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과학적으로 결정되어있다는 생각

과학적 결정론, 정신, 의지, 이데올로기에 관하여

by 임지성의 생각



1. 과학"혁명"과 계몽주의

아이작 뉴턴은 천체의 운동과 지상의 운동을 통합하였을 때, 그러한 운동 기술 공식을 "법칙(law)"이라고 명명하였다. 이는 마치 사회가 도덕법(혹은 자연법)에 관하여 논쟁하고 이를 성문화함으로써 질서를 유지하는 것처럼, 자연이 어떠한 법칙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움직인다는 '아이디어'를 표현한 것이다.

뉴턴 당대에 "계몽주의"(enlightenment)라는 사조는 공공연한 것이었으며, 교회법과 신학적 교리를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던 '자연과 사회에 대한 합리적 이해'가 여러 지식인들과 지적인 취향을 가진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직접적인 반성과 논쟁의 주제(논란 거리)로 확산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서구 계몽주의는 르네상스로부터 직접적으로 발달한 인문주의의 DNA와 과학적 발견이 누적되며 발달한 과학혁명의 DNA를 모두 보유하고 있었으니, 계몽주의를 인문학적 반성과 과학적 발견이라는 양친의 자식에 빗댈 수 있을 것이다.

계몽주의가 진행되는 동안 종교전쟁, 식민지 사업 등 서구의 '국경'은 활발하게 변했고, 그 덕에 계몽주의라는 '분위기'(혹은 유행)가 낳은 결과의 양상 역시 다양할 수밖에 없었다.

가령, 오늘날의 UN, G20, NATO 등과 같은 "국제적인 합의체" 따위는 없었으므로, "프랑스혁명", "시민혁명", "명예혁명" 등 계몽주의가 절정에 치닫게 한 사건들 역시 절차적이거나 동시적이지 않았으며고, 연쇄적이었고 산발적이었다.


2. 유물론, 실증주의, 낭만주의

뉴턴 역학 이후에 그리고 이념, 전쟁, 대량 살상, 인종청소 등의 거대한 절망적 계기 이전에, "만유인력의 법칙"(law of universal gravity) 만큼(혹은 그 이상으로) 커다란 파문을 일어켰던 것은 바로 박물학적 주제로 부상한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의 해석이었을 것이다.

자연신학, 자연철학, 자연과학 간의 구획과 경계가 지금처럼 뚜렷하기 전에는 이러한 활동들이 제도적으로 인식되기 보다 개별적인 활동에 대한 암묵적인 구분으로 존재하였다.

마치 아리스토텔레스의 전집 안에 정치학과 형이상학과 자연학이 포함되어있듯, 과학자들이 신과 사회에 관하여 발언하였고, 목사들도 박물학이나 법에 관하여 발언하였으며, 이들은 자신들이 발설하는 주제들이(topics) 서로 다른 층위에 있으면서도 모종의 방식으로 상호 연관될 수 있다는 상식을 갖추고 있기도 하었다.

지질학적인 관심과 연결되어 출발한 박물학 혹은 자연사 연구는 '문헌 이전의 역사'(역사 이전의 역사)를 수집하고 추리하는 활동으로, 지적인 취향을 가진 이들에게 매우 흥미진진한 토픽이었다.

"자연 선택"이라는 가설은 찰스 다윈 이전에 그러한 게임 위에서 제기된 것이었다. 그 가설은 초기부터 그 자체로 종교적이거나 인문학적 교리에 의하여 반대되지 않았다. 그렇기는커녕, 대화는 종교적 인문학적 상식에 의해 조율되는 방식에 관하여 더 많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찰스 다윈 자신은 이 가설의 정당한 함의로서의 유물론을 회피하지 않았으며, 물질, 생물, 인간의 경계가 각각의 독자적인 기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즉, 다윈에게 "종"(species)의 발생(혹은 분기)이란, "중력"처럼 같은 자연의 이치였고, 더 이상 근본적인 원리를 요구하지 않는 현실의 벽이었다.

