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혜진 Jean Seo Oct 21. 2023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모성애

가정 내에서 청소년 시기의 자녀와 부모 사이에 흔한 일상은 ‘사랑과 전쟁’ 드라마의 영역에 속해있다. 너무나 보통의 우리 이웃들의 가정에서의 독보적 1위를 차지할 갈등의 원인제공은 ‘성적 중심 mothering’이다. 하나님을 믿는, 선하고 순종적인 세 자녀의 고마운 성품 때문에 공부를 포함한 mothering이 나름 해 볼만했다. 그렇다고, 나도 나의 아이들을 mothering 할 때는 당황스러웠던 경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언제나, 누구나 그렇듯이, 지나고 보니 괜찮았던 좋은 기억인 경우가 많다. 다만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큰 상처를 서로에게 남기지 않았었기를 바랄 뿐이다). 

 




<사랑은 지독한-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혼란>(울리히 벡&엘리자베트 벡-게른샤임 공저)에서 밝힌 것처럼, 오늘날의 모든 성인 남녀들은 그저 ‘의미 있는 경험’으로서의 자녀 출산을 결정하고, 그 결정에서 오는 ‘치열한’ 전쟁을 어떨 때는 후회로, 어떨 때는 보람으로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가슴이 터질 듯한 출산의 감격과, 태어나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주는 사랑’에 스스로 울컥한다. 그다음 날에는 다시 일상이 되어버린 끊임없는 양육과 관련한 ‘책임감’과 스스로의 양육/교육에 있어서의 ‘불확실성’이라는 불안감에 내동댕이쳐져 버린 엄마는 ‘자아’ 찾기와 '위로'에 목이 마르다. 이게 우리 한국의 엄마들의 현주소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덩달아 드는 생각이 ‘Mother-Blame’(‘엄마 탓 논쟁’으로 번역해 본다)으로부터의 피해의식이다. 최근처럼 ‘좋은 엄마’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거센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다. 온라인상에서의 ‘자녀교육’과 관련한 넘치는 정보들을 보다 보면, 쉽사리 대부분의 엄마 스스로가 '나도 모르는 후회와 죄책감, 비난과 죄의식의 희생양'이 되어버린다. 어느 때 생각해 보면, 마치 세상이 ‘다음 세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문제 엄마’, ‘나쁜 엄마’, ‘상처를 주는 엄마’, ‘방임하는 무책임한 엄마’, 교육 성과집중의 ‘잔인한 교육맘’ 등등 나열하기에도 부족하다. 요즘 새로운 지탄의 대상이 되는 ‘뜨는’ 엄마는 ‘교육정보에 무지한 엄마들’이다. 마치, 무슨 '성토대회'같다. 어디를 둘러봐도, 또다시 생각해 봐도 한국에는 ‘엄마’를 위한 ‘방’은 없다. 

 





그야말로, <사랑은 지독한-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혼란>에서 저자의 시선처럼, ‘자신들의 시계는 그대로 둔 채 여성들의 시계만을 거꾸로 돌리려고 애쓰는’ 세상에서 분투하는 엄마들로 가득한 현실이다. 또 다른 한편에는 나날이 복잡해져 가는 입시제도 속에서, 성적과 비교 속에 ‘좀비’가 되어가는 우리의 아이들의 무거운 책가방이 있다. 어쩌면, 한국의 엄마와 자녀 모두 저자의 표현처럼, ‘너무나도 지독하게 그러나 너무나도 정상적인 혼란’인 사랑을 온몸으로 뿜어내고 받아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사랑을 쏟아부어 본 엄마나, 이런 사랑을 받아 본 자녀나 모두 어떻게 이 혼동의 사랑을 기억할까? 그 사랑의 방향이 길을 잃거나 과녁에서 벗어나서 ‘생채기’만 남은 또 다른 엄마와 아빠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후회와 연민만으로 남겨진 '어린 성인'들에게 '엄마'와의 심리적 ‘거리두기’를 권장하는 사회 속에서 피곤에 지쳐도 ‘기댈 어른이 없는 세상’이 되어가는 느낌에 마음이 아픈 오늘이다.  





 

어떻게 보면, 동시대의 한국의 엄마들(40~60대)은 많이 억울하다. 본인은 정작 이상적인 mothering을 받고 누려보지도 못했다. 반면, 자녀들인 다음 세대들과 이들이 속한 세상은 너무나 당당하게 이상적인 mothering을 요구한다. 조급해지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에 나의 10년 뒤의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전환하려 노력이라도 해보고 싶다. 아이를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내가 혹사 교육에 너무 ‘집착’하고 있나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마음에 너무 많은 다른 자아(자녀, 또는 다른 가족)가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들을 정리해보면 어떨까? 엄마인 나를 위한 ‘생각방’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보자. 다시 돌아오지 않을 엄마 인생의 소중한 성숙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한국사회는 여전히 ‘엄마’를 위한 자리가 없다. 엄마 내면에 ‘엄마’의 자리를 만드는 것이 좋은 mothering의 첫 단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자녀와의 ‘너무나 정상적인 지독한 혼란’의 자녀양육의 시기를 멋지게 극복할 수 있는 엄마가 “어찌 자신의 노년을 멋지게 가꾸지 않겠는가?”라고 믿고 싶다.

 

christina-deravedisian-zvJLaHUvWi4-unsplash


이전 12화 취향의 마더링 -6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