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있어 중요한 가치 판단을 내릴 때 우리는 장점과 단점의 저울을 사용한다. 한편에는 장점, 반대편에는 단점을 올린 후 그 무게를 대비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저울이 어느 편으로 기우는 순간, 우리는 그 기울기만큼의 선택을 내린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저울질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그 결과를 전복시키는 절대적인 존재가 있다. 아무리 단점이 장점보다 압도적이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내가 파괴적인 삶을 살더라도 선택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절댓값. 바로 사랑이다.
ⓒ 워터홀컴퍼니(주)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감독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는 아메리칸드림을 쫓아 미국에 삶을 쌓아왔지만 자신의 이상과는 멀어져 가는 삶을 살고 있는 에블린(양자경 분)이 버스 점프(Verse Jump, 멀티버스에서 다른 유니버스로 이동하는 기술)를 통해 넘어온 다른 유니버스의 남편 웨이몬드(키 호이 콴 분)를 만나며 자신이 살지 못했던 삶들을 마주하고 지난 인생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대하는 방식을 깨닫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감독들은 작품의 제목을 '에브리씽(Everything)', '에브리웨어(Everywhere)', '올 앳 원스(All At Once)' 세 부분으로 나눈 3부작으로 파트를 구분했다. 이것이 감독들의 훌륭한 결정이었던 이유는 이 파트 분배가 영화에 미치는 영향에서 드러난다. 전개에 있어서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을 부여함과 동시에 멀티버스라는 다소 난해할 수 있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관객들을 위한 허들을 낮추는 효과를 준다. 더불어 그 파트의 제목에 해당하는 서사를 부여하며 작품의 하이라이트에 도달하기까지의 개연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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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파트 '에브리씽(Everything)'에서는 주인공 에블린의 현재가 있기까지 쌓아왔던 과거들에 대한 설명과 등장인물들에 대한 부연 설명이 들어간다. 에블린을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들의 설정은 어쩌면 현시대의 고정관념이라고도 부를 수도 있는 전형적인 아시아계 미국인의 모습이다. 아메리칸드림을 쫓아와 미국 땅에서 빨래방을 연 아시안 가족은 각자 다른 가치관을 지닌 3세대의 결합체이며 그로 인해 등장인물들 사이에는 우리가 한국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갈등 요소들이 드러난다.
그런데 이러한 클리셰 of 클리셰, 아시아계 미국인의 이야기와 오히려 편견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설정이 들어간 영화가 왜 해외에서 호평을 받고 갓 농장에서 딴 듯한 푸릇푸릇 한 신선도의 로튼 토마토 지수를 유지할 수 있었는가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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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손의 지문이 없어질 때까지 손뼉을 쳐주고 싶은 부분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영화에 담겨야 할 중요 요소 중 하나, 관객과의 공감대 형성이다. 이 작품은 비단 아시안 문화와 서양 문화 사이의 갈등을 겪은 이들의 이야기를 넘어 아시안 문화 전반의 공감대를 자극한다.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나와 들었던 말이 "죄송하지만 딸입니다"였던 에블린의 인생. 이후로도 아시안, 여성, 그리고 이민자라는 카테고리 안에 갇혀 거절당하고 외면당했던 꿈들. 그렇게 수없이 기회를 스쳐 지나오다 결국 젊은 시절 웨이몬드와 사랑에 빠졌지만 고향을 떠나겠다 했던 순간, 수확의 계절이 왔을 때 바람에 날려보내버리는 낙엽처럼 쉽게 딸과의 연을 끊어냈던 아버지까지.
이 모든 에블린의 전사는 현 유니버스의 에블린을 쌓아올렸다. 자신의 빨래방에서 돌아가는 빨래처럼 자신의 일상에 잔존하는 마음의 때 또한 씻기면 좋으련만. 힙겹게 세탁소를 운영하는 대가는 세무당국의 조사의 압박일 뿐이며 자신의 아버지가 동성애자인 손녀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는 선입견에서 비롯된 언행으로 딸과의 사이까지 틀어지고 남편과의 사이까지 소원해진다. 이 과정을 나열하는 파트 1은 주인공 에블린에 대한 연민 혹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파트 1이 해냈어야 할 목표인 '관객들과의 공감'을 이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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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안 될수록 더 좋아.
