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동안 두 발 뻗고 지낼 수 있었던 이유
총 56일에 90만 원. 나눠보면 1.6만 원 꼴이다. 하루에 1.6만 원!!! 그 돈으로 아주 호사를 누리고 왔다. 자타공인 내향인으로써, 혼자 에너지를 충전해야 밖에 나가서 신나게 뛰어놀 수 있기 때문에 내게 개인공간은 매우 중요하다. 발리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숙소가 그렇게 비쌀 필요는 없다는 걸 몸소 체감하고 왔다. 소비자 효용이 내는 돈에 비례하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경험 상, 숙소에 가장 '돈을 잘 썼다'라고 느끼는 최대 효용을 느꼈던 구간은 딱 2만 원 대였다. 어차피 하루 자면 날아가는 숙박비 아껴서 맛난 음식 실컷 먹고, 예쁜 옷 실컷 사는 게 나에게는 더 남는 장사라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이다. (개인 취향)
"어머~ 안녕하세요! 어디 가세요?"
요가원에서 만난 동네 친구(?) 같은 언니가 있다. 둘 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지역에 한 달을 머물면서 같은 요가원에 다니다 보니, 정말 동네에서 자주 마주쳤다. 참 신기했다. 아는 사람이 있으니, 제2의 고향이 된 듯한 묘한 기분.
어쨌든, 그 언니의 집에 한 번 놀러 간 적이 있는데, 한 달 숙박을 미리 예약했다고 한다. 한 달에 40만 원이란다. 그게 하루에 1.5만 원도 안 되는 비용으로, 아담한 테라스도 있고, 개인실에 깔끔한 욕실도 있고, 룸 클린도 해주는 값이다. 미쳤다.
[숙소 TIP] 발리에서 좋은 숙소를 예약하는 건 세 가지 방법이 있다.
1) 호텔 예약앱(Booking.com, Hotels.com, Agoda 등)
2) 직접 발품 팔기
3) 네이버카페 잘란잘란/ 오픈카톡방에 숙소 양도글 확인하기 (무료양도도 종종 올라옴)
나도 그 언니가 알려준 덕분에 덩달아서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 여행지에서 발품을 팔아 숙소를 구한다니? 생각지도 못했던 선택지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알고 보니, 더 좋은 숙소를 더 싸게 예약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구글맵에 homestay라고 치면, 숙소 예약앱에는 나오지 않는 수많은 홈스테이들이 표출되기도 한다. 거기 있는 연락처로 연락해 보거나, 직접 찾아가서
"나 이때 3박 하고 싶은데, 할인 가능한가요?"
물어보고 현금으로 결판을 본 적이 여러 번. 홈스테이는 개인이 운영하기 때문에, 예약앱에 수수료를 떼이지 않을 수 있는 직접 거래를 선호하더라. 앱에서 2만 원짜리 숙소라면, 직접 예약하며 1.7만 원에 해주는 식이다. 하루 이틀 쌓이면 충분히 식사값이나 이동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금액이다. 조금만 용기를 내면 싸고 좋은 숙소를 얻을 수 있다!!
1만 원 초반대로 도미토리에 머물 수 있다. 한 방에 침대가 여러 개 놓여있고, 샤워실과 화장실, 식당, 수영장 등 나머지 시설은 다 공용공간이다. 이 가격에 무려 조식을 주는 호스텔도 있는데, 주로 간단한 팬케이크나 과일 정도를 준다. 매우 혜자롭다. 호스텔은 아무래도 수면 말고는 다른 걸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잠만 자고 싶거나,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싶을 때 간간히 이용했다.
물론 복병도 있다. 스미냑 근처에서 이용했던 캡슐호텔은 알고 보니, 바랑 같이 운영되고 있어서 밤마다 너무 시끄러웠다. 나는 명상(?) 음악을 틀어놓고 에어팟 노이즈캔슬링을 해놓고 자서 그냥저냥 잠은 잘 잤지만, 잠귀가 밝은 사람들은 정말 비추. 잘 시간 됐는데 노래가 쿵쾅거려서 꽤나 당황했다.
그래도 혼자 여행자에게 좋은 선택지는 분명하다. 특히 길리섬에 계획도 없이 들어갔을 때는, 이미 극성수기였던지라 숙소들이 없기도 없고 너무 비싸서 숙소 구하는 것에 애를 먹었다. 다행히 폭풍 검색 끝에 극적으로 한 호스텔에 자리가 났다. 덕분에 바닷가에서 같이 팝콘 먹으며 불멍을 하는 등 소셜라이징 이벤트를 통해 여러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쉽게 가질 수 있었다.
