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거부 시국 선언문

낭만을 추구하는 잘못된 사회에게

by Suzanne

나는 ‘낭만’이라는 단어를 매우 싫어한다.


‘이게 낭만이지‘
’이거 되게 낭만적이다’
’지금 너무 낭만 있어’


한 수식어가 힘을 갖기 위해서는 설명하는 대상과 어우러져야 한다. 수식어가 그 대상을 나에게 납득시키고 설득시킬 수 있는 근거가 돼야 한다. 낭만은 그러한가? 전혀. 텅 빈 매장에 어떤 노래를 틀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며 멜론 차트 100을 트는 감성 카페 사장님보다도, (잠깐! 여기서 감성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차차 해보겠다.) 모든 것을 낭만으로 설명해 버리려는 태도가 더 게으르고 감각 없어 보인다. 갓 이사한 집에 빈자리마다 아무렇게나 놓인, 치수가 맞지 않는 이전 집의 가구들만큼이나 어색하다. 어울리지 않는 문장 속에서 낭만이라는 단어는 휑해 보이는 자리에 어거지로 놓인 못생기고 지나치게 큰 화분 같다.


낭만은 오염된 단어다. 맞지 않는 상황들만 쏙쏙 골라 그 속에서 완벽히 오용되고 있다. 우리는 먼저 낭만에 대해 바로 정의해야 한다. 사람들은 낭만의 낭만성(ㅋㅋㅋ)을 치켜세우기 위해 그 글자를 구성하는 한자어의 뜻을 가져온다. 물결 랑(浪)에 흩어질 만(漫)을 사용하여 파도가 몰아치다가 흩어져 바로 그 모양새가 남김없이,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지는 모습 그 자체가 낭만의 정의라는 것이다. 무용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곧 낭만. 순간에만 존재하는 덧없고 하릴없는 것을 추앙하고 좇는 것, 그럴싸하다. 충분히 설득된다. 하지만 그것은 낭만 그 자체가 아니다. 극히 일부이며 중심 의미도 아니다. 낭만의 어원은 한자가 아닌 프랑스어이다. ‘Roman’, 즉 ‘로망’이 원래 모습이다. 영어의 로맨스를 생각하면 좀 더 익숙하겠다. 로망을 일본에서 한자로 음역한 것을 그대로 한국식으로 읽으니 낭만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로망은 무엇인가?


Roman(로망),
Romance(로맨스),
Romantic(로맨틱), Roma(로마),
Romanesque(로마네스크)…


다 로망과 관련된 단어들이다. 프랑스어에서는 소설 장르의 글을 로망이라고 일컫는다. 우리는 연애적인 분위기가 나고 보통의 이성관계 사이의 긴장과 설렘을 로맨스라고 한다, 그러한 분위기를 로맨틱하다고 한다. 오래전 유럽에 존재했던 한 나라이자 현재 이탈리아의 한 도시 이름을 로마라고 한다. 로마적으로 한 때 제국이었던 그 나라에 걸맞은 엄숙하고 근엄한 분위기를 로마네스크라 한다. 이들 간에 공통점을 도무지 묶을 수 없었으나 오늘에서야 K언니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고결하고 고귀하다고 여겨지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어냈다.


오늘날의 우리들은 주로 로맨스의 의미로만 한정 지어 사용한다. 언어가 갖는 의미가 축소된다는 것은 언어의 아름다움과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하는 사람의 마음을 참으로 쓰리게 한다. 물론 내가 낭만 거부 선언을 한 것처럼 언어라는 총알의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정확히 표적에 쏘아 올리지 않고 난사하는 것은 더욱 견딜 수 없이 치가 떨리지만. 전공 수업에서 18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소설을 배울 때면, 교수님들은 입을 모아 이 단어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시곤 했다. 한국에서 낭만을 청춘, 연애적인 것으로만 주로 생각하기에 낭만주의라는 사조 이름이 해당 작품들의 특성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낭만주의의 특징을 적확히 표현하려면 ‘로만주의‘로 하는 것이 더 맞겠다고 하시기도 하였다. 나는 단어의 본질을 되찾기 위해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Romanticism, 낭만주의가 무엇인지부터 파악하려 한다.


(다음편에 계속…)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