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크레타, 조르바의 자유가 숨 쉬는 곳.
한달살기와 같이 장기간 한 장소에 머무르는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 바로 그리스의 남쪽 섬 크레타이다. 크레타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섬이다. 제우스의 어머니 레아가 자식을 잡아먹는 남편 크로노스의 눈을 피해 제우스를 낳고 기른 곳이다. 크레타는 미궁(미로)으로 유명한 미노스 신화의 땅이기도 하다. 크레타는 이집트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합쳐져 크레타 문명을 만들어 냈고 크레타문명은 그리스 로마 문명의 시발점이 되었다. 크레타는 아프리카, 중동 문명과 유럽 문명의 시대적, 지리적 허브이다.
그리스로마 신화 외에도 크레타가 배경이 되는 책들이 몇 권 더 있다. 첫 번째 책은 양정무의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이다.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소개하는 1권에 이어, 2권에서는 이 두 문명을 이어받은 에게문명의 꽃, 크레타 문명에 대해 다룬다. 이 책을 읽으면 누구나 북아프리카, 중동,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으로 이어지는 에게해의 문명여행을 꿈꾸게 된다. 두 번째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이다. 도쿄의 문학청년 무라카미 하루키는 멀리서 들려오는 마음속 북소리를 듣는다. 북소리의 부름을 따라 도착한 곳이 그리스의 섬 크레타이다. 그리고 크레타에서 90년대 수 없이 많은 청년들의 공감을 샀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을 집필한다. <먼 북소리>는 하루키가 크레타를 중심으로 유럽에 머문 4년 동안의 여행이야기를 쓴 책이다.
크레타가 배경인 책으로 소개하고 싶은 마지막 책은 그리스의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주인공 ‘나‘와 60대 초로의 조르바가 크레타섬에서 겪는 이야기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조르바를 통해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는 원초적 자유에 있음을 이야기한다. 조르바는 스스로에게 위선적이지 않고 솔직하다. 여자, 인종, 국적, 나이 등 원초적 나(자유)를 구속하는 모든 것들을 부정한다. 이성적이며 합리적이라는 지식인의 허울 뒤에 숨겨진 본능적 자유를 찾아야 한다고 고함지른다.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을 읽기 전 나와 읽은 후의 내가 다르다고 생각될 만큼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성과 합리 속에 숨어 버린 나에 대해서, 나의 자유에 대해서 고민하게 해 준 책이다. 최소한 내 삶이 종속적이지 않아야 한다. 나는 나의 것이어야 하며 독창적이어야 한다. 나를 뒤덮고 있는 편견과 허울은 나의 자유와 타자에 대한 존중을 침해한다. 편견과 허울 속에서 벗어나 자유의 춤을 추라고 조르바는 이야기한다.
"기분 내키면 산투르를 치겠지요. 내 말 듣고 있소? 마음 내키면 말이오. 당신이 바라는 만큼 일해 주겠소, 거기 가면 나는 당신의 사람이니까. 하지만 산투르는 말인데, 그건 달라요. 산투르는 짐승이요. 짐승에겐 자유가 있어야 해요…. 처음부터 분명히 말해 놓겠는데 마음이 내켜야 해요. 분명히 해둡시다. 나한테 윽박지르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조르바의 악기인 산투르를 연주해 달라는 조르바의 고용인인 <나>에게 산투르는 짐승이고 짐승에게 자유가 있으니 자유의지에 의해서 마음 내킬 때만 연주하겠다고 말한다. 나의 노동력은 당신에게 고용되었지만 내가 인간으로 가져야 할 자유의지가 종속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내가 인간임을 존중해 달라고, 내 자유를 존중해 달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조르바의 자유이다.
이성과 합리로 포장된 민주주의에 의해 운영되는 현대사회에서도 나의 자유는 지위와 권력의 위계에 종속된다. 어쩌면 권력 종속의 그 질서 속에서 나는 안정감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 자유를 망각하고 내가 인간임을, 짐승임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노동은 자유를 확대시키기 위한 투자가 아니라, 스스로를 권력에 종속시켜 그나마의 자유를 지키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나마의 안정이 깨지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안정이 깨지지 않기 위해서는 말썽없는 생활을 지향해야 한다. 조르바의 말처럼 용기없는 지식인이라는 인간군상은 원하는 것을 참아가며 귀머거리 대문만을 찾아 두드리는 쓸데없는 짓을 반복하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멈출 수 없다. 우리는 말썽이 생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말썽이 생기는 건 질색이에요!"
"말썽이 질색이라고! 어디 좀 들어 봅시다. 두목이 원하는 건 도대체 뭔지. … 산다는 게 곧 말썽이오. … 죽으면 말썽이 없지. 산다는 것은… 두목, 당신, 산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오?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바로 삶이오!"