조금은 구리지만 개인실을 쓸 수 있다. 보통 침대가 좀 작거나 살짝 탄력감이 안 좋은 수준이다. 그리고 화장실도 진짜 필요한 것만 있는 수준. 한 숙소는 세면대가 없어서 쪼그려 앉아서 양치질을 해야 하는 곳이었다. 조금 불편한 점들이 있지만,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할 때마다, 가격과 공간을 타협한 선택지이다.
여기서도 변수는 발생했다. 우붓의 Radiantly Alive 요가원 근처 숙소에 머물던 때의 일이다. 하루는 물이 갑자기 단수되어서 주인분이 급히 물 양동이를 올려다 주었다. 그날따라 폭우가 와서 조금 추웠고, 다행히 요가 후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후 집에 돌아온 상태였다. 샤워하고 오지 않았더라면 땀범벅으로, 혹은 찬물 샤워를 하고 자야 했을 텐데 다행이었다. 주인분이 엄청 친절하게 챙겨주셔서 오히려 감사했다. 여행하다 보면 이런 돌발 상황이 참 자주 생긴다. 무던해지는 게 필요하다.
이 가격대의 숙소는 푹 쉬면서 일할 수 있는 컨디션은 아니지만, 그래도 방해 없이 간단히 숙면을 취하고 싶을 때 좋은 선택지이다.
물론 이 가격에 2만 원 그 이상의 값어치를 하는 너무나 보석 같은 좋은 숙소도 있다. 위 숙소는 길리 Air에서 발품 팔아 구한 숙소다. 도저히 숙소들이 너무 비싸서 계속 호스텔을 알아봐야 하나, 하던 차에 정말 운 좋게 구했다.
사연은 이렇다. 발리 본섬에서 길리섬으로 들어가는 배에서 한 미국인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인스타를 교환했었다. 그 친구가, "다들 길리 T(트라왕안)으로 들어가네. 나는 바로 길리 A(에어)로 들어갈 거라 불안한데, 서로 섬 정보 교환하자"하면서 교환한 거였다. 이 친구도 숙소 안 구하고 그냥 무작정 들어가서 현지인들한테 물어물어 즉석에서 구한 숙소라고 했다.
며칠 후 내가 길리에어로 들어갈 때, 그 친구가 이 숙소를 나에게도 추천해 주었고 운 좋게도 자리가 있어서 편하고 저렴하게 숙박을 할 수 있었다. 숙소에서 조리도 가능했고, 테라스도 있고, 바다랑도 가까웠다. 이런 숙소는 검색해도 안 나오고 정말, 직접 발품 팔아서 구할 수밖에 없는 숙소였는데 참 운이 좋았다. 이런 숙소도 분명 존재한다.
2만 원 중반대부터가 가장 무난하고 상태 좋은 홈스테이 형태의 숙소들이다. 여기부터는 혼자 여행객뿐 아니라 커플들이나 친구, 가족 단위로 오는 여행객들, 장기 투숙객에게도 정말 추천하는 정도의 컨디션이다. 조금 더 고급형 홈스테이라고 보면 되겠고, 발리를 제대로 느끼면서도 호텔식의 깔끔하고 쾌적한 숙박을 할 수 있는 형태의 시설이다. 수영장이나 정원이 있는 곳들이 많았고, 테라스는 웬만하면 무조건 있었다. 조식도 정말 잘 나오고, 서비스도 매우 친절하다.
위 두 사진 모두 우붓인데, 다 Yoga Barn이랑 매우 가까운 위치의 쾌적한 숙소이니 참고!
위 사진은 우붓에서 묵었던 10개 남짓한 숙소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숙소다. 숙소명은 Savira Bungalow이다. 나 혼자만 알고 갈 때마다 장기투숙 하고 싶은 숙소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는 마음에 공유한다. Yoga Barn 근처에 있고, 당시 어떤 앱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보물 같은 숙소였다. 새로 사귄 언니의 추천으로 그냥 무작정 방문해서 "방 비는 날 있어요?"라고 박치기해서 3박을 얻어냈는데, 세상에. 수영장도 있고, 냉장고도 있고(없는 숙소가 많다), 주요 관광지랑 가깝기도 하고! 집주인분들과도 서슴없이 대화를 틀 수 있고, 종교행사에 따라갈 수도 있어서 발리의 문화를 직간접 체험하기도 이만큼 좋은 숙소가 없었다.
