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률 1위 국가에서 산다는 것
한참 수능 공부에 집중하고 있던 고등학교 3학년 어느 봄날. 고3이라는 어마무시한 시기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실감하기도 전의 일이다. 당시 잘 따르던 밴드부 선배가 있었는데 공부를 꽤 잘했음에도 원하던 성적이 나오지 않아 재수를 하러 들어갔고, 종종 연락을 하고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가 연락해서 하는 말.
우리 반이었던 ㅇㅇㅇ, 걔 자살했대
그 선배라면 복도를 지나다니다 종종 마주치던 오빠였는데. 막 재수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고작 나보다 한 살 많은 사람이 어린 나이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았지만, 나도 솔직히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었기에 상당히 묘한 기분이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공부했는데 원하는 대학교에 못 가면 그냥 죽어버려야겠다'
그거 외에는 아무 길도 없어 보였다.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으니까.
어릴 적부터 선생님들은 공부 잘하는 학생을 둥가둥가 예뻐했다. 학습 태도가 불량해도, 교칙을 어겨도, 자율학습을 빠져도, 공부만 잘하면 어느 정도 프리패스였다. 어쩌면 그 혜택의 맛을 조금 느꼈던 경험이 있어서 그랬는지, 난 항상 공부를 잘했고 잘해야만 했다. 그게 선생님과 친구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고, 그게 곧 나의 가치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3학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 장례식장에서 나는 틈틈이 수학 문제집을 풀고 앉아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머리를 쥐어박고, 밖에 데리고 나가 정신교육을 하고 싶은 심경이다. 인생에는 공부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고. 하지만 당시 집안 어른들부터 그 누구도 나에게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공부를 하고 있으면 그 누구도 나를 방해하지 않았고, 오히려 매우 조심스럽게 대했다. 그런 대접에 일찍이도 익숙해져 버렸다.
매달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전교생의 석차와 전국석차가 게시판에 붙었다. 내 이름은 항상 선생님들의 관심의 대상이었고, 우쭐했다. 같은 반 친구가 내게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흔들리지도 않고 맨날 공부만 해? 넌 내 롤모델이야"
아마 그때까지 살면서 친구에게 들은 칭찬 중 가장 기분이 좋았던 칭찬 아니었을까. 동갑인 친구에게 롤모델이라는 소리를 듣다니. 하지만 거기서 조금만 미끄러지거나 다른 친구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순간 모든 애정이 등을 돌릴까 봐 불안했고, 공부 잘한다는 칭찬을 들을수록 더더욱 기계처럼 공부했다.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서, 항상 계획했던 모든 분량을 끝마치고 내가 정한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
연세대에 합격하던 날, 기뻐하는 부모님을 보며 나는 그냥 안도감을 느꼈다. 아, 다행이다. 이 짓을 다시 안 해도 되는구나. 내가 공부한 만큼 결과가 나와서 정말 다행이다.
어쩌면 내가 가장 견디지 못하는 상황은 좋은 대학에 못 가는 게 아니라, '나보다 공부도 안 하고 더 잘 놀았던 애가 나보다 더 좋은 대학교에 가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근데, 왜 그렇게 연세대에 가고 싶어 했을까?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프랭클
2003년부터 (2개년도 제외하고) 꾸준히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는 대한민국. 10대(10~19세)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인 나라. 그런 우리나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는 아래의 세 가지를 학교에서 가르칠 것을 제안한다.
1. 차분하게 호흡하는 방법
2. 꾸준하게 운동하는 방법
3. 자연과 다시 연결되는 방법
스스로 스트레스를 다스리고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는 방법은 평생을 거쳐 연마하고 써먹어야 할 기술일 텐데, 조금이라도 힘든 티를 내면 나약한 인간 취급을 받는 분위기에서 어디에 도움을 청하면 좋을지 모르겠는 게 당연하다. 그런 걸 학교에서 제대로 배울 리도 만무하다.
지금 시기에 와서 내가 요가와 발리를 찾은 건 본능의 영역이었던 것 같다. 학생 때부터 얕은 우울감이 항상 나를 따라다녔고, 성인이 되면서도 그 우울감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다. 그 우울감은 선택지 없이 오갈 데 없는 기분에서 오는 무력감, 마음을 터놓을 곳이 없는 고립감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냥 유전일지도 모르겠다.
고등학생 시절, 공부 스트레스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나를 집어삼키려 할 때면 나는 무작정 자전거를 끌고 나가 동네 호수공원으로 전력 질주했다. 호수에서 헤엄치는 오리를 보고, 풀냄새를 맡고, 공기를 들이마시고, 나무를 보고, 자전거를 타며 땀을 흘리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분이 상쾌해졌다. 이후 성인이 되고 서울에 살면서도 따릉이를 끌고 한강에 나가 머리를 식히고는 했다. 그건 나만의 생존 방식이었다.
