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의미의 낭만이 무엇인가
낭만주의자의 시작, 중세의 기사
‘낭만‘, 즉 ’로맨스‘의 시작은 중세 유럽의 기사도 문학에서 시작된다. 중세는 기독교와 봉건제라는 두 축으로 굳건하게 지어졌다. 봉건제는 영주, 기사, 농노… 등으로 이루어진 계급제이다. 영토를 다스리는 귀족인 영주가 있고 그 아래에 영주와 그의 영토를 지키는 기사가 있다. 영주의 땅에서 농사를 지어먹고 살며 세금을 내고 영주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는 자들이 농노인데… 여기서 오늘 우리가 볼 계급은 기사이다. 로맨스는 기사의 것이기 때문이다.
’기사’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주로 배경에는 너른 초원이 펼쳐져 있을 것 같고, 풍차 한 대가 놓여 돌아가고 있을 것 같다. 날렵하지만 허약해 보이진 않게 쭉 빠진 몸에 은빛 철제 갑옷이 입혀져 있고, 펜싱 칼 같은 모양의 무기가 한 손에 들려 있거나 허리춤에 꽂혀있다. 머리에는 은색 투구가 씌워져 있고 말을 타고 있는… 적절한 인물인지는 모르겠다만 아마 한국인들에게는 ‘돈 키호테‘가 가장 전형적인 이미지이려나. (정말 이상적인 기사와는 좀 다른 인물이긴 하다만…)
11세기부터 13세기 사이의 중세 문학의 장르는 ’무훈시’라고도 불리는데, 주로 기사의 용맹함과 충성심, 희생을 드높이고 찬양하는 내용이다. 한국 문학으로 치면 속미인곡, 사미인곡이려나. 조선의 시조가 임금과 조국에 대한 연정과 충성, 절개로 가득 찼던 것처럼. 기사도 문학 역시 자신이 떠받들어야 할 상위의 가치, 대상이 있고 그것을 지키고 추구하는 자신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멋있는 인물이 된다. 더 나아가 기사는 귀족 여인을 지켜야 한다. 그 여인은 매우 아름답고 고귀하며 품위 있다. 사실 그 여인은 기사의 여인이 아니라 영주의 여인이다. 이후 15세기 즈음까지 이어지는 장르는 ‘궁정시‘라고 불린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로맨스의 시조라고 볼 수 있다. 무훈시에서 로맨스 주인공(주로 남성)의 태도와 인물 설정을 다졌다면 궁정시에서 그 이야기의 기틀과 전개를 보여준다고 보면 되겠다. 궁정이라는 단어에서 볼 수 있듯 성, 궁전, 영주와 귀족 여인을 키워드로 가진다. 고귀하고 이상적인 여인을 향한 기사의 충성과 희생, 사랑을 노래한다. 시대적으로는 기사가 영주의 부인을 빼앗거나 성적으로 탐하는 행위를 제어하기 위하여 이러한 문학으로 기사의 태도를 강조한 것이라고도 한다. 이런 배경에서도 궁정시의 분위기를 파악 가능할 것이다.
고결한 대상을 향한 추앙과 무한한 헌신, 로맨스
고귀하고 이상적이며 아름다운 대상이어서 함부로 넘볼 수 없지만, 이미 우월한 자의 여인이기에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없는 대상이지만, 먼발치에서 떨어져 그녀를 지켜주기 위하여 내 모든 것을 걸고, 내 운명과 생을 그녀를 지키는 목적에 두는 것. 지고지순하고 아가페와 플라토닉한 사랑의 결정체. 돌려받을 것을 고려하지 않고 무한히 건네는 헌신과 보호, 희생. 이것이 로맨스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그 근원에서 로맨스의 본질적 의미를 찾기 위한 단서들을 많이 얻어온 것 같다. 그렇다면 이것이 현대에 와서 어떻게 뒤틀린 ‘낭만’이 된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어쭙잖게 기사도를 따른답시고 기사놀이를 하며 흉내만 내고 아웅 거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낭만의 근원이 진정한 낭만이나 낭만의 본질 그 자체는 아니지만 앞으로 우리가 잃어버린 낭만을 찾는 여정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낭만의 본질적 의미에 대해서는 충분히 탐색하였으니, 다음 화부터는 낭만임을 자처하는 것들의 문제에 대해 지적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