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의 요가원 1탄, Yoga barn과 Intuitive Flow
내가 발리에 두 달 살기를 결심하게 된 가장 주된 이유였다. 요가.
그럼 내가 원래도 평소에 요가를 하던 소위 요기(Yogi)였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나는 자타공인 각목으로, 고등학교 체육 수행평가 때도 유연성 종목에서만 간신히 fail을 면한 뻣뻣이다. 대학생 때도 복싱과 요가 사이에서 고민할 때, 요가 한 달 배워보고 뻣뻣한 몸을 고통스럽게 꺾느라 스트레스가 더 쌓여서 때려치우고 바로 복싱으로 마음을 굳혔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제 와서 요가냐. 솔직히 내가 굳이 발리까지 가서 요가를 배우겠다고 결심한 건 '명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90% 이상이었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 따뜻한 커뮤니티가 절실히 필요했다. '발리'라 하면 유럽과 미국, 호주 등 전 세계 사람들에게 Self-care를 상징하는 나라로 유명하기도 하고, 내가 즐겨 듣는 수많은 외국의 마음 챙김 팟캐스터들은 발리에 본거지를 두고 있기도 하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한국의 요가원은 '신체의 유연함'와 '얼마나 더 잘 꺾고 오래 버티느냐'에 더 큰 중요함을 두었고, 유연하지 못한 나는 내가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요가복 패션도 매우 신경 쓰였고, 꽉 막히고 어두운 실내에서 진행됐기 때문에 아무리 아로마를 뿌리고 발라대고 향을 피워대도 그냥 상쾌하기보다는 답답하다는 느낌밖에 안 들었다. 내가 갔던 요가원이 이상한 걸 수도 있겠지만, 나름 신촌에서 유명하고 규모 있는 곳이었단 말이다.
그런데, 예전에도 발리에 방문할 때마다 일회권으로라도 끊어서 들었던 발리에서의 요가는, 들으면 들을수록 그냥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몸을 얼마나 굽힐 수 있든, 어떤 옷을 입든, 초보든 고수든, 상관이 없었다. 그런 걸로 눈치를 주지도 않았고, 부담스럽게 자세를 일일이 고쳐주려고 몸에 손을 대는 것도 없었다. 선생님들이 하는 말 하나하나 다 명상과 마인드 컨트롤에 도움이 되었고, 몸뿐 아니라 마음도 풍족해지는 게 느껴졌다. 물론 공간도 정말 큰 몫을 차지한다. 실외나 다름없이 문도, 창문도 없이 뻥 뚫려있는 지상의 요가원. 밖에는 새소리와 나뭇잎이 바람에 사아악 흔들리는 소리가 나고, 그 초록이 우거진 정글 숲 속에서 요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말 행복했다. 매일매일 보는 광경이었으면서도, 매일매일 감사가 터져 나왔다. 발리는 그런 곳이었다.
발리의 가장 대표적인 요가원인 만큼,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내가 가장 오랜 기간 가장 많은 수업을 들은 요가원이기도 하다. 요가반은 특징을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가장 규모가 큰 만큼 수업의 종류도 가장 다양하다.
빈야사, 필라테스+요가, 파워요가, 인(Yin) 요가, 하타요가, 아크로 요가 등 모든 종류의 요가뿐 아니라, 명상수업, 근육 단련 수업, 살사 댄스 수업, 음악 수업, 대화형 수업 등 정말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이 많다. 한 달 이상 머무는 경우는 무조건 한 달 무제한 수강권을 구매해서 (30만 원 수준) 모든 수업을 다 들어봐도 지루할 틈 없이 좋다. 단, 유명한 만큼 사람도 많고 빽빽하기 때문에 나중에 가서는 좀 사람이 적은 요가원을 자연스럽게 찾게 되더라.
둘째, 나이트 프로그램이 많다.
