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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브르박 Aug 12. 2020

[토목&하천이야기]하천의 의미 vol.2

강과천, 강과 하

하천 이름의 의미


  하천의 순우리말을 표현을 알고 있는가? 하천의 순우리말은 가람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자 문화권 영향으로 하천 혹은 강이라는 이름에 더 친숙하다. 하천은 한자로 강(江), 하(河), 천(川)으로 표현된다. 이중에서 우리나라 하천의 이름은 대부분 어미에 강(江), 천(川)이라는 글자가 사용되어 명명되어 있다. 한강의 경우는 큰강을 뜻하는 한가람이라는 우리말에서 유래하였으며, 중국문화가 들어오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한자를 나타내는 글자는 세 가지이지만, 우리나라 하천에서 사용되는 한자는 강(江)과 천(川)이 있다. 수자원 설계를 하다 보면서 하천의 이름을 보다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왜 어떤 하천은 강이라는 어미가 붙고, 다른 하천은 천이라는 어미가 붙은 걸까? 강과 천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지식백과에서는 ‘큰 하천을 강(江)이라고 하고, 작은 하천은 천(川)이라고 한다,’고 되어있다. 언뜻 타당한 말 같기도 하지만 정확한 의미에서는 맞다고 하기는 애매하다. 예를 들어 안양천이나 복하천, 굴포천과 같은 국가하천 규모의 하천에 천이라는 어미가 붙은 것은 저런 방식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반면에 지방하천이지만 홍천강, 화강 같은 하천들은 강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다. 


  명확한 사유는 확인 할 수 없고 가정만 있으니, 다른 가설도 한번 살펴보자. <생태하천공학>이라는 책의 서론에는 강과 천을 구분하는 설명이 있다. 강(江)은 치수 사업이 이루어진 하천이고, 천(川)은 치수 사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하천이다. 그에 관한 근거는 한자 풀이로 볼 수 있는데, 천이라는 글자는 상형 문자로 물이 흘러가는 형상을 나타낸다. 


  

  반면에 강이라는 한자는 회의문자로 두 글자 즉, 물과 장인이라는 글자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글자이다. 물 옆에서 장인들이 치수 작업을 하는 것을 표현한다.



  그렇다면 다시 의문이 생긴다. ‘지금은 치수사업이 이루어진 하천이 대부분인데!!’ 라는 의견이 나올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전국 국가 하천의 개수율은 80%가 넘고, 지방하천의 경우 48%정도가 된다. 사실상 대부분의 하천들은 일정부분 치수사업을 실시하여 개수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어 있다. 사실상 모두가 강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맞는 의견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하천의 이름은 근대 및 중세시대 이전부터 붙여진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마도 농경시대가 시작되고, 마을이 형성되고, 국가가 형성되면서 한강, 낙동강, 섬진강 등 농사를 짓기 유리한 평야지대로 흐르는 강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을 것이다. 현재 강이라고 이름 붙은 하천들이 대부분 농경지가 많은 지역을 흐르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아마도 이 사유가 타당하지 않은가 싶다. 


  사람이 모여살고, 사유재산이 형성되며 인명 및 농지와 같은 재산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하천에 치수사업이 이루어지고, 이런 하천들은 강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을 것이다. 반면에 산지에 위치한 하천의 경우 사람들이 모여살지 않았기 때문에 치수사업이 평야지대 보다 적극적으로 실시되지 못하였고, 그런 하천들은 천이라는 이름이 뒤에 붙어서 명칭이 지어져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 아닐까 싶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하천을 지칭하는 한자에는 강(江)과 천(川)외에도 하(河)라는 글자가 있다. 중국에서 황하를 지칭하는 이 하(河)라는 글자는 회의문자로 물 수(水)와 옳을 가(可)가 결합한 모습이다. 한자사전에 따르면 갑골문에서 나온 하의 형상은 水와 모 방(方)글자가 합쳐진 모습이었다. 황하에 가래로 둑을 쌓는 다는 의미로, 후에 方자가 可자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河라는 한자는 우리나라 하천에서 찾아볼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강과 하의 구분이 하천의 탁도에 의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가 파생된 중국에는 대표적인 하천이 두 가지 있다. 중국 문명의 발상지인 황하와 양자강이다. 한자 江과 河의 의미를 살펴보면 河는 언급한 것처럼 황하를 지칭하고, 江은 양자강을 의미한다. 즉, 강은 맑은 하천을 말하며, 하는 황톳물이 흐르는 적색의 하천을 말한다. 황하처럼 흙을 잔뜩 품은 탁한 물이 흐르지 않는 우리나라는 그래서 하로 끝나는 지명이 없고, 강과 천으로 된 지명만이 있는 것이다.


  황하라는 이름의 유래도 재미있는 점이 있다. 아주 먼 옛날 황하에는 맑은 물이 흘렀는데, 목축 및 개간사업으로 인하여 황하 상류에 있는 고원지대가 척박해 지게 되고, 이 지역을 흐르는 황하가 고원의 황토를 운반하기 시작하면서 황하는 현재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최근 중국에서는 황하의 상류 황투 고원 지역의 녹화사업과 댐을 통한 부유사의 이동을 막아 탁한 물을 맑게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그 노력이 성과를 보여 황하가 맑아지면 과연 이름이 강으로 바뀌게 되는걸까? 그나저나 그 많은 토사를 어떻게 관리하려고 하는 걸까.



