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면이 필요한 자, 주문을 외워라 "샤잠!"

영화 '블랙 아담' 리뷰, 매우 혹독함 주의

by 정지은 Jean


내게 인류애란 싫어하는 사람에게서도 좋은 점을 먼저 보려고 하는 마음일 것이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같은 속담도 있지 않은가.


그러한 이유로 인해 이때껏 DCEU(DC 익스텐디드 유니버스)에게 참으로도 많은 기회를 주고 아량을 베풀었다. 하지만 <블랙 아담>, 당신... DCEU의 이음새를 빠짐없이 보아야 다음 챕터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극장에 들어섰으나, 그것은 관대한 자비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저스티스 리그>,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등... 실망감을 느끼며 눈앞에서 허망하게 바스러져버린 내 티켓값의 희생을 나는 왜 잊고 살았는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것을 알려준 영화 <블랙 아담>의 리뷰를 지금부터 시작한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일단 리뷰의 제목에 대해 해명 아닌 설명을 해보겠다. 필자는 실제로 정말 잠에 들어 극장에서 후반부를 보지 못했다. 버텨보려 했으나 미래를 보는 능력을 지닌 닥터 페이트(피어스 브로스넌 분)가 자신을 희생하며 자신의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을 때 나 또한 이 영화의 앞날이 안 보였기에 잠을 청했다.


정말 닥터 페이트의 대사 대로였을까, 최근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오랜만에 암흑 같은 꿀잠을 자고 일어나니 무척 기분이 아름다웠다. 뒤늦게 정신을 챙기고 시청한 쿠키 영상 또한 '아, 엔딩을 안 보길 잘 했군'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기에 이 리뷰는 티켓값이 아까워서 두 번은 돈 내고 보기 싫은 생각에 지인에게 들은 엔딩 장면과 조사를 통해 얻은 각종 자료를 토대로 쓰여졌다는 점을 미리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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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청사진

차근차근 DCEU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을 짚어보자. 유니버스와 그 속에 들어간 캐릭터들이 방대한 만큼 연결 고리가 있는 영화들을 연속적으로 제작하려면 촘촘하게 구성된 청사진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DCEU의 라이벌이라 볼 수 있는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페이즈들을 견고하게 잇고 모든 떡밥들을 연결 지어 회수시키는 능력에서 빛을 발해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DCEU는 MCU와 달리 청사진 만들기엔 소질이 턱없이 부족하다. 캐릭터를 잇는 것 대신 한 히어로, 그다음 히어로에 집중하기 급급하여 끼워 맞추기식으로 스토리를 지어내다 보니 배트맨과 슈퍼맨이 싸우거나 소위 '마블 따라 하기'로 불렸던 <저스티스 리그> 같은 기이한 작품이 탄생했다. 덕분에 DCEU의 상징적인 캐릭터라고 볼 수 있는 슈퍼맨은 2010년대 동안 스크린 속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가 생과 사의 경계를 오가며 난잡한 스토리에 몸을 맡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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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하는 걸 안 하고
못 하는 걸 고집하는 DCEU

분명 DCEU가 잘 만들어내는 작품이 있다. 대표적으로 꼽자면 <조커>인데 이 작품은 수많은 상을 휩쓸었을뿐더러 주연 배우 호아킨 피닉스가 실제 친구였으며 현재는 고인이 된 동료 배우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와 비견될 만큼의 극한의 연기력을 선보이며 그려낸 훌륭한 작품이었다.


더불어 로버트 패틴슨 주연의 <더 배트맨>도 암울한 고담 시티를 배경으로 정의로서 올바르게 선 존재 대신, 범죄자들의 위에 군림하는 공포의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이미지를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유년시절 자신의 부모가 살해당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고 이후 사람들의 시선에 갇힌 채 동물원 속 원숭이처럼 살아야 했던 그는 가치관 확립이 혼란스러웠을 터. 그러기에 선과 악, 영웅과 악당 사이에서 고심하는 로버트 패틴슨의 배트맨은 배우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배트맨 이후 오랜만에 보는 매우 인상적인 배트맨이었다.