… 소위 지식인이라는 것들은 귀머거리 대문만 두드리는 한낱 쓸데없는 짓들을 하게 마련이다.
<그리스인 조르바> 조르바와 나의 대화 중에서...
"……내게는, 저건 터키 놈, 저건 불가리아 놈, 이건 그리스 놈,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두목, 나는 당신이 들으면 머리카락이 쭈뼛할 짓도 조국을 위해서랍시고 태연하게 했습니다. (중략) 요새 와서는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쁜 놈, 이런 식입니다. 그리스인이든, 불가리아인이든 터키인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중략) 나이를 더 먹으면 이것도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놈이든 나는 그것들이 불쌍해요. 모두 한가집니다. 태연해야지 하고 생각해도 사람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이 자속에도 하느님과 악마가 있고 때가 되면 뻗어 땅 밑에 널빤지처럼 꼿꼿하게 눕고, 구더기 밥이 된다. 불쌍한 것! 우리는 모두 한 형제간이지. 모두가 구더기 밥이니까."
"……내 조국이라고 했어요? 당신은 책에 쓰여 있는 그 엉터리 수작을 다 믿어요? 당신이 믿어야 할 것은 바로 나 같은 사람이에요. 조국 같은 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그것도 앞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내 버킷 리스트 중에 하나가 ‘지구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서울시민으로, 한 직장의 직원으로, 한 가족의 성원으로 살아간다. 평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아시아인으로, 황인종으로, 장애가 없는 정상인으로 살아간다. 편견이나 결핍이 느껴지는 상황에 부딪히지 않는 한 우리는 구성원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작은 편견이나 결핍은 나와 너를 분리하고 선과 악,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하게 된다.
여행은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 변화를 만들어 타인과의 다름을 만들어낸다. 여행을 통한 이동은 피부색을 바꾸고, 문화와 습관을 바꾼다. 내 나라에서 정상적인 일들이 다른 땅에서 비정상적인 일이 될 수도 있다. 피부색이나 언어, 경제적 상황은 우리를 편견덩어리로 만들곤 한다. 긴 시간 여행할 기회가 오면 국적, 피부색, 언어의 다름에서 오는 편견을 최소화하고 열린 마음으로 여행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생각의 결과가 ‘지구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다.
조르바는 조국이라는 강압적 이데올로기에 조종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 것을 후회한다. 조르바는 선과 악, 좋음과 나쁨을 떠나 인간은 죽음을 향해가는 애처로운 존재이며 형제라고 말한다. 더불어, 인간은 가슴 뭉클한 존재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이 땅에 같이 숨 쉬고 살아가다 동일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만으로 아련함이 있는 존재일 수 있다는 말이다.
천천히 달리는 기차의 차장을 통해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슬픔에 빠진 검은 장례행렬, 피부색과 문화, 형식은 다르지만 우리와 같은 지구라는 공간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조르바가 말했던 것처럼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동종의 생명체라는 것만으로 신뢰와 사랑을 보내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여행을 해보고 싶다. 지구인으로 살아보고 싶다.
목이 메었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우리 오두막 문 앞에서 대지와 바다를 바라보았다. 밤새 세상이 달라진 것 같았다. 내 맞은편 모래사장 위의 하루 전만 해도 색깔이 형편없이 우중충하던 가시덤불이 아침에 보니 하얀 꽃으로 잔뜩 덮여 있었다. 공기 속에는 꽃핀 레몬과 오렌지 향내가 그윽하게 풍겨 왔다. 나는 몇 걸음 걸어 나가 보았다. 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기적은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중략)
……두목, 저기 저 건너 가슴을 뭉클거리게 하는 파란 색깔, 저 기적이 무엇이오? 당신은 저 기적을 뭐라고 부르지요? 바다? 바다? 꽃으로 된 초록빛 앞치마를 입고 있는 저것은? 대지라고 그러오? 이걸 만든 예술가는 누구지요? 두목, 내 맹세코 말하지만, 내가 이런 걸 보는 건 처음이요! (중략)
그는 밖으로 달려 나와 봄철 망아지처럼 풀밭을 구르고 춤을 추었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눈을 깨어 바라본 푸른 바다를 기적이라 느끼며 눈물 흘리는 사람. 문득 눈에 띈 초록색 대지에 가슴 뭉클함을 느끼는 사람. 그가 바로 조르바이다.
떨리는 가슴과 눈물 나는 일상을 예술로 여길 수 있는 사람이 아름다움을 아는 인간이다. 지금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에 목이 메이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 아름다움을 아는 자유인이다. 일할 때는 모든 것을 걸고 일하고 사랑할 때는 모든 것을 잊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자유인임을 조르바는 말한다.
언제쯤 푸른 바다의 아름다움에 목이 메어 초록색 대지를 뛰고 구르며 춤을 출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조르바를, 자유를 꿈꾼다.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는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는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 해 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나는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 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 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그리스인 조르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