그러나 "자연선택",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은 거의 상시 과잉 해석되었고, 이것이 "창조의 섭리", "인종 간 우열", "더 나은 체제" 등의 관념을 보조하거나 반대하는 근거로 소비되는 일은 거의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교조주의적 입장들이 자연도, 사회도, "관념"이나 "정책"이 아닌, 확인 절차의 합리적 순환을 통해 밝혀지고 수정되어야 한다는 "실증주의"(positivism) 아이디어에 불을 댕겼지만, 그 안에 숨어 있는 "진보", "개선", "발전"의 가능하다는 생각을 추려내는 일은 매우 교묘하고 섬세한 인식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3. 정신과 인간의 고유성, 학문과 이념

자연선택설의 유물론적 함의는 피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인간의 고유한 가치에 대한 반성 역시 회피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사유"와 "연장"의 세계를 분리함으로써 해자를 구축한 르네 데카르트의 철학은 선구적인 것으로 평가되었으며, 그만큼 (물질과 관념의 구분이 임의적이라고 생각하는 유물론에 의해) 혹독한 비평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즉, 그의 의도와 무관하게도 데카르트는 "물질과 관념의 구분"에 대한 공격,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에 대한 공격을 위해 회부되느라 구천을 떠돌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 구분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그는 명계의 안식을 반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로이트는 다윈의 편에 서서 정신에 대한 허위를 폭로했던 가장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하지만 사상계에서 그 반대편에 서는 세력 역시 만만하지만은 않았던 것이 사실이며, 이들의 작업은 결코 시대착오적으로 도외시될 만큼 가볍지 않았다.

예컨대 인간과 사회처럼 '정신과 결부된 영역'은 "설명"의 대상이 아닌, "이해"(헤아림)의 대상이어야 한다며 "정신과학"(Geisteswissenschaften)이라는 해자를 제안했던 빌헬름 딜타이, 브렌타노의 "지향성"(intentionalität)과 데카르트의 "사유주체"(cogito)를 동원해 일상적 경험을 학문의 언어로 사수하려 한 에드문트 후설의 "현상학(Phenomenologie) 운동" 등이 그렇다.

한편 교과서적인 상식과 달리, 관념론의 아이콘 격으로 생각되는 헤겔 식 변증법은 "사유"와 "연장", "물질"과 "정신", "주체"와 객체"의 구분을 무위화하려는 진영에 서 있었다. 헤겔에 대한 이해는 절대 정신의 자기 이해 완성을 향한 운동으로 읽히기 때문에, '물질적 기반에 대한 정신의 폭거' 혹은 '정신론적 제국주의' 격으로 자주 오해받지만, 만약 이러한 오해가 헤겔의 의도였다면, 마르크스의 사상은 결코 헤겔 철학의 토양에서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헤겔에 대한 오해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그다지 불명확하지만, 마르크스에 대한 교과서적 이해는 그의 "유물론적 변증법"이 헤겔 식 관념론을 부정하고 거기서 '변증법적 사유'만을 추출해 유물론에 접목한 것이라는 인상을 자극한다. 그러나 마르크스 자신에 따르면, 그의 "헤겔 뒤집어 읽기"는 어떤 개념적의 "대립"보다는 "순서"와 "중요도"의 차원에서 헤겔과 길을 달리한다. 헤겔은 '전체' 혹은 '완성'이라는 가설적인 수준에서 시작과 종결을 정립했지만, 마르크스는 그것의 분석이 물질과 사회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운동과 수정을 통해 추상되는 것임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헤겔의 철학도 "물질"과 "사회제도"의 얽힌 관계를 나름 세심하게 취급한 편이다.)

