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의 이념적 기초

세간에 유포된 식민지 근대화론과 유신 체제의 반향 및 재생산에 관하여

by 임지성의 생각



우리 헌법의 전문은 일종의 '서문'으로서 대한민국이라는 근대 국가가 체제를 유지하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이념적, 규범적 기초를 명시하고 있다. 헌법에 명시된 근대 국가 대한민국의 이념적 기초는 바로 '민족주의'와 '자유 민주주의'이다.


헌법의 구조

전문
제1장 총강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제3장 국회
제4장 정부: 제1절 대통령, 제2절 행정부(제1관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제2관 국무회의, 제3관 행정각부, 제4관 감사원)
제5장 법원
제6장 헌법재판소
제7장 선거관리
제8장 지방자치
제9장 경제
제10장 헌법개정
부칙


대한민국헌법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ㆍ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ㆍ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 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 히 하여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 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 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 한다.
1987년 10월 29일


이승만을 극복하는 민주주의 이념

근대 국가 대한민국의 '민족주의' 이념을 형성한 사건으로 지목되는 것은 "3.1운동"과 이를 통해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이다. 즉 우리 헌법은 국가 전통의 기틀을 이승만의 정치 운동을 통해 건립된 '남한만의 단독 정부' 이전의, 민족 해방운동(대한 독립운동)으로 소급하여 찾고 있으며, 이로써 근대 국가의 형성을 위해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기형적 해석을 분명한 어조로 배제한다. 그리고 근대 국가 대한민국의 다른 한 축인 '자유 민주주의' 이념은 이승만의 독재적 행태에 항거했던 "4.19혁명"으로 지목된다. 따라서 리박스쿨을 비롯한 극우 세력이 선호하는 자칭 '실증주의' 역사관, 속칭 '뉴라이트' 역사관과 달리, 대한민국헌법은 '자유 민주주의'와 근대화의 기초를 이승만 전과 후를 향하여 위치하는 '탈제국적-자주적', '탈독재적-국민주권적' 사건들에서 획득한다.


유신 체제와 구분되지 않으면 결코 이해될 수 없는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자유 민주주의'라는 근대적 정치 체제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또 하나의 층위는 바로 '자유방임주의 시장 경제 체제' 모형이다. 현대 민주주의의 기원과 발전사를 추적한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의 분석처럼, '헌법혁명'은 군주제 및 귀족제를 통해 유지되는 봉건사회로부터 상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중산층 계급 공론장(여론 형성의 공간)의 발전과 긴밀했다.

* 명예혁명과 권리장전, 프랑스 혁명과 인권선언 등

'민주주의'는 사사로운 의견과 잇속을 공공의 의견인 여론으로 승화시키는 공론장과 언론의 발전을 통해 국가 권력이 시장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정치 형태로,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발달했던 유형과는 또 다른 형태의 장치였다.

이후 산업 혁명으로 인한 잉여 생산물에 대한 수요를 식민지에 전가함으로써 해소한 제국주의 무역 행태와 미국발 세계 경제 대공황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수정 자본주의 모형(통화정책과 재정정책으로 분화)'으로 인해 '자유방임주의 모형'이 훼손되었음에도 '자유 민주주의'라는 체제는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구분과 균형을 통해 자연인과 자연인의 비폭력적 경쟁을 위해 가장 이상적인 정치 체제 모형으로 선호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자유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가 사사로운 존재인 개인과 절대적 공공성의 주체인 '국가 권력' 사이에 '여론'이라는 완충지대를 설정하는 모형이라는 점이다. '공론장'과 '언론'을 통해 형성되는 여론을 통해, 그리고 선거와 의회 정치라는 대의적 토론 장치를 통해, 개인은 국가의 의지를 견제하는 상대적 권력을 획득하고 기본권을 지켜낼 수 있게 되었다. 요컨대, 산업혁명과 경제 공황 이전까지 '자유 민주주의'라는 모형은 개인의 '사업'을 국가 권력과 경쟁 관계로 설정하였지만, 이 관계가 협력 관계로 전환된 것은 필요에 따른 조치였으며, 여전히 '자유'와 '인권'을 위해 개인과 국가의 관계는 '민주주의'라는 완충지대를 토대로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다.