회원권과는 별도로 돈을 내야 참가할 수 있는 이벤트들이 많다. Ecstatic Dance가 대표적이다. 요가반의 시그니처 이벤트이기도 한데, 한마디로 '술 안 마시고 노는 클럽'같은 분위기다. 호기심에 한 번 갔다가 두 번 더 가버렸는데, 처음에는 쭈뼛쭈뼛하고 부끄러울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사람들이 섹시하고 헐렁한 혹은 딱 붙는 히피스러운 옷을 입고 몸이 시키는 대로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데, 그게 정말 기이하면서도 홀린다. 남들의 시선 신경 쓰느라 막춤을 추는 게 쉽지 않은데, 여기서는 120% 가능하다. 그 느낌이 너무 자유롭고, 해방감까지 들어서 몇 번이고 다시 찾게 되었다. 호불호가 갈리지만, 나는 정말 좋았던 프로그램. 아, 무조건 2층이 좋으니까 디제이가 있는 2층으로 예약하자. 5천 원 비싼데 그 값을 한다.
셋째, 친구 사귀기 좋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만큼, 사람들과 부딪힐 일도 대화를 틀 일도 많다. 나 또한 한 수업에서 마주친 한 폴란드 친구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아서 먼저 다가갔고, 나중에는 같이 여행도 하고 숙소도 공유할 정도로 친해졌다. 그리고 오며 가며 수업에서 자꾸 마주치던 한 친구와도 정말 자연스럽게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관심사와 주파수가 맞는 사람을 쉽게 만나고, 얼마든 빠르게 친해질 수 있는 곳이다. 10년 지기 친구들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얘기들이 여기서 만난 친구들에게는 왜 그렇게도 술술 나왔는지. 그리고 비슷한 고민을 안고 온 사람들이 많은 만큼, 매우 건강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비단 요가반뿐만은 아니지만, 여기서 제일 많은 친구들을 사귀긴 했다.
요가반에는 수업이 하도 많아서, 한 두 개의 수업만 들어야 할 경우에는 도대체 누구를 들어야 되나 혼란스러울 수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보통 그냥 시간 맞는 걸 듣게 되겠지만, 그래도 누가 유명하고 누가 잘하는지는 좀 쓱 알고 가면 도움이 될 것이다. 아래에 강사와 수업별 설명을 적었지만, 어떤 수업을 하느냐 자체보다는 강사별 스타일만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Paul Teodo (Power Yoga)
요가반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사 중 하나다. 잘생겨서 그런지, 기타를 쳐서 그런지, 둘 다겠지. 듣자 하니 미국 CA 산타모니카에서 파워요가 창시자를 멘토로 두고 요가 강사를 10년 정도 했단다. 아침에 주로 파워요가를 하는데, 에너지를 불어넣는 요가다. 특히, 자신보다 더 높은 존재나 인류를 생각하며 삶의 목적을 생각하는 하루를 보내자는 등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볼 만한 주제를 던져준다.
Byron De Marse (Strong Slow Flow)
7월에 여름휴가 겸 미국 캘리포니아로 떠났던 강사여서, 우붓 오자마자 수업 한 번 못 듣고 있다가 우붓을 떠나는 마지막날 운 좋게도 돌아온 바이론의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미국에서 그의 수업을 들으면 엄청 비쌀 텐데, 발리에서 이렇게 들을 수 있다는 게 참 행운이다. 각자가 할 수 있는 동작에 맞추면서도, 본인의 Capacity를 확장할 수 있게 지도해 줬고, 남들이 하는 동작을 따라 할 필요 없이 자신이 편안함을 느끼는 대로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여도 괜찮다고, 정답은 없다고 말해주셨던 말 한마디가 참 마음에 깊이 남았다. 동작이 너무 힘들다면 자기 몸이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동작을 스스로 변형해도 괜찮다고 말씀해 주셨다.
