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히말라야 환상 방황 - 정유정

단문의 향연

산 여행을 체질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수 백 킬로미터의 도보여행을 여러번 해 봤지만 산에 오르는 것은 왠지 젬병이다. 한동안 등산에 취미를 붙여보기 위해 집에서 가장 가까운 관악산이며, 청계산에 올라 보았다. 등산이 즐거워지면 더 좋은 여행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아내와 산을 찾았다. 맘과 뜻대로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다리가 영 움직이지 않는다.


등산에 취미도 없는 내가 히말라야 여행에 대한 책을 고른 이유는 오롯하게 작가 정유정이다. 정유정 작가는 내가 따라 하고 싶은 문체를 가진 작가이다. 정유정의 문체를 한마디로 말하면 단문의 향연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정유정작가의 글은 짧은 단문으로 구성된다. 문장의 길이뿐 아니라 연결도 문장만큼 단순하다. 그리고나 그러나 등 접속사의 사용을 지양한다. 문장의 연결은 단문과 단문의 내용적 조합이 이용된다. 그 연결이 인위적 접속사보다 더 자연스러워 독자가 인식하기 어렵다. 나는 그런 글쓰기를 좋아한다.


도서관에서 이 책 '히말라야 환상 방황'을 대여하고 독서일지*에서 정유정의 책들을 찾아본다. <7년의 밤>, <28>, <종의 기원>,<완전한 행복>,<영원한 천국> 모두 5권의 책을 읽었다. 대부분의 책은 하드보일드한 경향을 띈 책들이다. 문체만큼이나 이야기의 구성도 명징한 글들이다.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고 한 번 손에 잡으면 마지막 장까지 손을 뗄 수 없는 소설이다. 정유정의 문체와 보장된 이야기 꾼이 써 내려간 여행기는 어떤 맛일까라는 궁금증으로 책읽기를 시작한다.

(*독서일지 : 읽은 책과 일시를 모바일 수첩에 기록하는 나만의 독서일지, 10여 년째 기록 중)


# 역시 단문의 향연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잠을 깨웠다. 나는 눈을 떴으나 대답은 하지 않았다. 시야가 어두워 잠시 암순응이 되기를 기다렸다. 방 안 공기는 차고 눅눅했다. 주변이 고요했다. 밤새 쏟아지던 장대비가 그친 모양이었다. 잠들기 전 상상한 '내일 아침 내 모습'이 기억났다. 카라반 모자를 깊숙이 눌러 쓰고 판초 자락을 휘날리며 빗속으로 걸어간다. '장고'처럼 한쪽 어깨에 배낭을 삐뚜름하게 거리고, 뚜벅뚜벅.

-히말라야 환상 방황에서


소설 속에서 만들어 낸 단문의 글쓰기는 여행기에서도 계속된다. 단문은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장문이 만들어 내는 복잡하고 애매함에서 나오는 현학적 묘사를 단문이라는 형식으로 배제할 수 있다. 나는 말하기나 글쓰기가 가능한 단순하고 의미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확한 의미전달을 위해 형식적으로 가장 좋은 방식이 단문의 사용이다. 단지 단문을 사용한다고 해서 정확한 의미전달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단문의 사용은 몇 가지가 추가로 전제될 때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문장의 자연스러운 연결이다. 접속사의 유무와 관계없이 문장과 문장의 연결은 의미의 연결로 이어져야 한다. 전, 후문장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쓴 글을 읽어보고 고쳐 쓰는 것이다. 내가 쓴 글을 읽고 고쳐 쓰는 것 이상으로 문장의 연결을 매끄럽게 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논리적 연결보다 읽고 수정하여 자연스러운 연결로 이끄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두 번째는 어휘력이다. 긴 문장보다 단문으로 쓰기 위해서는 많은 단어들을 필요하다. 단순한 단어의 뜻과 함께 현상이나 상황에 대해 정의할 수 있어야 내 생각을 짧은 문장으로 표현해 낼 수 있다. 어휘력과 상황에 대한 정의는 곧 지식이다. 글쓰기를 위한 지식은 단순한 경험과 독서에서 비롯된다고 보기는 힘들다. 경험과 독서에 기반하지만 사색을 통한 현상의 파악과 정의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정유정의 글을 좋아한다. 정유정의 글은 현학적이지 않아도 명확하다. 생각과 풍경에 대한 묘사가 짧은 문장과 그 연결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짧지만 어설프지 않고 명징하고 부족함이 없다. 이런 글을 좋아하고 지향한다.


