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지성의 생각 Sep 23. 2024

6 - ‘나’ 빼앗는 이야기 투쟁

신화의 계보 | 넘쳐나는 ‘넘’ 이야기 | 니체적인 회귀물



반복해서 종교와 신 이야기(신화)를 언급하게 되는 이유는, 이것이 라는 존재 의미를 희석하는 가장 유서 깊은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행태의 가장 오래된 방식이 바로 신화라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르네상스 문예부흥의 사조의 태동과 함께 신화는 이 투쟁에서 패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인본주의적인 사조에서 비롯된 계몽주의 사상으로 인해 세상은 ‘이성을 통해 설명되어야 된다’는 새로운 이야기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렇게 ‘이성을 통해서 해석된 세상 이야기’는 중세 시대의 세기말적 현상이자, 근대정신의 본류를 형성하는 새로운 신화였다.




결국 또 사람은 ‘나 자신’을 그 새로운 이야기 속에서 발견할 수 없었다. 반복적인 실패의 역사는 내가 아닌 것에서 나를 찾고내 이야기가 아닌 다른 신화 속에서 내 존재를 찾는 시도와 그 실패의 역사인 것이다.




나는 이 신화들이 시대를 휘어잡는 권력을 다소 잃어버리긴 했으나,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이 ‘넘’의 이야기들은 파편화된 상태로 각축을 벌이며 현존하고 있다. 내 존재와 의미를 규정하는 이야기들의 패권 다툼은 지금도 실시간으로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개인들은 여전히 ‘저 이야기들 속 어딘가에 진정한 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는 형편이다. 영원히 반복되는 허무의 신화들이다.




이제는 이 모든 것들이 파편화된 방식으로 각축을 벌이며 심지어 서로 섞여 들며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 그 속에서 개인은 ‘대체 나는 어떤 이야기 속에 있는 것인지’, 헷갈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리고 세상은 더욱더 이해하기 힘든 곳이 되어 있다. ‘무엇이 꿈인지’, ‘무엇이 현실인지’ 알 수 없고, 이런 말들의 의미조차 점점 흐릿해져 간다.




결국 저 ‘넘의 이야기’들은 다 몰아적인 환원주의를 표방하는 장르다. ‘나’라는 존재는 나 자신으로부터 비롯될 수밖에 없다. 나를 담아낼 수 있는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뿐이다. ‘나’를 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나의 신화’다. ‘나’를 얻기 위해 쓰러뜨려야 할 신 역시 나 자신 이외에 존재할 수 없고, 내가 획득해야 할 신성은 오로지 단단한 ‘아성’ 일 따름이다.




결국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 이야기와 ’ 이야기로 환원될 수 있다. 그리고 이 타자는 곧 축소되기도 하고 확대되기도 하는 ‘나 이외의 세상’이다. 세상은 ‘나’를 풍화시켜 자신의 이야기가 진실의 전부인 양 담아 내려할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기는 ‘나’는 오로지 발목까지도 안 되는 극히 ‘일부분’ 일뿐이다.




이렇게 보면, 세상 이야기도 내 이야기도 절반은 내가 쓰는 이야기다. 앞서 나열했던 영원히 반복되는 실패의 역사는 결국, 세상과 내가 서로 ‘전부 해석할 수 있다’고 착각하며, 다투는 윤회의 이야기인 것이다. 내가 이 번뇌의 멍에를 벗어던진다고 하여도, 세상은 나를 향한 해석의 투쟁으로 계속 도전해 올 것이다. 따라서 나는 부단히도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굳은 결의로 저항할 수밖에 없다.




말을 때리는 마부도, 그것을 견디며 일하는 말도, 그저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수많은 ‘나’ 들일뿐이다. 이 이야기에서 고삐 속에 갇혀 있는 말은 니체 자신을 포함하는 모든 개인의 운명일 따름이다. 결국 나를 억누르는 들도저항하는 도 같은 처치라는 것이다.




니체는 사상에는 ‘영원 회귀’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그것은 내 이야기가 끝없이 연장되는 커다란 이야기의 일부는 아닐지언정, 죽음으로 끝나는 ‘숏폼’ 같은 한정된 생애 속에서 나에게 가능성으로 주어진 최선의 의미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다. 어떤 운명 속에서도 결국에는 나다웠던 삶의 이야기그것을 긍정하기 위한 삶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세상은 지금도 ‘나’의 의미를 빼앗기 위해, 변형된 혼종 신화를 제시하며 도전해 오고 있다. 파편화된  신화들은 이전보다 더 강력한 위세로 ‘나라는 존재’를 혼비백산하도록 만들 것이다.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신기술 역시 전례 없는 방식으로 ‘나’를 궁지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의 이야기다.






구성 :      


6.1 - 신화의 계보     


6.2 - 넘쳐나는 ‘넘’ 이야기


6.3 - 니체적인 회귀물

매거진의 이전글 5.3 – 키에르케고어와 니체의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