 추운 몽골의 겨울에 몸을 녹이기 위한 음료로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입맛도 변한다는 것을 여행을 통해 알고 있다. 태국의 똠양꿍이나 중국에서 처음 먹어봤던 고수, 냄새가 엮겨웠던 두리안도 지금은 찾아다니며 먹을 만큼 좋아하게 되었다. 아이락이나 수테차도 다음 몽골여행에서는 몽골의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으로 적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 밖에도 현지 친구의 추천으로 찾아갔던 샤브샤브 식당(The bull hot pot restrant)의 음식도 깔끔하고 맛있었다. 정확한 정보인지는 모르겠지만 샤브샤브가 몽골에서 전해진 음식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음식은 전체적으로 맛있었고 식당도 깔끔했고 직원들도 친절했지만 한국의 샤브샤브집과 큰 차이가 없어서 조금 아쉬웠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식당의 장점은 말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과 몽골의 보드카를 잔 술로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몽골 보드카 에덴과 징기스를 잔술로 맛보고 내 입맛에 잘 맞았던 에덴을 마트에서 구입해서 여행 중에 마셨다.
몽골 여행 중 맛있게 즐겼던 음식이 하나 더 적어 보자면 샤슬릭이다. 아이 주먹만 한 커다란 양고기를 쇠로 만든 꼬치에 끼워 숯불에 구워주는 음식이다. 울란바토르 시내에 전문점도 많았고 고급 식당에서도 취급하는 음식이다. 가격도 천차만별이지만 저녁시간 샤슬릭과 인도의 난과 비슷한 빵 그리고 맥주가 곁들여진 저녁식사는 최고의 만찬이다.
앞서 말했듯이 나에게 여행의 절반은 음식이다. 혀 끝의 즐거움, 성욕만큼이나 큰 욕망의 창구인 식욕이 이유이기도 하지만 음식 안에는 사람들의 발자취가 있고 역사와 삶이 녹아있다. 그래서인지 몽골의 음식에는 그들의 유목의 역사 사람과 초원의 이야기가 묻어 있어서 충분히 여행 절반의 몫을 해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