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묘촌을 읽고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중에서

by 김범신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을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절대 재미 없는 책은 읽지 않는다. 처음에 흥미를 끄는 책일지라도 읽는 도중에 흥미가 떨어지면 바로 책을 덮고 다른 책을 찾는다. 대개 스릴러나 탐정소설은 이 원칙에 해당하기 어려운데, 최근에 읽은 미국과 유럽의 스릴러는 100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덮거나 300페이지 이상 읽었음에도 덮었다.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는 성공했지만 긴장감을 지속시키거나 주의를 집중시키는데는 실패한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최근의 한일관계가 아니더라도 이 장르에서 일본저자의 책은 읽지 않는 편이다. 그 유명하다는 히가시노 게이고도 나의 기호와는 전혀 맞지 않는 것 같다. 정말 인내심을 갖고 몇 번 도전을 해서 그의 출세작을 여러 편 읽었지만,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사실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일본작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작가도 마찬가지다. 전혀 선호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훌륭한 작가가 있을 것이라는데 이견은 없지만 아쉽게도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했다.

소년시절에 소년탐정 김전일이라는 일본 탐정만화를 읽은 적이 있다. 일단 책 제목에서 작명센스에 대해 상당히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일본이름이 김전일인지 아니면 한국어로 번역한 이름이 김전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경우 모두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일본이름이라면 성이 '김전'이고 이름이 '일'인가? 분명 성은 김씨가 아닐텐데라는 의문이 있었고 후자라면 도대체 이름이 전일이라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만화책 내용에 주인공 김전일의 할아버지가 전설적인 명탐정이라고 소개하는 대목에서 작명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김전일의 할아버지 이름은 긴다이치 코스케, 즉 김전일은 성과 이름이 아니라 일본 성인 것이었다. 이름은 코스케, 그리고 정작 소년탐정은 긴다이치 하지메가 본명이었다.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이 책 '팔묘촌'은 소년탐정의 할아버지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하는 작품으로, 이 작품의 저자인 요코미조 세이시의 대표작 중 하나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유명작은 '이누가미 일족', '혼진 살인사건' 등 여러 작품이 있지만, 이 작품이 가장 많이 영화화 된 작품으로 알고 있다. 그 만큼 이 작품이 굉장히 특이한 소재와 매우 독특한 이야기 구조, 그리고 공포스러우면서도 흥미있는 모험담으로 구성되어, 소설이면서도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이 책을 읽기 전에 '이누가미 일족'을 읽었지만 책이 가진 흡입력은 팔묘촌이 더 강했고, 일본작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킬만큼 매력적이었다.

팔묘촌은 이 작품의 배경이다. 주인공은 외지인이지만 팔묘촌에서 출생해서 팔묘촌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는 인물로, 그가 팔묘촌에 가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의문의 살인사건이 꼬리를 물고 발생한다. 보통 탐정소설을 읽다보면 독자는 누가 범인인지에 대해 추리를 하게 되며 피해자들의 살해되는 순서는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더라도 대체적으로 피해 대상의 범위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누가 범인인지 의심하는 것은 고사하고 누가 살해되는 피해자 인지, 왜 살해되는지 조차 짐작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사건들이 억지스럽거나 황당스러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건들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며 이어지며 예기치 못한 대목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가끔은 피해자가 진짜 살해된 것이 맞는지 아니면 살해된 것처럼 꾸며진 것인지 의심할만큼 주인공과 관련 없는 인물들이 희생되지만, 열이면 열, 실제로 살해된 것이 맞다. 이러한 안개속을 헤매는 것 같은 이야기 구조로 인해 독자는 무언가 실마리를 잡았다 싶으면 새로운 사건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며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팔묘촌의 묘미는 이러한 사건의 의외성 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한 연애담들이 사건과 사건을 이어준다는 점이다. 사랑에 빠질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게 되는데, 나중에 전, 후의 사건을 맞추어 보면 저절로 무릎을 치며 사랑하는 관계들에 대해 공감하게 된다. 또한 흥미진진한 보물섬식 모험담도 잔인하고 흉악한 살인사건들과 얽혀들어 독자는 한시도 쉴 틈 없이 작가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팔묘촌의 다양한 소재와 생동감 있는 인물들은 요리로 보면 산해진미로 한 상 차려진 것과 같다. 게다가 작가는 독자들의 입맛을 고려해서 각 요리들이 제때에 맛볼 수 있도록, 그리고 요리의 맛이 서로 잘 어우러져 더욱 맛깔나도록 순서까지 절묘하게 배려하였다. 이러니 아무리 일본작가에 대한 색안경이 있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이 작품에 대해서는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코난도일식 명탐정 '셜록 홈즈'에 빠진 독자라면 가뭄에 콩 나듯이 등장하는 긴다이치 코스케의 영향력이나 끝까지 수사다운 수사는 하지 않는 그의 소극적 태도에 실망할 수 도 있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탐정과 범인의 대립구조를 따라가지 않으며, 명탐정의 면도날같이 예리한 추리도 등장하지 않는다. 게다가 범인일지도 모르는 용의자의 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가 서술되는 낯선 구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첫 번째 살인사건을 접하고 책을 덮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책을 덮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