Bex Tyer (Vinyasa Flow)
요가반에서만 10년 넘게 강의를 하고 계신 분이라고 한다. 나는 초반에 빈야사가 너무 힘들었지만, 갈수록 가장 좋아하는 종목이 되어버렸다! 특히 아침을 깨우기엔 정말 좋은 운동이다. 벡스 선생님은 굉장히 Chill 하고 수강생 한 명 한 명한테 눈 맞추며 인사하고, ‘오늘 특별히 배우고 싶은 게 있나요?’ 하고 물어보시는 등 매우 차분하시면서 세심하신 분이었다. 동작도 아침에 맞게 부드럽고 천천히 진행해 주셔서 따라가기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Chris Fox (Mobility Therapy)
일단 선생님이 이리저리 농담을 잘 던지기도 하시고, 안 그래도 빈야사 같은 동작 하면서 손목이 좀 아팠는데, 그런 걸 풀어주고 더 힘이 좋은 부위 (손바닥이랑 새끼손가락 쪽)를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요가 외에도 어떤 운동을 하든, 어떤 동작을 하든 내 근육과 관절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주셨는데 너무나 유익했다. 수업이 끝나고서도 배운 동작을 반복할 수 있도록, 수강생들에게만 찍어두신 동영상을 무료로 보내주셨다.
Callan Mielnik (Fly High Yoga)
요정이다. 이 분은 요정 선생님이다. 엄청 예쁘시고 우아하다. 동작도 굉장히 상세하고 친절하게 알려주고, 교정이 필요한지 표시하는 코스터 같은 것도 나눠주시고, 한 명 한 명 마크해서 잘 알려주시고, 수업이 끝나고 나면 수업을 정말 알차게 잘 준비하셨다는 느낌이 든다. 매우 조곤조곤하고 친절하시다.
Chocolako (Innergy Healing Chakra)
특히 차크라에 집중하시는 선생님이다. 각 신체부위별 차크라와 그에 맞는 동작들을 지도하신다. 읊조리듯 말을 하시기 때문에 매우 차분해지면서 확 집중을 유도한다. 사실 이분도, 미국과 영국에서 MBA까지 하시고 커리어 승승장구하시던 분인데, 인생에서 큰 굴곡들이 있었고 지금은 원래 취미로 하던 요가를 전업으로 가르치시고 계시다. 그분의 스토리가 개인적으로 너무 와닿았고, 그래서 수업 끝나고 개인적으로 찾아가 내 얘기를 나누며 응원의 에너지를 받았던 분이다. 정말 너무 애정하는 선생님이다.
Tina Nance (Nervous System ReWire)
정말 기대 안 했는데도 너무 좋았던 선생님이다. 불안과 긴장을 즉각적으로, 또 장기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신체 동작들을 알려주셔서, 나에게는 가장 실효성이 높은 수업이었다. 수업 끝나고도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마음껏 물어보라셔서, 호다닥 달려가서 내 개인적인 고민을 상담드렸다. 아침마다 긴장되고 쿵쾅거리는 심장 때문에 좀 힘든데 어떤 방법이 도움이 될지 여쭤봤었고, 나에게 맞춘 실용적인 팁을 알려주셨는데 너무나 유용하고 감사했다. 또 Chris 선생님처럼 수업에서 알려주셨던 동작들을 스스로 복습할 수 있도록 찍으신 무료 비디오 링크도 공유해 주셨는데, 이런 A/S 너무 좋다.
여기는 사실 한 번만 가본 곳이라 내가 크게 이렇다 할 말을 하긴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 특징을 꼽자면 수련실이 한 개만 있는 등 규모가 정말 작고, 가는 길이 엄청 예쁘고, 요가원 바로 옆에 있는 카페의 전망이 죽여준다.
내가 들은 선생님은, 여기서 메인 강사셨는데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남자분이셨고, 동작이 꽤 어려웠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동작의 범위를 좀 더 확장시켜 주시는 느낌이었다. 뒤로 꺾는 게 잘 안 됐었는데, 아예 골반을 활짝 열 수 있도록 좀 더 한계를 푸시해 주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확실히 소수정예의 심화과정을 듣는 기분이었다. 내가 묵던 숙소와의 접근성이 좋지 않고, 수업의 종류가 한정돼 있어서 더 많이 들어보지 못한 게 아쉬운 곳이다.
요가반과 정반대의 매력이 있는 곳이라서, 여유가 있다면 두 곳 모두 경험해 보고 역시 자신에게 맞는 곳을 직접 찾아보는 것이 가장 베스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