그 외 글자 관련 한자


  기왕 하천에 관련된 한자를 알아보았으니 물과 관련된 한자어를 조금 더 알아보자. 


  치(治)라는 한자가 있다. 흔히 치세(治世), 치수(治水)라는 표현에 사용하는 글자이다. 물을 다스린다는 이 한자어는 물을 조절하는 것의 의미가 어느 정도인지 알려주는 한자이다. 농경사회에서 치수에 실패한다는 것은 한해 농사를 망치고 백성들이 굶주리게 되는 주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물을 다스리는 것 자체가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본 것이 아닐까한다. 


  치수에 실패하여 입는 수해는 천문학적 피해를 남긴다. 다른 재해들도 큰 피해를 입히고 있지만, 수해로 인한 피해는 규모가 남다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기록적인 피해라고 할 수 있는 2002년 루사는 약 5조 1천억의 피해를 매미 4조2천억의 피해를 남기고 지나갔다. 2020년 여름에 있었던 이상기후에 의하여 길어진 장마로 인하여 전국이 물난리가 나고 있다. 섬진강과 낙동강 제방이 붕괴되고, 여러 지방하천들이 계획홍수윙에 근접할 정도로 수위가 상승하였다. 내수가 배제되지 못하여 도심지가 수영장과 같은 모습을 보였다. 국가하천의 개수율 90%인 이 시대에서도 이런 피해를 입히고 있는데, 옛 시대에는 재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는 피해가 아니었을까 싶다. 




  최근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중국의 샨샤댐의 경우 만일 파괴될 경우 하류에 있는 약 5천만의 인구 25조원의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토목기술자, 특히 하천분야나 방재분야와 관련된 분야에서 시설물 설계에서 안정성에 민감하고 새로운 시도를 도입하는 것을 꺼리는 보수적인 성향을 띄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칫 제방이 붕괴될 경우 발생하는 피해가 예상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농경사회에서 수해를 예방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려주는 부분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수해에 관한 기록이 680여건에 이르며, 다양한 태풍 및 수해기록이 남겨져 있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창세신화인 단군신화에서도 고조선에 우사와 풍사, 운사가 있어 농사를 위한 치수를 중요하게 여긴 부분이 남겨져 있다. 이웃나라 중국의 고대 국가인 하나라에서는 요순시대에 황하의 치수를 담당하던 신하 우에게 순 임금이 왕위를 물려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다른 글자로 법은 法이라고 표현된다. 이 글자는 물 수(水)와 갈 거(去)가 합쳐져 만들어진 글자이다. 즉, 중력에 의하여 물이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말하며, 물이 가는 것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법칙 같은 것이라는 의미이다. 어찌보면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법 그 자체라는 것을 알려주는 한자가 아닐까 한다. 


  유현준 교수가 쓴 <공간이 만든 공간>이라는 책에 대륙의 기후가 인류 문화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부분이 나온다. 강우가 많았던 대륙의 동쪽 즉, 우리가 사는 극동아시아는 벼농사에 적합하여 그에 맞는 공동체의 형성, 품앗이 같은 협업 문화, 강우로 인하여 단단하지 못한 땅이 많기 때문에 무거운 재료 보다는 나무 등을 이용한 건축 기술이 발달했다. 반면에 강우가 적은 대륙의 동쪽, 즉 서구의 유럽 문화권은 밀농사가 발달하였다. 밀농사는 벼농사보다 품이 적게 들기 때문에 농사를 각자 짓게 되고, 개인주의적 성향을 띄게 되고, 강우가 적기 때문에 아시아권보다 땅이 단단하여 석재를 이용한 건축기술이 발달하게 되었다고 추정한다. 


  우리는 은연중에 인간이 자연 생태계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라는 우생학적인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 우리는 국토를 뒤집고, 자연을 가공하고, 생태계를 변화시킨다. 하지만 우리는 자유 의지라고 생각하는 부분에서도 사실상 자연의 영향을 받으며 서서히 길들여져 왔을지도 모른다. 쌀을 먹고 싶어서 벼농사를 지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저 땅이 벼를 키우기 쉽기 떄문에 주식이 쌀이 되었을 뿐이다. 우리는 단아하고 풍경을 품는 한옥을 좋아하기 때문에 단층에 처마가 있는 한옥을 지으며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비가 많이 내려 땅이 무르고, 많은 강우를 빠르게 배수시키기 위하여 단층 건물에 처마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법이라는 글자에 나와 있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물이 흘러가는 대로 우리 역시 그 자연의 하나일 뿐이라는 겸손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행동과 의사 결정을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하는 능력 즉, 자유의지에 의하여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우리의 문화가 자연에 영향을 받아 형성되듯이 개개인의 성향이나 성격 등은 각자의 부모, 살고 있는 곳의 문화, 자라면서 겪게 되는 경험들 이 모든 것들이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자유의지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행동과 결정은 어느 정도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결국 인간이나 인간이 만든 사회, 문화는 자연에 의하여 영향을 받아 파생된다. 다른 지구상의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 역시 지구라는 거대한 행성에 영향을 받는 피조물이라는 사실. 그 사실을 잊지 말고 겸손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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