#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일까?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싶었다. 이 낯선 세상에서 오만가지 일로 허둥대는 내 꼴이 우스웠다. 여기에 왜 왔는지, 기억해보려 해도 생각이 모이질 않았다. 원하는 '무엇'이 있으리라 믿었던 것 같은데, 삼십 일도 아닌 단 사흘 만에 의심이 모락거리고 있었다. 정말로 믿었는지조차 확실치 않았다. 그저 달아나고 싶었던 건지도 몰랐다. 세상으로부터, 인간으로부터, 아니 나 자신으로부터.

- 히말라야 환상 방황에서


육체적으로 힘든 여행이나 혼자 떠나는 여행을 하다 보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내가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이지?'라고. 집 떠나 낯선 땅에서 허둥거리며 헤매는 꼴이 스스로 우스워 보일 때가 있다. 숙소의 허름한 침대에 앉아 맥주에 얼콰해져 이게 맞나 싶을 때가 있다. 정유정도 비슷한 상황을 맞이한다. 생전 처음 겪는 히말라야 등반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 틈에 끼여 힘든 산행을 하다 보면 그럴만도 했을 성싶다.


떠나면 무엇인가 있으리라고 믿으며 언제나 길을 떠난다. 어쩌면 여행 자체가 좋아서라기 보다는 정유정의 말대로 세상으로부터, 인간으로부터, 내 자신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어 여행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여행은 현실의 도피가 아니라 새로운 도전인 양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다. 힘들면 가끔 도망가도 된다. 너무 힘들면 못 본척해도 좋다. 세상으로 부터, 인간으로 부터, 내 자신으로 부터 모든 힘을 다해 달아나도 좋다. 하지만 여행을 하다 보면 내가 달아나 피했던 세상과 인간과 내 자신을 다시 만나게 된다. 투쟁의 연속이다.


옴마니밧메훔.
옴은 우주, 마니는 지혜, 밧메는 자비, 훔은 마음. 우주의 지혜와 자비가 마음에 깃들기를 비는 말이래요. 계속 외우면 마음에 평화가 온다가 하네요.


# 천천히 그려지는 글쓰기를 사랑한다.


이른 아침, 바람이 잠든 틈을 타 호텔을 출발했다. 안개에 휩싸인 마을을 빠져나가 사과나무가 우거진 길로 나섰다. 50여 미터, 워밍업을 하듯 느릿느릿 걷다 걸음을 멈췄다. 과수원 철책 밖으로 사과나무가지들이 푸른 사과를 주렁주렁 매달고 휘늘어져 있었다. 저절로 손이 올라갔다. 세간에 알려진 대로 훔친 사과가 더 맛있는지 궁금했던 건 결코 아니다. 지난밤 불어대던 그 엄청난 바람이 이 작고 어린것들이 어찌 견뎠을까, 안쓰러웠다. 검부의 시선이 뒤통수를 쿡 찔러오지 않았더라면, 그 아리따운 사과들에게 내 진심을 전할 수 있었을 텐데.


영상의 시대. 책보다는 유튜브로 세상을 보는 시대. 글쓰기보다는 영상으로 나를 표현하는 것이 대세가 된 시대가 되었다. 작가보다는 영상 크리에이터가 우위에 있는 시대이다. 하지만 영상보다, 사진보다 활자로 보여지는 세상이 아름다울 때가 있다. 그것은 상상의 힘이다. 프린트에서 아름다운 풍경의 사진이 출력되듯이 글의 흐름에 따라 머릿 속 스크린에 풍경이 새겨진다. 글을 쓰는 모든 이들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다른 그림을 출력해 낸다.


이른 아침 잠이 덜 깬 채 길을 나선다. 길 위에서 만난 안개 휩싸인 마을과 마을을 둘러싼 사과나무. 전날밤 불어온 거센 바람에 살아남은 안쓰러운 작은 사과덩이. 마을 풍경에 늦춰진 걸음 속에 정유정은 가이드의 눈치가 보인다. 작가가 본 세상과 표현한 세상, 그리고 독자인 내가 느끼는 세상은 같지만 다른 세상이다.


여행을 표현하는 매체로 글쓰기는 영상이나 사진보다 직접적이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지만 각자의 상상 속에서 매체를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작은 카페나 길가 벤치에 하루 종일 앉아서 낯선 풍경과 사람들을 바라보며 여행기를 써 보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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