그렇게 본능적으로 우울감이 찾아올 때면 육신을 움직였다. 어쩌면 그게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정신과 신체는 너무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너무나 생각이 복잡하고 감정에 지배당할 때는 그저 몸을 움직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사실, 단편적인 해결책에 불과하다는 걸 인정한다. 궁극적으로는 '내가 왜 사는지' 이유가 필요했다. 공부를 할 때도 '100점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성적을 받아서 내가 꿈꾸던 ㅇㅇ가 되기 위해서'라는 목적이 더 큰 동기 부여가 되는 것처럼. 일을 할 때도 '그냥 하라니까'가 아니라 '이 업무를 통해 지금 경제상황을 경영진에게 전달할 수 있고, 실제 거래를 실행할 기반이 되니까'라는 목적을 알았을 때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 전날 밤은 정말 이상한 꿈을 꿨다. 좀처럼 잠에서 깨지 않던 내가 너무도 괴이하고 역겨운 꿈을 꾸고 잠에서 깼다. 꿈에서는 내가 키우는 수경식물이 썩은 물로 고통받고 있었다. 그 물 안에는 올챙이도 아니고 지렁이도 아닌 꾸물거리는 탁한 에메랄드빛 괴이 생명체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비가 쏟아져 내렸다. 연차를 하루 앞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는데, 오후쯤 팀장님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우는 건가?’
항상 냉철하고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시던 팀장님이 고요한 사무실에서 작은 소리로 흐느끼고 있었고, 그 소리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팀원들과 지금 우리가 듣는 소리가 나한테만 들리는 건 아닌지 확인하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 순간 직감했다. 아, 누군가 죽었구나.
아직까지 인생에서 많은 죽음을 접하지는 못했다. 회사 사람의 죽음을 접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돌아가신 분은 바로 전날에도 얼굴을 마주치고 경쾌하게 목례를 했던 옆 부서의 팀장님이었고, 진급하신 지 1년 5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무엇이 그토록 힘들었던 걸까. 팀원들은 지금 어떤 마음일까. 그 팀원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휴직 중인 동기 오빠는 이 소식을 들었을까.
소식이 조금씩 퍼져가는 게 메신저 알람으로 느껴졌지만, 사무실의 분위기는 소름 끼칠 정도로 차분했다. 훌쩍거리는 소리, 검은색 정장을 입고 바삐 사무실을 나서는 윗분들을 제외하고는 예전과 다를 바 없는 하루 같았다. 이럴 때 어떻게 행동하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옆 부서 팀장의 죽음은 공적인 사건일까, 사적인 사건일까. 회사라는 공간은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프로페셔널리즘을 그토록 강조하는데, 그럼 이런 상황도 그냥 무덤덤히 받아들이는 게 맞는 건가. 그렇다고 백 명이 넘는 본부 사람들이 다 같이 일을 손에서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겠다만.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분은 아니었다. 그저 복도를 오가며 가끔 인사만 하는 사이 정도였다. 다만 일도 잘하고 성격도 너무 좋으시다는 긍정적인 소문을 많이 들었고, 언젠간 같이 일해볼 날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윗분들의 신임을 얻고 계신 것처럼 보였고, 연차가 낮은 직원에게도 항상 웃으며 인사해 주셨던 분. 다른 팀원들이나 동료들은 낌새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던 걸까.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날 비는 정말 오질 나게도 많이 왔다. 그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회사 사이트에 '죽고 싶다'는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익명의 40대 남자 가장이었는데, 가족을 경제적으로 더 잘 부양하기 위해 시작한 재테크가 실패로 돌아가서 집안이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부인부터 자식들까지 글쓴이를 아주 냉담하게 대하기 시작했고, 사람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집안 분위기가 견디기 힘들어서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는 글이었다. 그를 위로하는 익명의 댓글들이 수십 개가 달려있었다.
자살.
특히 학교나 회사 등 특정 조직에서 자살했다는 소리를 들을 때면 가슴이 턱 막혀온다. 그게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공포 때문일까. 기댈 곳이 회사밖에 없다는 공포와 당장 이거 아니면 먹고살 길이 없다는 생각은 견디기 힘든 것이리라.
'더 이상 옵션이 없다'
그 생각이 사람을 가장 좌절시키는 것 같다.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
눈을 돌려 다른 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이제까지 살아왔던 방식에 매여, 이거 아니면 답이 없을 것 같던 고등학교 3학년 때 느꼈던 같은 감정을 평생 안고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주변 많은 친구들이 우울증 약을 먹고, 정신과나 심리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는 걸 서로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이 들었지만, 동시에 우리 앞에 놓인 옵션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여행을 시작했다. 언젠간 나만의 답을 찾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