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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충만 Apr 08. 2020

스토리스튜디오의 운영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만 매니저 레터. 1] 운영자 만 매니저를 소개합니다

스토리스튜디오 혜화랩(Story Studio)은 이야기를 읽고 보고 듣고 만드는 일이 궁금한 12-19세 청소년들을 위한 열린 작업실입니다. 누구든지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발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기획하고 만들어 세상에 알릴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의 자세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이번 글에서는 C Program이 운영하는 스토리스튜디오의 만 매니저가 운영자의 역할과 이를 터득해 나가는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앞으로의 소식도 기대해주세요.




안녕하세요 :D


스토리스튜디오의 운영자 제충만, (a.k.a 만 매니저)입니다. 이 글을 시작으로 스토리스튜디오의 소식과 만남, 아이들의 모습을 담담히 풀어내려고 합니다. 그럼 첫머리에 제 소개를 해야겠죠. 저는 C Program에 입사한 지 2달 밖에 안 된 초보 운영자입니다. 2달 동안 제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생각은 하나, '운영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였습니다. 


안녕 애들아! 스토리스튜디오 운영자야 커피 한 잔 할래?!


처음 운영자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커피 전문점 사장님이었습니다. 포실포실 좋은 향이 나는 곳에서 커피프린스처럼 앞치마를 둘러 입고 서 있는 모습? 웃기죠? 지금 돌아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상상입니다. 일단 운영자가 앞치마를 두르지도 않을뿐더러 스토리스튜디오에서는 커피를 팔지도 않으니 완전 꽝인 상상입니다. 역할이 다르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죠.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한 이유는 그만큼 제게 운영자의 모습이 머릿속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운영자라고 하면 으레 관리자가 떠오르고 저는 공간을 관리해본 경험도 어떤 공간을 운영자라는 관점에서 바라본 적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운영자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알아봐야겠죠?!


제 옆에는 스토리스튜디오를 1년 넘게 구상해 온 정민 매니저가 있습니다. 민 매니저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민 매니저는 스토리스튜디오의 운영자가 일반적인 공간 운영자와는 다르다고 합니다.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10대 아이들이 맘껏 창작에 몰입하도록 만든 작업실이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어른들은 출입이 불가능한 10대 전용공간인데 운영자는 유일한 어른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존중하고 환대하며 함께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했죠. 그러며 제가 이전에 일하던 모습,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을 보았기 때문에 잘할 거라 생각한다며 응원의 한 마디를 덧붙이네요.



스토리스튜디오를 소개하는 민 매니저의 첫 번째 글에서 나온 운영자의 역할에 대한 고민



민 매니저의 설명을 듣고 나니 자신이 좀 붙었습니다. 이전 직장에서 아동권리 옹호 활동가로 6년 동안 일 했고, 주말마다 아이들을 가르친지도 15년이 되어가니 이만하면 아이들을 존중하고 대화할 줄 안다고 할 수 있겠죠? <놀이터를 지켜라> 캠페인을 진행하며 놀이터 바닥에서 만난 아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요. 물론 스토리스튜디오는 12-19세로 연령이 높아지지만 걱정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애들을 잘 아니 운영자도 잘할 수 있겠다는 자만심이 깃들어서 일까요? 미팅을 하는 도중 저도 모르게 '아이들은 대체로 그렇지 않나요?', '제가 아이들을 좀 아는데요'라는 말이 툭툭 튀어나왔습니다. 네 맞습니다. 위험한 신호입니다. 


나 때는 말이야 왕년에 이 구역 놀이터 삼촌이었다구! 아이들과 만나 노는 것이 일상이었던 날들. 만 매니저는 오른쪽 큰 사람



꼰대 어른, 꼰대 운영자


공간 오픈을 위해 내달리느라 경고 소리를 듣지 못하던 어느 날, 스토리스튜디오에 대해 의견을 듣기 위해 한 중학교 아이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아이의 응답이 제 마음을 때렸습니다.


"운영자가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꼰대 같은 사람은 싫어요."