하지만 마블 캐릭터들의 단체 공격과 디즈니 플러스 시리즈들의 활약에 정신이 홀린 DCEU 책임자들은 대중들의 호평을 다시금 잊어버린 채 다시 '마블 따라 하기'에 돌입했다. DC코믹스의 구성원들 사이에 갈등을 조장하고 등지게 하는 흐름을 다시금 <블랙 아담>에 담아낸 그들의 선택은 무엇을 위함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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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런은 뒤로하고 왜 서로 싸우는가

DCEU의 구성원끼리의 싸움은 뭐랄까, 대학 시절 술 취한 선배들의 싸움 같다. 갑자기 그냥 처음 본 것 같다 싶은 사람이 보이면 시비를 털더니 싸운다. 별 의미도 없고 오해를 풀 대화를 가질 시간도 없이 일단 주먹부터 갈기고 보는 것이다. 보는 사람 입장에선 싸움도 그런 한심한 싸움이 없다.


이러한 싸움이 담겼던 시초였던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영화였다. "대체 둘이 왜 싸우는 거야?"라는 말을 연속적으로 내뱉게 만들 정도로 개연성이 없는 이 작품은 '힘은 위협과 공포를 의미하니 억압해야 한다'라는 논리 하나로 이끌어 나갔고 이 정신은 <블랙 아담>에게까지 계승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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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담이 부활하고 인터갱의 침략을 받은 칸다크를 지켜내기 위해 분투하는 동안 저스티스 협회는 블랙 아담을 세계 평화를 위해 영입할 생각 대신 억압할 생각부터 꺼낸다. 단순히 '세상에 위협이 되는 존재를 가둔다'는 이유로 오히려 자신들은 외면했던 칸다크를 지키려는 유일한 존재인 블랙 아담을 교육하려 들고 지배하려 한다. (이쯤 되면 저스티스 협회가 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집단인지 의심이 갈 정도다.)


여기서부터 고구마 지수가 한껏 올라가는데, 닥터 페이트, 호크 맨, 스매셔, 싸이클론이 한 팀이 되어 블랙 아담이 도시와 시민들을 구하려는 행동을 저지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액션신은 화려한 CG로 장식됐지만 의미도 멋도 없다. 명분이 없는 싸움은 개연성을 잃는다. 그렇게 되면 영화의 완성도는 그때부터 무너져내리기 시작한다.


거기에 쿠키 영상까지 총체적 난국의 정점을 찍는다. 오랜만에 복귀한 헨리 카빌의 슈퍼맨이 등장하고 블랙 아담과의 싸움을 암시하는 다음 스토리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이 정도면 하지 말란 것만 계속하는 미운 5살을 보는 기분이다. 배트맨과는 이제 화해했으니 그다음은 블랙 아담이랑 싸워보라 이 뜻인가.


결국 매번 DCEU 영화에는 빌런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너네 왜 나한테는 관심 안 가져?"라고 묻게 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도대체 무엇을 위해 영웅들끼리 칸다크를 쑥대밭으로 만든 영화였는지 이해가 안 되는 식의 결론을 관객들에게 전한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당분간 DCEU 작품을 보지 않을 것만 같다. 2023년 개봉이 확정된 DCEU 영화 리스트를 보니 더욱 그렇다. 현재 절도 및 폭행죄로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배우 에즈라 밀러 주연의 <플래시>, 영화 내용보다 배우 엠버 허드가 하차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더욱 세간의 주목을 받아온 영화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 그나마 재밌게 봤던 캐릭터가 등장하는 <샤잠! 신들의 분노>, 그리고 <블루 비틀> 솔로 무비가 예정되어 있지만 논란과 상관없이 별반 기대가 되지 않는다.


영화와 별개로 다른 논란으로 인해 골머리를 썩고 있는 판국에 DCEU가 어떤 기지로 이러한 난제들을 극복할지는 모르겠으나 2023년이 그들에게 너무나도 혹독한 한 해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따뜻한 무관심으로 그들의 영화를 보지 않고 혹평을 쓰지 않는 것밖에는 없는 것 같다.


*이 글은 PAX MAGAZINE에 기고된 글입니다.


https://www.pax-magazine.com/post/숙면이-필요한-자-주문을-외워라-샤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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