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아끼면서도 충분히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
올해 발리에서 두 달 정도 지내면서, 내가 불편하지 않은 수준에서 짠순이 기질을 발휘하여 260만원으로 모든 여행경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발리의 가장 좋은 점은, 큰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지난 몇 년간 세계 각국을 돌아다닐 수 있는 특혜를 누렸지만, 그 중에서도 발리는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다시 돌아가게 되는 곳이었다.
이번에 또 다시 발리로 이끌리게 된 이유는, 많이 피폐해져있던 정신과 마음을 완전히 충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의 방향을 제정립해야할 것 같은데 돌파구는 안 보이고, 끊임없이 나 스스로를 괴롭히는 내 머릿속 목소리는 매일매일 에너지를 갉아먹고 있었다. 숨이 턱턱 막히던 상황에 무작정 해답을 찾듯이 떠난 발리에서, 나는 휴양을 즐기러 온 사람들 틈 사이에서 진지해보이는 사람이었다. '놀러온 게 아니라 수련하러 온 거'라는 말을 새기면서.
하지만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얽매여왔던 나를 괴롭게 하는 생각들을 발견했고, 나 자신과의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일상에 치여서 얼마나 나와의 대화를 미뤄왔는지 느꼈고, 그 깊은 대화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가치관과 마음의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떠나기 전에는 어떠한 해답의 실마리도 찾지 못하고 깜깜한 어둠 속을 더듬거리며 기어가고 있는 기분이었는데, 마법같이, 여행이 끝나갈 무렵에는 마음 속에 온통 용기과 희망이 가득 들어차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긍정적인 변화를 함께 체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어딘가로 무작정 떠나는 것이 항상 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 나에게는 그게 답이었다. 각자의 문제를 풀어가는 데에는 각자의 해답이 있는 것처럼, 나에게는 어떤 기존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새로운 환경이 절실히도 필요했다. 내가 낯선 땅에 혼자 똑 떨어져도 씩씩하게 잘 살아나갈 수 있는지, 예기치 못한 돌발상황에도 잘 대처할 수 있는지,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무리없이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지, 일상 속에서는 경험해보기 어려운 상황들을 매일같이 마주할 수 있는만큼, 매일 매일 배울 수 있는 것도 많다. 본격 여행 조장글 같지만, 이 여행기는 고급리조트에서 쉬고 마사지 받는 휴식 여행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이제부터 하나씩 그 여행기를 풀어나갈 예정이다.
| 비자 (12만원)
한달 비자 4.4만원 + 한달 추가 연장 7만원
비자는 전자비자로 사면 총 10만원 정도에 두 달 권을 끊을 수 있다는데, 나는 공항에서 도착비자로 결제했던지라, 추가 연장할때는 현지 대행사를 통해서 연장해서 금액이 조금 더 들었다.
| 숙박비 (90만원, 총 56박)
'1박에 만원 언저리로 살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갔지만, 막상 1만원짜리 호스텔에 묵다보니 너무 삶의 질이 떨어져서 2만원 ~ 2.5만원짜리 홈스테이와 1만원짜리 도미토리 호스텔을 오가면서 생활했다. 결과적으로는 하루 평균 1.6만원 수준에 괜찮은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좋은 홈스테이를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인도네시아의 부동산을 보는 다니는 기분이어서 재미있었다. 가끔 여행카페나 오픈 카톡방에 무료로 숙소를 양도한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는데, 이런 천사같은 분들 덕분에 한 번씩 좋은 숙소에서 푹 쉬고 일어나면 다시 풀충전이 되는 기분이었다. 해외에 나와서 한국분들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던 것은 참 행운이었다.
| 식비 (85만원)
대부분 조식은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고, 아니더라도 길거리에서 500원 ~ 800원 수준의 맛있는 아침메뉴가 많으므로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점심은 주로 3천원 수준의 로컬 음식이나 스무디볼 등을 먹었다. 저녁은 역시 3천원 수준의 로컬 음식을 자주 먹었지만, 1만원 정도의 괜찮은 음식을 먹으며 새로운 친구와 소셜라이징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나는 음주를 거의 안하다시피 했고, 커피도 마시지 않기 때문에 식비에서 돈을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발리는 과일이 1kg 에 1천원꼴이기 때문에 (수박, 파파야 등) 숙소에서 과일을 잘라 먹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호르몬의 장난으로 식욕이 폭발하는 날들이 있었는데, 그럴 때는 아끼지 않고 먹고싶은 음식을 실컷 먹었다. 주로 한식, 피자, 초콜릿, 음료수 등을 숙소에 잔뜩 쟁여놓고 먹었다.
| 교통비 (12만원)
오토바이 대여는 하루에 6천원 수준이었다. 여행 기간에서 다 합하면 10일 정도 빌렸고, 친구를 뒤에 태우고 탄 날이 그 중 8일이라서 거의 돈이 안 들었다. 오토바이 택시는 한 번 이동할 때마다 1,000 ~ 2,000원 수준으로 나왔으며, 웬만해서는 걸어다녔고 필요할 때만 이용했다. 중간에 길리섬과 누사페니다 섬을 갔는데, 스피드보트는 길리 왕복 6만원, 누사페니다 왕복 3만원 선에서 해결했다. 특히, 누사페니다는 현지 대행사 통하지 않고 12Go 라는 사이트에서 직접 예약하면 더 저렴했다.
| 교육비 (35만원)
요가수강료 도합 35만원 수준으로 나왔다. Yoga Barn, Radiantly Alive, Alchemy Yoga, Intuitive Flow 등 다양한 요가 수업을 원없이 수강했다. 예전에는 무조건 이름 많이 들어본 요가반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다른 요가원들도 각기 개성이 넘치고 프로그램도 탄탄해서 선택에 정답은 없는 듯 하다.
| 레저비 (4만원)
누사페니다에서 숙소 주인분 덕분에 1.8만원 정도로 퀄리티 좋은 스노클링을 할 수 있었다. 길리섬에서도 1.1만원 정도의 가성비 좋은 스노클링 체험을 했다. 그 외에는 길리 앞바다에서 2천원 정도에 스노클링 장비를 빌려 종종 거북이를 보러가고는 했다. 발리 본섬에서는 별다른 수상스포츠를 하지 않았다. 입장료 없는 비치클럽에 워크인으로 들어가 사람 구경, 노을 구경하다가 나온 적도 있었고, 성격 좋은 동행분 덕택에 묵고계신 고급리조트의 수영장을 이용한다거나, 소규모 풀빌라 파티 에 초대되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쇼핑 (6만원)
기내용 캐리어 하나 끌고 간 여행이었기에 예쁘게 입고 싶은 날이라도 있으면 입을 옷이 부족했다. 옷과 신발은 로컬 시장을 이용해서 구매했다. 쪼리는 5천원, 원피스나 수영복은 9천원 수준으로 구매했다. 나는 유독 악세서리 중에서도 귀걸이만 공략하는 편인데, 마침 길리섬에서 정말 마음에 드는 귀걸이를 발견해서 2개를 구입했다. (각 7천원) 좋아하는 원석이 사용된 귀걸이었는데 한국에 비해 매우 저렴한 편이라 고민없이 냉큼 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