두 번째 파트인 '에브리웨어(Everywhere)'는 관객들의 멀티버스에 관한 이해가 이뤄진 후의 이야기가 다뤄진다. 버스 점프를 하는 방식이 평소에 하지 않을 법한 기이한 행동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이해한 에블린의 깨달음의 시작이다. 여기서부터는 에블린의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감독들의 기발한 연출과 컷의 전환, 엉뚱하지만 모든 의미로 연결 지어지는 시퀀스가 등장하며 이전 영화계에서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다.
정말 편집실에서 어마어마하게 머리를 쥐어짰을 것만 같은 다니엘 콴 감독과 다니엘 쉐이너트의 노고가 드러나는 부분들이 많은데, 예를 들어 사람을 살해하는 장면에서 머리가 터지는 것이 아닌, 콘페티(종이 꽃가루)가 흩날리거나 그 장면이 이어져 피나타 게임(멕시코에서 축제나 생일 등에서 성인들을 기리는 축일에 쓰이는 전통 인형을 눈을 가리고 방망이로 휘둘러 터뜨리는 문화)을 하는 신으로 이어지는 기막힌 연출 또한 영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도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 역할까지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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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이 엉뚱하고 신선한 시도 속, 위트가 담긴 순간 또한 영화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이 위트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멀티버스라는 서사 배경이 깔려있기에 불가피하게 1인 N 역을 해야하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중요했고 감독들의 입장에서는 캐스팅에 무엇보다도 중요했을 터였다. 이에 당연히 주연 배우인 양자경, 스테파니 수, 키 호이 콴의 역할도 컸지만 타 유니버스에서 일어나는 작은 이벤트들에 등장하는 캐릭터까지도 캐스팅에 심혈을 기울인 티가 톡톡히 난다.
특히 영화 '라따뚜이'를 모티프로 한, 생쥐 대신 너구리 '라따구리'에 대한 설정은 관객들을 폭소하게 만든다. 생쥐가 아닌 너구리가 머리카락을 조종하며 현란한 요리 실력을 뽐내는 장면은 미국 국민 드라마 '글리' 등으로 얼굴을 알린 해리 슘 주니어가 철판요리 전문 요리사 채드 역으로 등장해 소화하는데 혼란의 멀티버스 속 잠깐의 등장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임팩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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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 3인 '올 앳 원스(All At Once)'는 우연에서 이어지는 필연에 대해 이야기하는 최종장임과 동시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처음부터 등장했던 의문의 존재, 눈알 스티커와 베이글의 의미에 대해서 정리하며 에블린이 마주하는 인생의 진면목을 조명하는 하이라이트가 펼쳐진다.
사견이지만 에블린의 딸 조이(스테파니 수 분)이자 메인 빌런이었던 조부 투파키를 이길 수 있었던 건 두 가지 물체였다. 쿠키, 그리고 눈알 스티커. 무한한 멀티버스를 모두 경험했고 각각의 삶에서 모든 경험을 다 한 조부 투파키의 경우, 당연히 허무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었던 모든 종류의 인생을 보았고, 살았고, 행복함을 느낄 수 없었다 판단했다면 누구든 조부 투파키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무자비하기 그지없고 인간의 생명을 벌레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극강의 빌런이긴 하나 그의 전사로만 따지면 그가 지닌 허무주의를 우리는 비난할 수 없다. "삶을 살면 우리가 얼마나 더 작고 멍청한지 깨닫게 된다"는 그의 대사는 언제나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던 혼잣말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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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그를 이길 수 있는 첫 번째 물체는 눈알 스티커다. 사람들의 눈 사이에 눈알 스티커를 붙여 새로운 눈을 선사하는 것, 그것은 곧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전한다는 의미로 전해진다.
이 메시지는 영화 초반부 손님의 빨랫감이 없어져 찾는 에블린에게 남편 웨이몬드가 눈알 스티커를 붙인 빨랫감을 다른 곳에 놓고 "옷이 저기서 더 행복해 보이지 않아?"라고 묻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평소에 있던 일상 속에서 벗어나 다른 모습으로, 다른 장소에 있었던 빨랫감의 감정에 대해 묻는 웨이몬드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어쩌면 엉뚱한 말이지만 이 말은 영화의 메시지를 관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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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일하게 아는 건 우린 친절해야 한다는 거야. 특히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때일수록 말이야.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할 물체는 바로 쿠키다. 세무사의 말을 이해하려면 딸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영어를 능숙하게 하지 못하고 아직 미국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에블린. 동성애자인 딸의 애인을 자신의 아버지에게 소개하는 것을 엄두도 못 내고 결국 딸과의 관계조차 망친 그의 인생에 낙이란 없다.