가격에 대해 즉흥협상도 가능했다. "조식 안 먹을 테니 조금만 깎아주세요."라고 호기롭게 제안하여 1박당 5천 원을 깎아냈다. 장기투숙을 미리 예약했다면 더 싸게 예약할 수도 있었을 거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한 달, 두 달을 길게 머무는 외국인 친구들이 꽤 있었다. (굳이 홍보가 필요 없는 숙소였음)
이 가격대의 숙소는 웬만하면 테라스가 있다. 여기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거나,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기도 좋다. 특히 발리는 날씨가 좋기 때문에, 숙소 밖 테라스에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하다 보면 굳이 카페를 찾아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위 사진은 Alam Pracetha 라는 숙소였는데, 우붓 시내와는 거리가 좀 떨어져서 항상 바이크를 타고 다녔다. 그래도 요가원까지는 2천 원이면 가는 거리였다. 도시의 소음에서 떨어져 편안하게 쉬고 싶을 때 3일 정도 묵었고, 정말 만족스러웠다.
위 숙소는 Yastra Yana라는 곳이고, 요가반과 매우 가깝다. 여행 도중 성수기가 겹쳐 방 구하기가 힘든 시기가 있었다. 그러다가 요가원에서 만난 친구가 "내가 잡은 숙소 있는데 같이 묵을래?"라고 고맙게도 제안해 줘서, 그 친구와 함께 머물며 숙박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 사실 웬만한 홈스테이들은 2인실로써 침대 사이즈가 퀸 ~ 킹사이즈이기 때문에, 확실히 함께 숙소를 셰어 할 사람이 있다면 그 좋은 시설을 다 누리면서도 돈도 절약할 수 있어 좋다.
나머지는 그 이상. 여기서부터는 운이 크게 작용해서, 그냥 내가 어떻게 사용했는지 참고용으로만 간략히 남긴다.
하루는 감사하게도 7만 원짜리 호텔을 무료로 양도받아 쉰 적이 있다. 아이가 있으신 부부셨는데, 공항 가기 전 쉬려고 예약하셨던 호텔을 쓰지 않게 돼서 양도를 하겠다는 글을 발견했다. 당시 나는 호스텔을 예약해 놓은 상태였는데, 시끄럽고 불편한 호스텔보다는 중심지랑 가깝고 이동도 편한 숙소에서 하루 묵는 게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아 바로 양도를 받았다.
본인 확인 절차가 당연히 있었지만, 보내주신 예약번호와 함께 "예약자는 제 친구인데 못 오게 돼서, 저 혼자 왔어요~"라고 둘러대니 문제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양도해 주신 분께서 "혹시 체크인 과정에서 본인 아니라고 체크인 못하게 하면 바로 알려주세요, 제가 전화해 놓을게요"라고까지 해주셔서 참 감사했다. 낯선 나라, 낯서 땅에서 낯선 이의 호의를 받은 경험이 유독 많았던 이번 여행이었다.
또 어떤 날은 운 좋게도 성격이 잘 맞는 동행을 만나서 그 동행분이 머무시는 숙소의 시설을 누린 적도 있다. 시설이라 해야 수영장인데, 숙소에 놀러 가서 수영장에서 같이 놀고 수영하는 정도. 요가원 다니면서 루틴 한 삶을 살다가 주말에 이런 약속이 잡히면 되게 리프레쉬되고 좋았다. 한국에서 친구들과 약속을 잡으면, 식당 가고 카페 가고 또 각자 헤어지는 형태뿐이었는데. 여행지에서의 약속은, 같이 수영도 하고 운동도 같이 하고 그런 모든 것들이 그냥 좀 더 쉽게 느껴졌던 것 같다. 날씨도 좋고.
한 가지 고려할 것은, 나는 숙소 컨디션야에 좀 관대한 편이라는 점이다. 특히 발리라는 곳의 특성도 좀 생각해야 한다. 우붓 지역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정글도시이기 때문에, 거기서 벌레가 안 나오는 숙소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좀 모순이다. 호텔, 리조트형 숙소도 약을 열심히 치면 안 나올 수는 있겠다만, 기본적으로 곤충과 동물의 세상에 인간이 들어가는 입장인지라 개미와 도마뱀은 당연히 있다.
가격대와 상관없이 숙소에 개미들은 항상 있었다. 그건 발리에서 왕족이 운영한다는 최고로 고급진 숙소에 묵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산소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도마뱀도 항상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게 벽이나 천장에 떡하니 붙어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냥 내 침대만 안 들어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동량이 많은 친구들도 아니고, 그러다가 또 알아서 나간다.
발리는 개미와 도마뱀, 고양이와 강아지, 종종 원숭이와도 공생해야 하는 섬이다. 난 그래서 오히려 매일매일, 내가 지구에 사는 다양한 생물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다. 내가 자연의 일부라는 걸 매일같이 깨달을 수 있는 환경인 게, 나에겐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