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3. 22:30. 내란의 시작

논픽션 스토리텔링 #1

by 오프더레코드

2024년 12월 3일은 평범하고 지루했다. 낮에는 일반적인 업무를 처리했고, 저녁엔 약속이 있었다.

K신문 기자 후배 2명과 여의도 '이기자네황소곱창구이'에서 곱창 칙칙 굽고 소맥을 마셨다.

"기자가 하는 집인 줄 알았는데, 창업자 할머니 성함이 이 '기'자 '자'자 였네?"

이런 류의 농담을 주고 받으며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했다. (17년 기자일을 하다 갑자기 국회의원실 선임비서관으로 이직한 지 한달 정도 지났을 때였는데, 그 자세한 사연은 나중에, 아니면 말고. 뭐 그런게 대단히 중요한 것도 아니고)

근처 치킨집으로 2차를 갔다는데, 그 기억은 없어졌다가 어제(2025년 4월 7일) 그들을 다시 만나서 알게 됐다. 기억은 없지만, 그날 우리는 멀쩡하게 밝은 얼굴로 헤어졌다고 한다. 서강대교를 건너 집으로 가는 버스로 한 번 갈아탄 뒤 윤석열이 22시30분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정확히는 신촌 연세대 앞 굴다리 아래 상암동행 172번 버스 안이었다.

전 직장 술친구 방에서 그 시각 야근 중이라 유일하게 제 정신인 동료가 22시35분 1보를 전했다. 22시 50분쯤 집에 도착한 뒤 술을 깨기 위해 양치를 하고, 길어질 밤에 대비해 편한 바지로 갈아 입었다.

사무실 식구들의 텔레그램방에는 이미 전원 긴급 소집령이 내려져있었다.

'국회는 봉쇄됐겠지? 택시도 가지 않겠지?'

마침 그 때 퇴근한 아내에게 "지금 국회 다시 가야되는데 태워줘"라고 했다.

그러자 아내는 회사에서 피곤한 일이 있었는지,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자야겠다며 택시를 불러줬다.

내가 "비상계엄인데 택시가 가겠어?"라고 말하기가 무섭게 3분 뒤 집앞에 온다는 알람이 떴다.

다시 집을 나서며 '지금 저 여자가 비상계엄이라는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들은걸까?'라고 생각했다.

택시를 탔는데, 라디오를 듣고 있던 50대 후반~60대 초반의 기사님은 "벨트 꼭 매세요. 밟을테니까"라고 말하고는 월드컵 대교-노들길을 120km로 밟았다.

"국회 직원이시죠? 미친놈이 지금이 어느 때라고 비상계엄이야. 비상계엄이"

"기사님, 들어갈 수는 있을까요?"

"네. 다른 기사들이 3문으로는 들어갈 수 있다고 하네요"

노련미 넘치는 민주 택시 기사님은 그 와중에도 과속, 신호 단속 카메라를 잘 피해가며 정확히 9분 만에 국회 3문 앞에 나를 내려주셨다.

"요금 안 받고 싶은데, 자동결제네요. 꼭 계엄 해제시키고, 어쨌든 죽거나 다치면 절대 안돼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하고, 너무 무섭고, 너무 고마운 이야기였다.

국회 3문 앞에는 경찰버스가 서 있었지만, 버스는 담과 문을 다 틀어막은 게 아니라 비스듬하게 서 있었다. 텔레그램으로는 모든 문이 봉쇄됐다는 소식이 전해졌기에 담을 넘어볼 요량으로 그 앞을 어슬렁거렸다. 그러자 기동대원같은데 무장도 하지 않고, 모자도 쓰지 않은 경찰 한 명이 "직원이신가요?"라고 물었다. 공무원증을 보여주자 버스 틈 사이 3문으로 안내해줬다. (응?)

"고생하세요!"

본청을 향해 달려가는 내 등 뒤로 인사도 했다.

민주 기사님에 이은 민주 경찰님을 만나는 행운 속에 44년 만에 계엄의 밤, 개인적으로는 아무 마찰없이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 도착한 건 정확히 23시14분이었다. 나도 맨정신은 아니었지만, 많지 않은 보좌진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던 로텐더홀엔 피곤과 긴장이 섞인 술냄새가 진동했다.

사무실 식구들 가운데 가장 먼저 도착한 나는 텔방에 "3문으로는 아직 출입이 가능합니다"고 소식을 전했다. 얼마 있지 않아 제일 가까운 영등포 오피스텔에 사는 20대 막내 비서관이 검은 모자에 롱패딩 차림으로 본청 계단을 올라오며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분위기에 맞지 않게 해맑은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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