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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게 Jun 17. 2023

지금 내 상황과 찰떡같이 맞아 떨어지는 <엘리멘탈>

2030 세대와 부모님과의 관계는 이렇게 복잡하지

| <엘리멘탈>은 생각보다 많은 메세지를 담고 있다


우연히 예고편을 봤는데, 세상에, 너무나도 매력적인 소재로 픽사의 영화가 나온다길래 ‘저건 꼭 봐야지’라고 생각해놓고 있다가 드디어 보고 왔다. 영화 <엘리멘탈>에는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메세지가 있었고, 보면서 눈물이 날 정도로 참 많은 부분이 공감되어 공유하고자 한다. 영화에서 크게 세 가지를  얻어갈 수 있었는데, 어느 하나 정말 가벼운 주제가 없었음에도 이렇게 유쾌하고 아름답게 풀어낸 픽사에 경이로움의 박수를 보낸다.




| 첫째, 부모님과 2030 세대와의 복잡하게 설킨 관계


나는 나쁜 딸이야

내가 원하는 게 뭔지는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부모님이 얼마나 힘들게 일궈오신 터전인데, 부모님의 희생에 보답하는 방법은 내 희생 뿐이야



주인공 엠버의 이런 대사들이 마음을 콕콕 찔렀다. 내가 퇴사를 결정했을 때 마음 속을 무겁게 짓누르던 목소리들이었기 때문이다. 제 3자의 눈에서 보면 ’자기 인생인데 왜 부모님 눈치를 보지!! 당연히 내가 원하는 걸 해야지‘ 라면서 답이 쉽게 나오지만, 그게 막상 자신의 인생이 되면 그 고민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워지는지 다들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것이다. 더군다나 격변하는 한국 사회에서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보내셨던 부모님 아래에서 자란 현재의 2030 세대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사치라는 죄책감에 사로잡히기 쉬운 것 같다. 근데 이게 정말 사치인가? 부모님이 힘들게 살아오셨고, 많은 어려움을 겪어오셨다고 해서 우리도 똑같은 어려움을 겪고, 이겨내야 하는 것인가? 어느 누구도 부모님과 같은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강요한 적이 없는데, 미묘한 사회적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휩쓸려온 우리들이 많을 것이다.





주인공 엠버도 마찬가지다. 이민자의 자녀로써, 그녀는 부모님이 폐허에서부터 힘들게 일궈온 가계를 당연하게 물려받아 운영해야 된다고 ‘운명’처럼 생각한다. 아버지보다 더 빨리 배달을 하고, 진상 손님을 친절하게 응대하는 방법을 연습하고, 제품을 더 빨리 만드는 등,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은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본 적도 없고, 은퇴하실 때가 임박한 부모님을 걱정하는 마음에 당연히 다음 타자는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효심을 발휘한다. 자신을 둘러싼 주변인들이나 공동체의 분위기가 같은 방향으로 흘러갈 때, 그것에 대해 의구심을 갖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부모님에게 빚을 진 것 같은 형언할 수 없는 책임감, 부담감, 죄책감은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가끔은 우리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적어도 나는 그런 감정에 자주 주저하기 일쑤였기 때문에 엠버라는 캐릭터에 더 깊이 몰입했다.


‘돈이 안 될거야’, ‘취직에 도움이 안 될거야’ 라고 생각한 영역에 감히 발을 들일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릴 적, 여행 작가를 하고 싶다고 말하던 나에게 엄마는 단호하게 ‘그건 돈이 안 되잖아‘ 라고 말하셨던 게 기억한다. (MBTI 맹신까진 아니지만, 나는 F고 엄마는 극T에 충실한 성격이다) 이런 식의 단호박스러운 대화가 내 기억 속에는 상당히 많다. 그래서 엠버와 엠버의 엄마가 소통하는 방식을 볼 때, 내 상황과 너무 비슷하게 느껴져서 좀 울컥했던 것도 사실이다. 부모님 세대가 확고하게 갖고 있는 가치관과 위배되는 행동을 한다 싶으면, 딸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먼저 이건 안 돼! 저건 안 돼!’ 라고 하는 모습들이 그래서인지 좀 서글프다.





| 둘째, 감정은 생각의 나침반이다


나는 그냥 느낀대로 표현하는건데?


화를 내는 건 나쁜 게 아니라고 생각해


<엘리멘탈>의 남주 웨이드는 감정도 잘 표현하고, 공감도 잘하고, 사람들의 호응도 능숙하게 이끌어낸다. 엠버 가족의 대화가 온통 가게 운영에 쏠려있는 것에 반해, 웨이드의 가족은 상대적으로 대화 주제가 다채롭고 감정 표현이 극히 활발하다. 이건 단편적인 부분이긴 하지만, 첫 등장 때부터 웨이드가 사소한 것에도 눈물을 펑펑 흘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 두 원소가 감정을 대하는 온도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흔히 부정적이라고 분류되는 감정들을 표현하는 것에 부끄러움이나 불편함을 느끼기 쉽다. 분노, 슬픔, 불안함, 두려움과 같은 감정은 밖으로 꺼내 보여주기 매우 불안정한 반면, 즐거움, 행복, 만족감, 사랑 같은 것들은 상대적으로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소셜 미디어의 폐해 중 하나인데, 남들이 다 행복해보이니, 나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꺼내 보이면 뭔가 지는 것 (?)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쉽다. 언제나 행복해야 한다는, 즐거워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기도 상대적으로 쉽고 말이다. 그리고 나의 경우에는 주변 사람들과 감정을 적극적으로 나누고 공감이나 위로를 받는 것이 어색한 환경에서 자라왔다. 서로의 감정을 인정해주는 친구들을 성인이 되어서야 사귀었고, 그 전까지는 이 불덩이 같고 형체도 시시각각 바뀌는 감정이라는 친구를 대하는 게 참 어려웠다. 지금도 노력 중이지만.