역사가 예증하는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의 복잡한 관계는 아직도 대한민국 경제 발전이 '박정희 각하' 덕분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수의 국민들이 견지하는 역사 인식에 이의를 제기한다. "가난한 국가는 독재를 통해 성장하는 경향을 보인다."라는 진술과 "OOO 정부 때 한국의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라는 진술은 결코 "OOO 각하 덕분에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라는 감사 인사를 연역해내기 위해 충분한 전제가 아니다.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실행 자체는 박정희 군부 독재 정권 하에서 이루어졌더라도 그 계획 자체의 수립은 장면 정부하에서 이루어졌다는 점, 독재 정치에 의해 시장 질서가 교란되고 독과점 형태의 재벌 기업이 성장했다는 점, 미국의 경제 원조 없이 기하급수적인 경제 성장은 불가능했다는 점, 피착취자들이었던 국민들의 고혈 짜이는 노동과 희생 없이는 유신 정권의 계획이 실행될 수 없었다는 점 등을 생각했을 때, 근대 국가 대한민국의 발전사가 마치 모세와 다윗 이야기처럼 "이승만의 민주주의와 박정희의 경제 성장"이라는 간단 명료한 교리로 해석될 만한 것은 결코 아님이 분명하다.


유신 체제 하에서 대한민국을 배운 나이든 세대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과연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이승만이 아니었으면 민주주의는 시작되지 않았을까?
이승만은 정말 한반도에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실천한 인물인가?
박정희가 아니었으면 한반도에서 시장 경제는 발전하지 않았을까?
정말 지금의 대한민국은 유신 (독제) 체제 덕분인가?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군부 독재는 필요한 것이었을까?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어느 정도이든 '공산주의'를 의미하는가?


무엇을 위한 근대화인가?

계몽주의 철학자들과 반계몽주의 비판 이론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는, 사회의 근대화 과정이 기본적으로 사회의 '합리화 과정'을 뜻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사회의 합리화'란 '탈신화화', '탈주술화', '탈형이상학화' 경향과 '구체제'에 대한 자유롭고 합리적인 검토 및 개선, 이를 위한 이성의 활용을 통해 이루어진 변혁적 과정이다. 과학혁명, 상업자본의 발달, 인문주의, 종교개혁 등의 르네상스 운동에서 발단된 계몽주의적 기획은 그 물결 속에서 사회가 민주화되게 하고 개인이 권리를 획득하게 하였으며, 절대권력은 서서히 역사의 무대 뒷편으로 퇴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생산수단의 사유화'와 '임금노동제'라는 사적 착취 구조와 '제국주의 식민지 무역'이라는 국제적인 착취 구조, 세계 대전과 이념 및 체제 대결에 근거한 패권 전쟁 역시 동일한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등장한 것 역시 사실이다. 근대화 즉 합리화는 그 자체만 따지고 보면 전근대 사회의 신화적인 세계보다 더 낫지도, 더 나쁘지도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성이라는 도구는 착취적으로 활용될 수도, 해방적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의 근대화 역사 역시 식민지화가 아닌, 제국주의의 종말과 민족의 해방으로 이해될 때 헌법의 이념과 더 잘 조응하는 방식으로 이해될 것이다.

