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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은 Jean Jun 24. 2022

지나친 각색이 망친 너덜너덜한 '종이의 집'

넷플릭스 시리즈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리뷰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을 볼 바에는
그 시간에 '종이접기'를 하는 것이 심리적 안정에 좋을 것


북한학과 전공생으로서 지켜보기에 매우 통탄스러운 작품이다. 여러 면에서 총체적 난국이지만 이 답답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예비 시청자들을 위한 경고장을 한 자 한 자 적어나가보겠다.  


넷플릭스 시리즈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감독 김홍선/각본 류용재, 김환채, 최성준)은 남한과 북한이 한반도 경제협력구역을 건설하고 공동화폐를 쓰게 된다는 설정 아래 권력층에서 짓밟혀 살아가고 있던 서민들이 강도단을 구성, 조폐국을 점령해 공동 화폐를 노리는 과정이 그려진다.


종이의 집 스틸 ⓒ 넷플릭스 제공


작품의 배경은 통일 직전이다. 하지만 통일이 된다고 하여 모든 이들이 이득을 볼 수는 없는 법. 꿈을 가지고 남한으로 내려온 이들이 있는가 하면 적응하지 못해 튕겨져 나간 이들도 존재한다. 하물며 같은 동포를 챙기는 척하며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그 피해자 중 한 명이 도쿄(전종서 분)다.


(북한에서는 여성도 입대가 의무이기에) 도쿄는 군대에서 제대하자마자 BTS의 팬, 아미로서 K-문화를 접하러 부푼 꿈을 안고 남한으로 건너간다. 하지만 이주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하고 주변인들도 피해를 당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벼랑 끝으로 달리던 중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된 그는 경찰에게 쫓기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교수(유지태 분)를 만나 사상 초유의 강도 사건에 합류한다.


종이의 집 스틸 ⓒ 넷플릭스 제공


의미 없는 각색, 긁어 부스럼인 연출

원작의 스토리를 바꾸려는 자에게는 '왜 이렇게 각색됐을까'라고 묻는 시청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명백한 답변을 내놓을 책임이 있다.


스페인 원작을 한국의 정치적, 사회적 배경에 맞게 각색하는 시도는 좋았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잘 실현이 잘 되었고 시청자들이 이해하겠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애석하게도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원작과 바뀐 설정들 중의 대부분에서 그 의미를 전혀 찾을 수 없다. 그저 더 자극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일 뿐, 그야말로 실망 그 자체다.


종이의 집 스틸 ⓒ 넷플릭스 제공


도쿄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신은 BTS의 노래로 시작된다. 북한에서 남한의 문화를 불법으로 입수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긴 하나, 그것을 들으며 춤을 추고 따라 하는 도쿄의 모습에서는 묘한 위화감이 느껴진다. BTS라는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보이그룹, K-콘텐츠를 보여주려는 마음은 알겠으나 그저 BTS의 인기도에 탑승하려 작품과 캐릭터에 덧대 만들어진 억지스러운 설정으로만 보일 뿐이다.


하물며 단순한 관광객으로서 다른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거주지를 옮기는 것이 아닌, 공산주의 이념이 팽배한 사회 속에서 평생 살아온 캐릭터가 대한민국의 문화를 선망한다는 이유만으로 금세 자본주의 사회로 삶을 이주하고 이념을 받아들인다는 스토리라인은 이해할 수 없는 흐름이다.  


이뿐만인가. 2022년 현재, 실제로 북한 사람들도 스마트폰을 쓰고 최신 문명에 대한 인지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사람들이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창밖의 높은 건물을 보고 신기해한다거나 남한을 선망하는 발언을 하는 신은 당혹스럽기만 하다. 오롯이 한국 사람의 시선에서만 쓰인 작품이라는 것을 강조라도 하듯 북한 사람들은 모두 문명과 거리가 멀고 무지할 것이라는 편견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종이의 집 스틸 ⓒ 넷플릭스 제공


더불어 원작에서 시청자들의 과몰입을 불러일으키고 애정을 가지게 만들었던 매력적인 캐릭터들은 각색 과정 속 발생한 여러가지 요소들을 통해 제대로 망가졌다.


