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아끼고 살 찌기
인플레이션이 극심하다. 좀 맛있는 식사를 하려 치면 만원 중반대가 평균이 된 시대인 것 같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이나 여타 다른 나라도 상황은 마찬가지. 기본 팁이 20%로 올라버린 시대에, 20불짜리 식사를 하고 음료수까지 한 잔 하면, 왜 계산서에 찍혀있는 건 내가 본 금액이 아닌 건지.
전 세계 사람들이 동남아를 최고의 휴양지이자 디지털노마드의 성지라고 찬양해 마지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각자 원격근무를 하러, 휴양을 하러, 은퇴하고 노후를 보내러 동남아로 몰려든다. 그중에서도 발리는 동남아 중에서 물가가 비싼 편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서도 충분히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넘쳐난다. 음식이 대표적이다.
여행을 떠난 백수에게 필요한 건 세 가지다. 의, 식, 주. (당연하게도). 그중에서도 식비는, 매일 꼬박꼬박 나가는 돈으로써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매일 라면만 끓여 먹고살 수는 없지 않은가. 나름 돈 모으고 아끼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으로서, 이제 들어오는 돈도 없는데 나가는 돈이라도 최소화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나는 외식만으로 발리에서 꼬박 두 달을 살았고, 총 비용 85만원으로 모든 끼니를 해결했다. 식당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현지음식은 3천 원이면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시세를 확인하고 나니, 하루에 1만 원으로 식사를 해결하겠다는 목표가 실행 가능했다. 저렴한 식사와 좀 더 가격이 있는 식사를 왔다 갔다 하며 예산을 맞췄다.
현지인들의 식사다. 간판이 달려있지 않은 식당들은 보통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간이식당인데, 거기서는 천 원으로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환율 따지면 정확히는 800원이다. 아침 7시경에는 거리를 걷다 보면 노점상이나 문방구같이 생긴 가게들이 있는데, 거기서 바나나잎으로 싼 미니 식사를 단돈 500원에 팔고 있다. 정말 놀랍다. 닭고기도 들어있고, 구성이 꽤 알차다. 아침에 어차피 많이 먹지도 않는지라 오백 원에 한 끼 식사는 정말 가성비 넘쳤다. 이런 가게들은 관광지 한복판에 있지 않고,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외진 길목에 주로 자리잡고 있다.
3천 원대 식사가 가장 많다. 진짜 굳이 비싼 식당 안 찾아다녀도 된다. 어차피 식당들 문도 안 달려있고 죄다 뚫려있어서 어디서 먹든 맛만 있으면 그만이다. 나름 영어 메뉴판을 놓은 곳부터는 가격이 2-3천 원으로 형성되어 있지만, 퀄리티가 확실히 올라간다. 제일 무난하다.
건강한 야채가 들어간 스프랑 고기 들어간 볶음밥 등, 정말 일반적인 메뉴들이다. 나시고랭이랑 미고랭은 정말 많이 먹었는데, 너무너무 기본적인 메뉴고 맛도 비슷하기 때문에 3천 원 이상의 가격은 웬만하면 주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우붓의 Angel's Warung은 정말, 후기답게 보통 나시고랭보다 배로 맛있었다.
[식사 TIP] 구글맵에 음식점 검색해서, 별점 4.3 이상에 후기개수 500개 이상이면 웬만하면 맛있다.
가격이 4천 원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고기의 비중이 급격히 늘어난다. 폭립, 나시짬뿌르 등등. 특히 발리에는 Fish Steak가 많은데, 그 Fish란 바로 참치 되시겠다. 발리에서는 참치가 눈에 밟히도록 흔하다. 참치 스테이크 가격대는 식당마다 다르지만, 내가 가장 즐겨가던 우붓의 Opini Kopi에서는 단돈 4천 원이 안 되는 가격에 큼직한 참치를 먹을 수 있어서, 나시고랭 다음으로 두 번째로 많이 먹은 메뉴였다. 맛은 딱 고등어조림 같은 맛이라서, 한식이 그리울 때도 종종 찾았다.
보통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기분 좀 내고 싶을 때 이 가격대의 식당들을 찾았다. 처음 방문한 곳은 유명한 바비굴링집이었다. 묵고 있는 숙소의 옆방에 새로 들어오신 한국인 부부께서 이 식당을 추천해주셔서, 냉큼 바이크를 빌려서 찾아갔다. 바비굴링는 돼지고기 덮밥이라고 보면 되고, 사태는 돼지고기 꼬치다. 단일 메뉴만 시켰다면 4천 원에 먹었겠지만, 혼자 멀리 맛집 찾아간 김에 다 먹어보고 시켜서 통 크게(?) 6천 원어치 시켰다. 발리에는 태국음식들도 많이 파는데, 대체로 인도네시아 음식보다는 비싸다. 대신 맛은 정말 태국음식 맛을 기가 막히게 잘 낸다. 가까워서 그런가. 우리나라 매운탕 맛이 똑같이 나는 생선구이 맛집도 찾았다. 현지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이라길래 가봤는데 과연, 너무 맛있어서 두 번 갔다.
두 달을 있다 보면, 인도네시아 음식에 질린다. 어쩔 수 없다. 그럴 때는 새로운 맛이 필요하다. 서양인들이 많이 찾기 때문에 엄청 맛있는 양식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피자, 파스타도 싸게 먹으면 3천 원이면 먹을 수 있지만, 그래도 좀 분위기 내려면 1만 원이다. 한식은 웬만하면 다 1만 원대다. 현지음식보다는 확연히 비싸지만 그래도 먹고 싶으니까. 김치볶음밥, 김치찌개, 계란말이, 짬뽕 같은 한국의 맛을 찾았다. 가끔 혼자 기분내고 싶거나, 컨디션이 안 좋을 때면 이렇게 조금은 사치(?)를 부려 먹고 싶은 음식을 찾아다녔다. 개인적으로 똠양꿍 광팬이라서, 똠양꿍도 많이 먹었는데 보통 6천 원~1만 원대로 형성되어 있다.
내가 발리에서 사랑에 빠진 것 중 하나가 바로 스무디볼이다. 실제로는 설탕이 많이 들어가서 그렇게 안 건강하다지만(?) 매우 건강해 보이는 요구르트+과일+견과류 파티. 내가 이거에 빠져서 한국 돌아와서도 혼자 치아시드랑 냉동과일 사서 열심히 스무디를 해 먹었더란다. 특히 용과(Dragon Fruit)가 색깔이 너무 예뻐서 먹을 맛이 났다.
식사들이 저렴할뿐더러 매우 건강하고, 한국인 입맛에 꼭 맞아서 식사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물론 조종 한식을 찾게되긴 했지만, 그럴 때에도 이런 혜자로운 가격대에 굶고다니지 않을 수 있어서 참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