따라서 후대의 정파적 시대착오적 오독과는 달리, 마르크스도 헤겔도 물적 관계가 관념을 결정한다거나, 관념이 물적 관계를 지배한다는 식으로 양극적인 도식을 내세운 사상가들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원자 이론에 대한 관심이나 (다윈 버젼의) 자연선택에 대한 관심 등의 유물론적 재료들은, 물질 관계를 둘러싼 관념적인 질서의 피드백을 간과하지 않았으며, 단지 그 위력을 긍정하고 그 안에 있는 "허위(무근거하고 단지 특정 집단만을 위해 이로운 것; i.e. 이데올로기)"를 수정하려 했던 것이다.


4. 과학적 결정론, 측정 및 조작 가능성, 이론 및 가치 적재성

세계대전과 냉전 이후 "이념"이라는 범주는 전쟁 자체 만큼이나 "평화"의 반대 개념으로서 싫증과 혐오를 유발하게 되었는데, 마치 그것이 "사실"(더 정확하게는 "과학적 사실")과 대비되는 개념인 것처럼 지양하거나 기피해야 할 어휘가 되었다.

하지만 어떤 개념를 피휘하는 것만으로 그것의 작동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정치가들은 상대 진영의 입장을 공격할 때, "과학적이지 않다." "팩트가 아니다." 따위의 말이나 "그것은 이념적이다." 따위의 말이 거의 등가적인 의미인 것처럼 교호적으로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중 누구도 그런 말을 들으며 누가 누구보다 "더 과학적"이라거나 "덜 정치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즉 우리는 이념적인 어휘를 사용하지 않고서라도 얼마든지 가치 함축적인 방식으로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혹자는 이 점을 이용해 상대의 주장이 이념적이거나 비과학적라는 말을 수사학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관점을 중립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과학적이지 못한 태도 자체일까? 만약 과학적인 관점이 철저하게 가치 중립적인 방식으로 소통될 수 있다면, 이러한 생각에 일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과학적인 활동 역시 매우 인간적이며 또한 사회적인 편이다. 이 점 역시 지금의 "과학"에 대한 높은 신뢰가 태동하는 과정인 근대 과학혁명기와 현대 과학의 연속성을 회고했을 때 더욱 선명해진다.


현대적인 학제 발달 이전에 과학 연구가 목사와 정치가들에 의해서도 이루어졌듯, (이들은 전문가 집단이 생산한 연구 결과를 소비하기만 하지 않았다.) 뉴턴 역학과 다윈주의의 이념적인 사용 역시 정치가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니었다.

멘델의 유전자 가설은 멘델이 목사였다는 사실이나 그가 이것을 창조주의 섭리와 결부지었다는 사실과 무관하게 정당한 과학적인 입장으로서, 그리고 DNA 연구에 대한 선구적인 견해로서 수용되었다. 한편 스티븐 굴드(현대 진화 생물학 거장, 20세기 진화론 옹호자)와 같은 현대적인 인물조차 "선천적인 범죄 기질", "지능 지수", "진화적 경향"과 같은 과학적인 견해로 포장된 온갖 전문가 및 비전문가들의 편향과 씨름해야 했다.

굴드는 진화가 "진보"라는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해 통계학적인 해석을 매우 예리하게 제시했다. 그리고 그는 더 나아가 생물학적 "결정론"이라는 해석적인 입장이 갖는 위험을 경고하는 데까지 이른다.

