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니 보이는 것들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다.
오랫동안 미뤄뒀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마침맞게 브런치의 문도 열렸고, 쓰고 싶은 이야기도 생겼으니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열린 시간의 문틈으로 다른 것들도 비집고 들어왔다.
그것이 문제였다.
그간 못 만났던 친구들도 만났고, 주말마다 강원도를 우리 집 뒤뜰처럼 헤집고 다녔다.
책도 부지런히 읽어치웠고, 한동안 끊고 살았던 TV프로그램까지 섭렵하기 시작했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일주일에 두 번 필라테스를 가고, 일주일에 한 번 한의원을 갔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 외에는 지금의 나를 묘사할 말이 없을 정도의, 거의 '연예인'스케줄을 소화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 쓸 시간이 없어지더라.
읽고, 보고, 학원 가고, 침 맞는 것들이야 수동적으로 하면 되는 일이고
친구들과의 약속은 나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며
강원도 여행은 강원도에 거주하는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라는 핑계로 어찌어찌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면 차분하게 앉아서 글을 쓸 시간이 없어지더라.
사실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내가 어떤 감정이나 경험을 공유한다면 그것은 '글'의 형태여야 한다는 일종의 고정관념이 있었다.
철저히 옛날사람.
하지만 바야흐로 지금은 영상시대 아닌가.
꼭 글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계속 드는 거다.
영상으로 '일인가구 두 집 살림' '주말마다 쏘다니는 강원도여행' 그리고 '책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지 않을까.
얼굴에 자신이 없으니 '책이야기'는 '팟캐스트'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중간중간 고프로도 찍어봤다. (물론 편집이라는 또 다른 산-노동-이 장벽인 건 글쓰기와 바를 바 없지만)
알고 있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도, 다른 매체에 대한 호기심도 결국은 글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글쓰기를 멈추자 그것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글감이 쌓이고, 다른 이들의 글을 읽다 보니 내 글의 부족함은 더욱 보이고.
다 내 부족함 때문이었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일단은 쓰자.
써보고, 그래도 안 늘고 그래도 재미없으면 그때 멈추자.
매일 쓰겠다는 다짐은 못하겠다. 그래도 이건 정하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앞으로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오전 아홉 시 시 전에는 꼭 브런치를 발행하겠습니다!
하다 못해 점이라도 찍고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