엠버에게서는 감정을 불편하게 여기는 모습이 다수 비춰진다. 엠버는 썸남 웨이드의 가족 식사에 초대되는데, 거기서 ‘나는 살면서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엠버가 그간 쌓아놓은 욕구와 생각들은 결국 분노의 형태로 표출된다. 어떤 일을 해도 자꾸만 화부터 나는데, 그게 어디서부터 오는지 모르겠는 상태. 나도 그 상태를 느껴봐서 너무 공감이 되었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 별 거 아닌데도 정말 기분이 바닥까지 가라앉거나 솟구치고, 자꾸만 일을 여기저기 토스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나고, 시도때도 없이 울려대는 전화와 메신저에 숨이 턱 막히는 기분 같은 거. 그 감정들이 점점 번지고 번져 가족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화살이 향하기 시작할 때쯤 ‘뭔가 잘못됐구나’ 알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영화 속 웨이드가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감정을 표현하고, 아무때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참, 편안해보였다. 어떤 것도 억누르고 무시하지 않고, 그냥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표현해내는 모습이 건강해보이기도 한다. 내가 지향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아무때나 울고싶다는 건 아니구…)


감정은 고쳐야 할 것이 아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고, 당연한거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왜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들여다보는 것이다. 감정은 생각과 욕구의 나침반이다. 감정을 잘 다루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게 무작정 억누르라는 뜻은 아니다. 격렬한 감정이 느껴진다면, 그게 어디서부터 왔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어떻게 하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진지한 고민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엠버가 진심으로 자신이 원하는 일이 뭔지 자꾸만 묻어두고 살다보니, 현재 흘러가는 상황에 대한 불편감이 쌓여가는데 그게 분노로 나타났던 것처럼.




| 셋째, 이민자의 삶을 보여주다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이니만큼, 영화에는 이민자의 삶을 떠올리게 하는 많은 장치들이 들어있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비프>에서도 한국인 이민자 2세의 삶을 적나라하게 조명했는데, <엘리멘탈>도 좀 더 부드럽게 같은 주제를 다룬다.


최초에 물 원소가 엘리멘탈 시티에 정착을 하고, 마지막으로 불이 들어온 모습. 물, 대지, 공기 원소들은 상대적으로 삐까뻔쩍한 도심 속 고층 빌딩과 최점단 기술들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는 반면, 불 원소들은 상대적으로 저지대에 빌라촌 같은 지역에 살아가고 있는 모습. 엠버가 상품 배달을 할 때 비춰지는 불 원소 마을의 모습은 뉴욕의 차이나 타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엠버와 엠버의 부모님이 존경의 의미로 절을 하는 모습도, 동양의 문화를 일정 부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찾아보니…



실제로 이 영화 <엘리멘탈>은 한국계 미국인 Peter Sohn 감독의 이민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성우들도 동양계로 섭외를 했는데, 주인공 엠버의 성우는 중국계 미국인 배우 Leah Lewis가 맡았고, 아빠 버니의 성우는 필리핀계 미국인인 Ronnie Del Carmen이 맡았다고 한다. Peter Sohn 감독의 부모님은 1960-70년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영화에서 엠버의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Peter의 부모님도 작은 가게를 차려 생계를 꾸려나가셨다고 한다. 엠버의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불 원소랑 결혼해라’ 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기셨던 것도, Peter Sohn 감독의 할머니가 ‘한국인 여자와 결혼해라‘ 라는 말을 하신 것에서 그대로 차용해왔다고 하니, 이 영화가 얼마나 이민자의 삶과 애환을 담아내려 했는지 알 수 있다.


엠버가 웨이드와 썸을 타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엠버의 엄마는 기겁을 하며 다짜고짜 말리기 시작하시지만, 웨이드의 가족은 전혀 개의치 않아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문화적 차이에 대한 디테일이 곳곳에 녹아있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발견해 나가는 것도 분명한 즐거움이 될 것이다.





<엘리멘탈>은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많은 인사이트를 내포하고 있었다. 영화를 몇 번 더 보면 더 많은 메세지를 찾아낼수도 있을 것만 같은 기분..!!  디즈니/ 픽사 영화들은 볼 때마다, 참 연령대별로 다양한 교훈과 메세지를 주는구나, 감탄하면서 보게 된다.


엠버처럼 격변의 시기를 겪어내고 있는 내가 느낀 부분들이 위와 같다면, 또 다른 부분을 느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면서도, 활발한 토론의 장을 열어줄 수 있는 참 흥미로운 도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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