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대기업에서 일하는 방법 vs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방법
스타트업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한지도 어느덧 일년 반이 훌쩍 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옛날 사람으로써 느껴지는 차이점을 짧게 적어보려한다. 특히 팀 내 해외 대기업에서 오신 디자이너분도 있는데 나이 차이는 크게 나지 않는데도 다른 스타트업 출신 디자이너분들과 일하는 방식과 선호에 차이가 나는 것을 보아 세대보다는 기업의 형태 또는 사이즈의 차이가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생기고 있다.
옛날 디자이너, 혹은 대기업에서는 제품의 이상적인 청사진을 그리고 그 곳에 이르기 위해 단계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식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제품의 최종 골을 디자이너의 직감 또는 사용자의 니즈로 부터 정의하고 거기서 부터 backword해서 단기적으로 해야할 일, 중장기적으로 해야할 일이 결정되는 것이다.
반면 요즘 디자이너, 혹은 스타트업에서는 (너무 당연하게도) 작게 시작해서 검증하고 실패하더라도 빠르게 실패하는 것을 선호한다. 투자할 수 있는 리소스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너무 크고 위대한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고 단계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일단 실행하고 가능성이 보이면 조금씩 확대해 가는 식으로 일한다. 그래서 심지어 이상적인 미래처럼 실제로 실행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최종 골을 그리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낭비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둘 중 어느것이 맞고 틀린지는 케이스별로 다를 것 같다. 에버레스트에 등반하고자 하는 목표를 세우고 단계별로 성취하며 오를 수도 있고 일단 기초체력을 만들고 동네 뒷산부터 오르면서 내가 가고 싶은게 에버레스트인지를 검증해보고 사실은 산을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결론에 빠르게 이를 수도 있다. 어떤 큰 변곡점이 필요할 때, 가령 비즈니스 모델을 확 바꾸거나 제품의 전반적인 사용성에 큰 변화를 가져올 때는 청사진을 그리는 방식이 맞을 수 있고 대게의 점진적인 변화나 새로운 피쳐를 실험해볼 때는 애자일한 실행과 검증이 더 적절할 수 있다. 전자는 웅장하고 멋지지만 실패했을 때 매몰비용이 너무 크고 실체가 없는 아름다운 헛소리처럼 들릴 수 있고, 후자는 너무 자잘하고 손만 바쁜 것 같지만 구체적, 실체적이라서 리소스가 부족한 스타트업에서는 당연히 선택해야 하는 방법론처럼 보인다.
나는 요즘 후자에 좀더 꽃혀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