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걸하는 사랑을 쥔 벼랑 끝의 두 여자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리뷰

by 정지은 Jean


결국 같은 사랑을 구걸했던 두 여자

기본적인 사랑이 주어지지 않아 생긴 결핍은 구걸로 이어진다. 그렇게 사랑에 결핍된 사람들은 다양한 행동으로 그것을 표출한다. 마음의 크기가 다른 상대방의 발밑에 조아리고 분노하다가도 끝내 혹시라도 모를 희망에 다시금 갈구하는 행위에 도달한다.


여기에 모녀, 아니 그저 두 여자가 있다. 모녀와 욕망은 서로 이질적인 단어지만 그 둘 사이에서 이 두 단어는 강렬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서로를 하대하고 마치 짐승처럼 물어뜯고 싸운다. 그렇게 끊임없이 학대하고 배척하지만 두 여자 사이의 내면은 또 다른 진실을 품고 있다.


ⓒ찬란


타이레놀은?

모녀의 사이에 존재하는 묘한 감정의 기울기는 영화 초반부부터 이어지는 단편적인 사건들로부터도 추측된다. 어디선가 유난스러운 통화를 하며 집에 들어오는 여자 수경(양말복 분)은 방금 빨래를 마친 속옷을 입고 나간다. 통화 속 상대방에게만 오롯이 집중하는 그는 자신의 속옷 빨래를 하는 이정(임지호 분)의 모습 따위는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날 저녁 이정에게는 생리가 찾아왔고, 이에 급격한 통증을 느낀 그는 수경에게 타이레놀을 사 와달라는 문자를 남겼지만 자신의 연인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에게 이정의 부탁은 관심 밖이다. 뒤늦게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들어온 수경에게 이정은 타이레놀의 행방을 묻지만 수경은 "넌 왜 내 안 좋은 점만 다 가져갔냐"며 면박을 줄 뿐이다.


ⓒ찬란


정말 닮았어? 내가 그렇게 못생겼어?
닮았다고 하지 마. 기분 나쁘니까.

딸과 닮았다는 연인의 말에 수경은 쏘아붙인다. 모녀 사이에는 묘한 벽이 있다. 수경의 폰에는 딸임에도 불구하고 이정의 이름이 그대로 저장되어 있고 수경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이정의 SNS 핸드폰 프로필 사진은 마치 텅 빈 이정의 마음처럼 아무것도 설정되지 않아있다. 마치 수경에게 투명 인간처럼 대해지는 자신의 존재처럼 말이다.


일상의 단서들 속에서 수경은 이정을 딸로 인식하지 않는다. 나아가 그러한 과정에서 다혈질로 포장한 학대를 행하는 수경의 모습은 잔혹하다. 하지만 조수석에 탄 이정을 사정없이 때리는 모습은 엄마가 자식을 훈육이라기에는 무자비한 수준이다.


그러던 그들에게 찾아온 차 사고는 둘 사이의 벽을 더욱 견고하고 높게 만들게 된다. 자신에게 애정이란 없었다고 생각한 이정은 마침 마트에서 자신을 차로 치게 된 수경을 의심하게 된다. 이 상황에서 수경은 그저 급발진 사고였다 주장하지만 서비스 센터에서는 차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내리며 둘 사이의 관계는 점차 꼬여간다.


ⓒ찬란


엄마, 제발 사과 한 번만 해. 사과 한 번만 해줘.

수경의 대사 하나하나가 이정의 마음에 비수를 꽂아내릴 때 이정은 오히려 사랑을 갈구한다. 마치 딸이라는 존재를 부정하려는 듯, 증오를 뿜어내는 살기를 터뜨리며 이정을 공격하고 무너뜨리는 수경. 이는 매우 폭력적이며 동시에 마치 이정에게 벼랑 끝에 자의로 서달라는 식의 언행이다.


하지만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사랑의 크기가 큰 사람이 지기 마련이다. 이정은 사과를 구걸하고 애절하게 조아린다. 그러나 달라지는 건 없다. 그들 사이의 시간은 너무 오래 지났고 그들의 삶 또한 과거 이정을 낳으며 생긴 제왕절개 자국으로 추측되는 상처처럼 어딘가에 정체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찬란


엄마의 사랑이 조건부라면

영화를 단편적으로 봤을 때 수경은 정말로 '나쁜 엄마'다. 자식을 보호하지 않으며 방임을 넘어 오히려 학대하는 쪽에 속한다. 그의 관심사는 몸매 관리, 연인과의 관계 등이고 그 속에 이정의 존재는 그저 자신이 가해자가 된 차 사고와 관련된 자라고 인식될 뿐이다.


하지만 <같은 속옷을 입는 여자>는 관객들에게 누군가의 편이 되라고, 수경을 비난하라고 말하는 작품이 아니다. 이는 영화의 후반부를 보자마자 가장 먼저 든 확신이었다. 두 여자, 아니 모녀가 바랐던 것은 그저 '잘' 까진 아니더라도 살고 싶다는 마음 자체다.


모녀라는 관계 속 자신이 받지 못한 사랑에 대해 돌려받고 싶었던 이정, 그리고 이정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망가졌다 생각했지만 결국 돌고 돌아 서로에게 돌아오는 수경. 어찌할 수 없는 사랑에 목말라하는 두 여자의 인생을 보다 보면 이제서야 납득이 간다.


이는 "돌려받지 못한 사랑은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우리 중 그 누구도 답을 알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도, 그리고 사랑도 고유한 존재다. 특정한 누군가에게 받은 사랑을 타인에서 메꿀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작품 속 두 여자처럼 사랑이 결핍된 경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갈구하고, 울부짖는 것뿐이다.



*이 글은 PAX MAGAZINE에 기고된 글입니다.

https://www.pax-magazine.com/post/movie-구걸하는-사랑을-쥔-벼랑-끝의-두-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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