"꼰대 같은 사람? 그렇지 꼰대는 누구나 다 싫어하지. 그럼 꼰대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자기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요. 자기주장만 맞다고 하고 '라떼는 말이야' 라며 말을 끝까지 안 들어주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을 싫어해요."


드디어 경고 소리가 귀에 울렸습니다. 자기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제가 '아이들을 좀 알지' 라며 으스댔던 몇 가지 말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후로도 여러 차례 아이들을 인터뷰했는데 어김없이 아이들은 꼰대 운영자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어른이든 상관은 없는데 꼰대나 함부로 가르치려고 드는 것은 좀 아닌 거 같아요."


"자기가 다 알고 있어서 자기 생각에 맞지 않다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고치려고 드는 사람들이에요. 고정관념에 얽매여서 여자는 어때야 하고 남자는 어때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도요."


내가 이미 어린 시절을 거쳐 왔기 때문에 아이들을 잘 안다는 착각이 어른들이 흔히 하는 착각입니다. 잘 알기 때문에 미처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가르치려 드는 태도를 보이곤 하죠. 저도 '내가 너희들을 좀 알지' 라며 꼰대 운영자가 될 뻔했습니다. 



BBC에서도 다룬 전 세계적인 단어 '꼰대' 우리 모두 조심!



부모님도 선생님도 아닌 제3의 어른?


이번에는 아이들과 창의적인 활동을 한 경험이 있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인터뷰해보았습니다. 이들과의 만남에서 스토리스튜디오 운영자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두 가지 힌트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아이들을 궁금해하는 질문하는 운영자입니다. 

"태도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을 궁금해하는 태도요. 아이들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아이들이 궁금하고 알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운영자에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전) 크리킨디센터 디단 운영자 뭉)
“칭찬을 많이 하기보다 질문을 많이 해요. 질문은 곧 관심이고 해도 된다는 확신으로 이어지거든요. ‘나는 네가 궁금해’라는 운영자의 반응은 아이들에게 ‘나는 이만큼만 해도 되는구나’로 이어질 거예요”
(영상in 김나리 대표)
“진지하게 호기심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질문하면서 많이 들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브레이너리 메이커스 정종욱 대표)


이들이 말하는 아이들을 궁금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문득 예전에 읽은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서로 다른 심장들. 똑같은 교복을 입고 있어도 그 안에는 수백의 다른 심장이 뛰고 있습니다."

야누스 코르착(1878-1942)


폴란드의 의사이자 교육학자이며 아동 권리가 지금의 모습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야누스 코르착은 항상 아이들을 궁금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린이 병원 의사였을 때 그는 아이들의 열, 기침, 구토를 관찰했습니다. 나중에 고아원 원장이 되어서는 20권이 넘는 책을 쓰며 아이들의 일상을 아이들의 미소, 눈물, 홍조를 통해 읽어낸 사람이었죠. 


야누스 코르착은 '내가 아이들을 좀 알지'라고도 할 수 있었을텐데 어떻게 끊임없이 아이들을 궁금해할 수 있었을까요? 코르착이 아이들의 개별성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수백의 다른 심장이 뛰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한 명 한 명 각기 다른 취미와 관심사, 성향을 가진 아이들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의 아이들을 향한 궁금함은 계속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아이들 각자가 자기 목소리를 내어 직접 쓴 이야기 창작물로 만든 잡지 <작은 비평(Mały Przegląd)>을 발행하는데 까지 이어집니다. 


2020년,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도 모두 각자 다른 심장을 가진 창작자들 아닐까요?


만 매니저도 교복 입은 애들이 다 그렇지라는 고정된 생각을 내려놓고 스토리스튜디오에 오는 아이들을 각기 다른 심장을 가진 온전한 창작자로 바라보려 합니다. 아이들 안에 우주처럼 담긴 스토리를 끝까지 궁금해하는 운영자가 되고 싶습니다.




둘째로 판을 깔아주는 운영자입니다.