그 첫 번째 요소는 배우들의 연기력에 있다. 배우 김윤진, 유지태, 박해수, 김성오, 이주빈, 박명훈, 이원종을 제외한 모든 이들의 연기는 눈과 귀를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혼란스럽다. 이것이 대본 문제인지 연기자들이 지닌 역량 문제인지 모르겠으나, 그들이 함께 있는 장면은 통통 튀는 티키타카 대신 어색한 기운만이 감돈다.


북한에서 평생을 살다가 온 사람 치고는 고향의 사투리라곤 전혀 구사하지 않으며 완벽한 서울 말투로 이야기하는 도쿄 역의 전종서부터가 헛웃음을 유발한다. 더불어 사기 절도범인 나이로비는 스페인 원작의 터프하고 인정 많은 느낌보다는 '도둑들'의 전지현이 맡은 예니콜의 느낌에 가깝다. 무엇을 모방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원작에 대한 이해도는 없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는 연기력이다.


영화 '도둑들'이 떠오르는 것은 데자뷰인가...선수 입장 좀 그만 했으면


연기에 이어 케이퍼 무비(강탈 또는 절도 행위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범죄 영화)의 클리셰가 가득 담긴 대사도 가관이다. 왜 작품 속 장면들이 익숙한가 했더니 2009년작 '인사동 스캔들', 2012년작 '도둑들', 2014년작 '기술자들' 등 한국 범죄물에서 나오는 대사를 그대로 등장시켰다.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에서 나오는 "자자~ 대기들 타시고~", "뽀시래기 입장~"이라는 대사는  '기술자들'에 등장했던 "선수들 입장하세요~", 이른 바 '선수 입장' 대사를 그대로 베꼈다. 그야말로 한국 케이퍼 무비가 반복하는 전형적인 클리셰다. 웃프게도 이현우 배우는 '기술자들'과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두 작품에 다 출연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정도면 선수 전문 배우에 등극할 지경이다.


종이의 집 스틸 ⓒ 넷플릭스 제공


무엇보다도 이 시리즈가 최악인 이유는 연출 방식이다. 2022년에 공개된 작품, 게다가 2025년 시간적 배경인 작품을 보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여성 등장인물들을 성 상품화하는 카메라 워킹은 경악스럽다. 이러한 연출은 스페인 원작 '종이의 집' 시리즈에서도 등장하지 않았던 연출이다. 검색대를 통과하는 나이로비의 다리 사이를 클로즈업해서 비추는 신은 불쾌할 뿐이다.


스토리라인 또한 민감한 주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원작에서는 화장실에 숨어든 여학생이 자신의 남자친구가 몰래 찍은 영상으로 인해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당하는 모습이 나왔지만 각색된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에서는 여학생이 오히려 몰래 장거리 연애 중인 남자친구와 영상 통화를 하던 중 자신의 치마를 들춰올려 보여주려는 신이 나온다.


미성년자가 성적 노출을 하는 신, 그것에 각색을 더하려 했다면 민감한 부분까지 세밀하게 고려해야 했건만, 감독과 각본가는 전혀 그런 우려가 없었던 모양이다. 도대체 이 각색된 장면에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인가. 진짜 이해가 안 가서 그러니 누군가가 이해했다면 제발 알려줬으면 한다.


종이의 집 스틸 ⓒ 넷플릭스 제공


이 작품에서 겨우 칭찬할 점을 하나라도 찾자면 긴장감 있는 순간에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이다. 한국 전통 악기인 꽹과리, 징 등의 전통적인 사운드가 더해진 배경음악은 원작과 차별화되는 시리즈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각본, 이 정도의 연출 수준이라면 콘덴싱 광고 내레이션을 하는 듯한 감미로운 유지태의 목소리, 그리고 '오징어 게임' 신화를 이끌었던 박해수의 미친 카리스마가 있을지라도 깐깐한 넷플릭스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기엔 턱도 없을 것이다. 6월 24일 넷플릭스 공개.


*KBS스타연예 페이지에 발행된 글입니다.

https://kstar.kbs.co.kr/list_view.html?idx=215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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