굴드는 유전자가 갖는 인과적인 힘에 대하여, "결정"보다는 "잠재력"이라는 완화된 용어를 사용할 때, 윤리적으로도 더 신중하고 과학적으로도 더 엄밀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나는 이러한 굴드의 신중하고 정직한 태도는, 작금의 신경과학적, 공학적 가능성에 관하여도 미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유전자(gene)", "뉴런(neuron)" 등 물질적인 기초가 "정신", "행동"(의지의 작용)에 앞서 작용하는 방식 자체는 별 다른 입장이 없다면, 확인된 현상으로서 수용될 수 있는 것이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신과 행동의 관계"도 "원리적으로는" 물질적 기초의 단위에서 "측정 가능"하고, 따라서 "원리적으로는" "조작 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는 견해는 이제 새로운 상식이 되었고, 20세기 정신과학 운동이 개념적으로 유지했던 "해자"(e.g. "지향성", "주체", etc.)는 견해에 따라 해자보다는 "가교"로서 새로이 해석되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결도 "발견" 이상의 "활용"(또는 "응용"), 예컨대, "치료", "강화" 등의 목적과 결부될 때에는 (그것을 제도화하는 맥락에서) 다시금 가치 체계와 얽혀 뜨거운 논쟁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 함축성이 언제나 비과학적이고 비전문적인 것만은 아니다. 일례로 철저히 다른 가치 함축성을 배제하려 노력하는 과학적 활동들도 다른 분야(i.e. 마찬가지로 동등하게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활동으로 여겨지는 타분야)와 상호작용할 때에는 전문적인 수준에서 "통약 가능성(commensurability)"을 시험해야 한다. 어떤 실험적인 행위는 그것을 생산한 이론, 그 이론을 생산하는 데 동원된 자료, 그 자료를 생산하는 데 활용된 배경 이론들의 구조 따위에 의존하고 있고, 그러한 구조들이 서로 맞물리기 어려울 만큼 상이하다면, 서로 다른 분야와의 협업 자체가 매우 복잡한 조율 비용과 커다란 수고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응용"이 정치적 맥락과 경제적 맥락의 도마 위에 오르는 순간, 이러한 복잡한 전문적인 쟁점들조차 일순간 "기여도(혹은 수익성)", "이익의 조정" 따위의 외국어로의 환원되고, 원리적인 난점들은 망각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이러한 "연결"이 동만하는 논쟁 자체의 고비용을 "사치스러운 신념"(luxury belief; cf. 알렉스 카프 등)으로 치부하여 휴지하거나 회피하게 만들려는 시도 때문에, 절차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여러 쟁점들이 논쟁 없이 진행되어 버리기도 한다.


즉, "과학적인 태도", "사실 판단", "합리성", "탐구심"이라는 판단 양식으로만 식별 가능한 원리들의 존재 자체가, 그러한 원리들을 식별하는 과정 전, 중, 후에 개입하는 인간적인 "야심", "혐오감", "위기의식", "목적성" 등 가치 판단을 쉽사리 배제하거나 무위화하지는 못한다.


5. 논란이 계속 논란으로 살아있게 하라.

원리적인 가능성에 대한 "실천적인 절제"나 "윤리적인 저항선", "되는가/안 되는가?", "어떻게/어디까지?", etc.


요컨대 나는,

이러한 논란들을 과학적인 방법 자체와 구별하는 일은 매우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논란들을 과학적인 활동 만으로 불식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러한 논란들이 쉽게 중단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논란들의 중단 자체조차 가치 함축성을 배제하는 데 도움 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효과적으로 은폐하게 만들 뿐이기 때문이다.


논란만을 무한히 생산하는 방식의 대화는 지겨움을 낳는다는 반론은 합리적이다. 하지만 그런 논란들이 항상 "사치"에 불과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지식, 기술, 문명에 일종의 국면이나 단계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우리는 각 국면을 향해 나아갈 때에, 다소 어리석음에 대한 혐오감(주로 반대 의견에 대한 혐오감)을 원동력 삼아 움직일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한 단계에 이르게 되면, 거기에 이르는 동안 부정하고 혐오했던 많은 어리석은 생각들에 대해서도 '그러한 생각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여러 이유 있는 방식'들을 깨닫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이해를 통해 우리는 여러 이유로 반대했던 입장들에 대해서도 다소 누그러진 마음을 품을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으로 때로는 과감하게 때로는 또 신중하게 생각을 왕복하며 움직이는 것, 이것이 삶의 기술(ars vitae)로서의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일견 반대되는 것 같은 태도나 생각마저 에너지 삼아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는 삶의 기술, '변증법(dialectics)'은 생각의 역사를 통해 전승된 매우 막강한 생각 DNA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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