“완성해서 내보이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이 중요해요. 끝까지 해봤다를 느끼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만든 창작물의 파급력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닷페이스 조소담 대표) 
“판을 만들어주고 아이들의 작업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게 에너지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언유주얼 매거진 이선용 대표)
“아이들이 실패해도 계속 시도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판을 만들어주는 게 운영자의 역할이에요. 놀고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주체성이 점점 생길 수 있는 판”
((전) 크리킨디센터 디단 운영자 뭉)


고깃집도 아닌데 판을 깐다는 게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번에는 이탈리아로 가봅시다.


"성인들이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은 조용히 함께 있어주고, 아이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자신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내가 한 일이라고는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잠재력을 끄집어내도록 조금 도와준 것뿐 이예요." 

마리아 몬테소리(1870~1952)


의사이자 교육학자였던 몬테소리는 아이들 안에는 스스로 배워 나갈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강요나 지시가 아닌 스스로 탐색하고 선택한 작업을 통해 느끼는 성취감을 강조합니다. 어른들은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자기 활동에 집중하도록 환경을 제공해주고, 주로 관찰하며 필요할 때 개입합니다. '조용히 함께 있어주고', '조금 도와준 것뿐'이라는 말에 이러한 몬테소리의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아이들이 마음 속 스토리를 꺼내 창작에 집중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운영자의 자세는 이러한 생각과 닿아있지 않을까요? 


아이들이 가진 배움의 힘과 창작의 욕구를 믿고 세밀하게 환경을 제공하고 적절한 자극을 배치해 끝까지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 말입니다. 예를 들어, 함께 덕질하며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또래 친구를 연결해준다든가 나보다 10년 앞선 밀레니얼 창작자들과 협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아이들의 잠재력을 끄집어내는데 작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만 매니저도 겉으로는 '조용히' 함께 있지만 수면 아래서는 아이들이 창작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부단히 '조금' 도와주려고 합니다.  



스토리스튜디오의 운영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창작자로서 아이들을 존중하고 궁금해하며 질문하는 운영자, 아이들이 끝까지 창작을 이어갈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운영자는 스토리스튜디오에서 창작의 경험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중요한 장치입니다. 비록 꼰대 운영자로 흑화할 뻔한 순간도 있었지만, 만 매니저도 멋진 운영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마음이 이미 설레고 있습니다.


난..ㄱr 끔 눈물을 흘린ㄷㅏ.. 만 매니저가 싸이에 남긴 흑역사 글이 973개나 되다니... 


10대 시절 제 안에 솟아나는 온갖 이야기와 덕질의 에너지를 쏟아낼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일기장과 싸이월드가 유일한 출구였죠. 그때 스토리스튜디오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도 스토리가 흘러넘치는 아이들이 우리 주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아이들이 찐한 창작의 경험을 해볼 수 있는 스토리스튜디오가 되도록 운영자로서 잘 준비해보겠습니다(요건 다음 레터에서). 


그럼 다음에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만 매니저 드림. 





스토리스튜디오는, 4월에 만나요.


매일매일 설렘 반, 두려움 반의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에 관심 많은 12~19세를 위한 공간이지만, 4월 13일부터 4월 한 달은 공간에 관심 많은 어른들을 위해 사전 예약 기반으로 공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동시에, 온라인으로 스토리스튜디오를 만나고 스토리스튜디오에서 하게 될 작업을 가볍게 조금이라도 경험해 볼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스토리스튜디오의 소식은 SEE SAW 뉴스레터와 브런치C Program 페이스북을 통해 가장 먼저 소개합니다.


지금부터 스토리스튜디오가 만들어갈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세요.


C Program이 어떤 고민으로 스토리스튜디오 프로젝트를 시작했는지, 어떤 파트너들과 함께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협업하며 경험을 빚어가고 있는지를 소개하는 첫 번째 글, 보러가기


이메일 문의: storystudio@c-program.org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hello_storystudio/


글: C Program Play Fund 제충만 매니저



플레이펀드 3인방, 왼쪽부터 제충만 '만'매니저, 신혜미 '미'매니저, 김정민 '민'매니저 잘 부탁드립니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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