고향을 떠나면서 선택한 일터조차 에블린에게는 고통의 현장이다. 세무사의 엄격한 세무조사에 시달리며 항상 에블린을 찾아와 전 아내의 냄새가 난다며 성희롱을 일삼는 진상 고객까지. 거기에 얹어 "셈 하는 사람들이 거스름돈을 잘못 주냐"며 인종 차별적인 언행까지 덧붙이는 행동에 에블린은 치를 떤다. 이런 에블린에게 인생은 이때까지도 너무 가혹했으며 삶이란 버텨야 하는 것이고 싸워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치 그 무엇도 통하지 않을 것 같은 깐깐한 세무사에게 건넨 쿠키는 에블린에게 시간을 벌어준다. 자세히 보면 깐깐하기 쿠키에는 웃는 모양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다른 유니버스에서 인기 많은 여성 배우가 된 에블린의 과거에는 쿵후를 오랫동안 배운 전력이 있는데 당시의 스승은 "쿠키 또한 쿵후가 될 수가 있다"고 말한다. 쿠키에 담긴 친절은 쿵후와 같은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삶에 지쳐있는 그, 그리고 모두에게 필요했던 것은 치열한 싸움으로 쟁취하는 이익과 승리가 아닌, 그저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에게 베풀 수 있는 친절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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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방식대로 싸워보려 해.
에블린은 영화의 끝에서 그가 잃어버린 것은 꿈과 기회, 혹은 어떠한 거창한 의미가 아닌,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소중한 찰나였음을 깨닫는다. 그러기에 남편 웨이몬드가 삶을 바라보는 친절의 방식을 이해하고 삶의 허무함에 질려 소멸되려는 조푸 투파키이자 자신의 딸에게 이젠 당당하게, 진심으로 공명하며 말하게 된다. 한 줌의 시간이라도 너와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고. 여기, 이 유니버스에서.
살다 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에피소드'들이 생긴다. 여느 때와 다름없던 출근길에서 재밌는 광경을 목격한다면 그것은 회사에 도착해 동료들과의 재미난 수다거리가 된다. 주말에 집에 있는 것 대신 평소와 달리 내가 하지 않았을 법한 일을 했다면 그 또한 짧지만 진귀한 경험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에피소드들은 모여서 삶의 원동력이 된다. 신기하게도 이러한 순간들은 엉뚱하고 말이 안 됐기에 삶의 기쁨이 되고 더욱 특별한 순간들로 탄생된다.
만약 에블린이 엉뚱한 행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지 않았다면, 세상이 시킨 대로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을 믿지 않고 남이 떠미는 의무를 어깨에 진 채로 여생을 보냈다면 함께 전자담배를 피우며 피도 눈물도 없었던 것 같은 세무사의 고통을 듣고 서로를 공감하는 일조차 있지 않았을 것이다.
에블린이 말했던, 이런 찰나의 순간들로 이뤄진 한 줌의 시간은 모이고 모여 손을 가득 메우고 모래성이 되어 쌓인다. 어떠한 파도에 쓸려 다시금 그 모래성이 쓸려나간다 해도 또 다른 모래성을 완성할 작고 큰 시간들은 일상에서 우연을 통해 필연적으로 다시 찾아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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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에서 딸의 이름은 '조이(Joy)'다. 한국어 의미로 '기쁨'. 만약 다른 선택을 해서 웨이몬드와 헤어지고 조이, 기쁨이 없는 삶을 살았다면 그 또한 그에게는 불행한 삶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알 수 있다. 모든 유니버스의 인생을 살아도 인생이 허무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한 줌의 소중한 시간이 사람과 삶을 살려낼 수 있는 힘이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이 작품은 단순히 멀티버스를 다룬 SF 판타지 영화가 아니다. 멍하니 창밖을 보더라도, 샤워를 하다가도, 잠을 청하다가도 베갯잇 위에서 무심코 떠올리며 피식 웃을 수 있는 것들이 있는 인생. 비록 그것이 한 줌, 아니 한 꼬집의 시간일지라도 그것이 존재했다면 우리는 최악이 아닌 최고의 유니버스에서 살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는 메시지다.
그러니 만약 지금 삶이 사는 것보다는 버틴다는 느낌이 든다면 이 작품의 전언을 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