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어디 가서 40대라고 얘기하는 게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만으로는 30대예요'라고 할 때도 지났고, '이제 막 40대가 되었어요'라고 할 법한 나이도 아니다. 30대까지는 청년, 40대는 중년, 50대는 장년 65세 이후는 노년이라고 하니, 중년이라 불린다고 억울해할 것은 없다.
그럼에도 중년이라는 말은 뭔가 어색하다.
중년여성이라고 하면 남편과 열살 남짓한 아이가 있고, 국민 평수라는 30평대 이상의 아파트를 자가로 가지고 있으며, 출근할 때도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는 투피스가 제법 잘 어울리는 그런 여성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러나 나는 어떠한가. 아이는커녕 남편도 없다. 아파트는커녕 살고 있는 빌라도 자가는 아니다. 염색도 하지 않은 새까만 생머리를 질끈 묶고 언제나 에코백을 들고 다닌다. 치마정장은 일 년에 한 두번 입을까 말까 하고 평일엔 무신사 정장바지, 주말엔 청바지에 맨투맨을 즐겨 입는다.
심지어 취미나 특기도 10대 때와 달라진 것이 없고, 여전히 아이돌을 좋아한다.
그런데 중년이란다. 미디어를 통해 학습된 이미지가 잘못된 걸까, 아니면 내가 잘못살고 있는 걸까.
이 괴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장년도 노년도 계속 어색하게 느껴지겠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 중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교를 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20대가 되고 드디어 청춘으로 인정받는다. 대학을 졸업하면 신입사원이 되고, 거기서부터 다시금 경력을 쌓아나간다. 보통은 그 과정에서 결혼을 하고, 또 출산을 한다.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페르소나는 점점 늘어가고 마침내 그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어쩌면 이것이 중년이고, 그런 중년이 갖는 외형적 특질이 바로 30평 아파트, 명품, 투피스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통과한 관문은 그저 입학과 졸업, 취업 정도이다. 결혼과 출산과 육아라는 강렬한 통과의례가 없었던 내 지금의 삶은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된 그 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연차가 쌓이고 직급이 올라가고, 초년생 때에 비해서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좀 생겼다는 점 외에는 아예 똑같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여전히 나의 페르소나는 딸, 누나, 직장인, 누군가의 친구일 뿐이다. 관계 속에서 얻은 페르소나들보다는 여전히 내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 그러니 전혀 새롭지가 않다.
가끔은 '에이, 뭐 어때. 나 살고싶은 대로 사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늘 입던 점프수트인데, 40대가 되었다고 갑자기 못 입는 게 말이 되나? 에코백이 뭐 어때서? 그러다가도 점프수트와 에코백이 너무 잘 어울리는 20~30대 후배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든다. 마음은 20대, 이팔청춘, 이런 말들을 쓰는 어른들치고 주책맞지 않은 사람들이 없었는데 내가 그런가 싶어져서 서글퍼지기도 한다. 내가 인정하지 않는 것일뿐, 나도 사실은 전형적인 중년인 거 아닐까?
아무래도 나는 중년기로 밀려들어온 (청춘의 외피를 벗지 못한) 피터팬인 모양이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피터팬 말이다.
이 피터팬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싶어 눈치를 살살 보면서도, 때로는 그러거나 말거나 '인생은 짧다'며 즐길거리를 찾느라 사방을 곁눈질 한다. 이런 모순된 이유로 스쿨존을 서행하는 자동차처럼 주춤주춤 거리고 있다.
아직은 자기 확신이 좀 더 필요한 것 같다. 더는 눈치 보지 않아도 될 때, 나만의 40대상을 정립할 때, 그때까지는 이렇게 천천히 살 것 같다.
하긴 뭐, 조금 느리면 어떤가. 생각해보니 늘 더뎠던 인생인 것을.
지금 당신은 중년구간에 진입하였습니다. 시속 40km 이하로 서행하시기 바랍니다. (안 그럼 넘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