한편 국제적인 체제 전쟁의 맥락을 분유하고 있었던 우리 나라의 '해방 공간(1945~1948)'도 해방과 착취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난립했던 복잡한 시기였다. 대한민국의 민족주의는 '공산주의(사회주의)'라는 실험적인 모형과 '자본주의(자유주의)'라는 전형적인 모형 사이에서 갈등해야만 했다. 두 모형의 성패는 세계사를 통해 즉명되는 듯했으나, 한반도는 마치 실험 대상이라도 된 듯, 동족상잔과 분열 및 분단이라는 뼈아픈 역사를 통해 비좁은 땅에서 이 실험을 진행해야 했다. 전쟁은 국제 사회에서 행위 주체로 존재해야 할 국가의 하부 구조에서 '민족'의 개념을 해체하도록 우리를 운명 지웠다. 전쟁의 상흔 위에서 '민족의 번영'이라는 꽃과 열매 대신 자란 것은 '반공'과 '개발'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염증이었다. (이것이 영원히 재생산되어야 마땅한 필연적인 이념인가?)

공산주의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치명적인 실험 결과가 존재한다는 점, 탈공산화는 데탕트 선언 이후 (심지어 공산 국가 또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식별되는) 이미 상당히 진행된 세계적 추세라는 점, 북한과 대치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우리는 '자유 민주주의'의 대립항으로서 존재하는 '공산주의(사회주의)'를 영원토록 의식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반공' 이외에도 아직 끝나지 않은 근대화의 숙제가 산처럼 쌓여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모든 공공의 안건을 '반공'이라는 문제와 연결시키는 착란적인 사고를 탈피하지 않을 수 없다. 소외 및 착취로부터의 해방, 인간 권리의 포괄적이고 적극적인 실현, 자연 및 생태와 인류 문명의 공진화 조건 달성, 국제적 격변 속에서의 국가적 생존 및 주체화 등의 과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민주주의'를 통해 발휘해야 할 집단 지성이 편집증강박증이 아닌 기민성과 창의성을 지향하도록, 작전적인 수준이 아닌(양극적인 목표가 아닌) 전략적인 수준(다극적인 목표)에서 국론을 검토하도록 요구한다.


왜 아직도 유신 체제의 가스라이팅이 먹혀드는가?

복잡한 것을 단순화하고, 현실을 희석하는, 역류를 발생시키는 커다란 돌덩이가 이 강물 안에 잔존하고 있다. 이들은 종교와 언론과 교육과 법을 남용하며 국가를 사유화하고 헌법 가치의 실현을 교란하는 뿌리 깊은 엘리트 세력이다. 이들의 계보는 선명하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그리고 윤석열을 옹호하거나 옹호하게 만드는 자들, 지금도 '어나더 각하'를 물색하고 있을 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국민들을 대상화하고 자신들의 탈인간적 행태를 미신과 주술을 통해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반(反)-근대적'인 사상이 유전되는 DNA라도 있는 것인지 궁금하게 만들 정도이다.

아마도 이들과 가장 유사한 형태의 존재는 곰팡이 또는 이끼일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세를 죽이지 않고 불려올 수 있었던 풍토적인 조건은 아마 '길들여진 무관심'과 '학습된 무기력증'일 것이다. 이러한 초기 조건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헌법이 명시하는 '국민주권주의'는 언제든 다시 형식화되고 말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대중 매체와 소셜 미디어가 지배하는 현대적인 환경은 소수의 기득권을 상대하는 다수 국민을 크게 편들어주지 않는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정보를 파편화하고 의견을 원심분리하며, 사사로움과 공공성의 구분에 대하여 파괴적인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불리한 조건 속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여론'이 형성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환경의 조악함과 과제의 산만함을 핑계로 눈을 감아버리거나 시선을 돌려버린다면, 그것은 곧 스스로를 착취하려는 누군가의 의도에 대하여 그렇게 하는 것과 다름 없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자유는 언제까지나(어디까지나) 우리가 사사롭고 공공연한 존재로서 존재하는 동안만 실체적인 조건이 된다.


옹호자들과 지지자들, 양비론자들에게 묻고 싶다.

교조적, 세뇌적 교육과 교란적, 당론-재생산적 언론, 법치주의를 초월하여 목적으로 수단을 정당화하는 정치 행태 및 통치술은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되며, 누구의 이익을 위한 정치 행태인가? 왜 아직도 옹호하고 왜 아직도 지지하며 왜 아직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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