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얼마 전, 삼성전자의 신제품 발표 행사인 갤럭시 언팩 2019가 있었습니다. 10주년이 된 갤럭시 브랜드를 기념하고, 앞으로의 10년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뜻깊은 자리였는데요, 지난 2013년부터 매년 언팩 행사를 꼬박꼬박 챙겨봤지만, 이번 언팩 행사에서는 갤럭시노트7 사태 이후로 느껴지지 않던 자신감이 강렬하게 느껴졌습니다. 고동진 사장이 "스마트폰 시장이 한계에 달했고, 혁신이 끝났다고 주장하는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은 카타르시스였습니다. 정말 칼을 갈았구나. 장기적인 플랜을 가지고 미래를 펼쳐나갈 준비가 되었다는 이야기겠구나. 수많은 정치적인 이슈들과 엮여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기업이지만, 그들이 내놓는 제품의 품질과 방향성을 좋아했기에 굉장히 반가운 발언이었습니다.
그러나 반가움과 동시에 한 편으로는 걱정도 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쓸 데 없는 게 대기업 걱정이라지만, 제가 이야기하는 걱정이 그런 차원의 걱정이 아니라는 건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직을 운영함에 있어서, 언제나 최고의 시간이 다가올 때를 경계해야 하는 법입니다. 오랜 Galaxy의 Fan으로써, 이번 글을 통해 지난 10년을 돌아보면서 앞으로 그들이 나아갔으면 하는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삼성전자는 이미 갤럭시 폴드와 ONE UI를 통해서 기존의 담론을 뛰어넘는 움직임을 위한 기초 동작을 마쳤습니다. 오랫동안 정체되어 오던 스마트폰의 폼팩터와 UX에 충격을 주었죠. 폴더블은 그동안 바형 스마트폰으로 고착되어 있던 시장이 한 단계 미래로 앞서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고, ONE UI는 미디어 소비 중심으로 이동하여, 점점 커지는 스마트폰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훌륭한 방법론적인 접근이었습니다.
실제로 뒤를 돌아보면 그동안 삼성전자는 IT업계에 '최초' 또는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수많은 하드웨어와 기능들을 소개해 왔습니다. 최초의 CDMA 폰, 최초의 MP3폰, 최초의 와치폰, Sound Sharing, 스마트 스테이, 스크롤 캡처, S펜 등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를 도입한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휴대전화의 역사를 논하자면 삼성전자를 빼고 불가능할 정도이지요. 그러나 이 모든 성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혁신기업을 이야기할 때, 삼성전자를 잘 거론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패스트 팔로워로 회자되지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휴대폰 측면에서는 후발주자여도 한참 후발주자인 애플을 혁신기업으로 이야기하기 마련입니다. 나름 억울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는 삼성전자가 그동안 수많은 충격적인 턴어라운드를 진행했지만 거기서 움직임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혁신적인 기능을 소개했으면 그걸 쭉 끌고 가야 하는데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들을 살펴보면 혁신적인 인터페이스나 기능을 밀고 가는 끈기가 없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야 있겠지만, 지금까지 서비스 종료했거나 뒷전으로 밀려난 수많은 소프트웨어들을 살펴봅시다. 삼성북스, 삼성 와치온, 챗온, 삼성 포커스, 삼성 사이드싱크 (최신버전의 스마트폰 미지원, Flow로 이관되었으나 편의기능 대폭삭제), 삼성 PC메시지 (P-OS 이후 스마트폰 미지원), 삼성 사운드캠프, 삼성뮤직의 엣지라이팅 옵션, S노트 (삼성노트로 이관되었지만 기능 대폭 경량화, APP 지원 없음), 동영상 프로모드 촬영, 기타 등등.
삼성전자가 개발자와의 협력을 이야기했던 수많은 소프트웨어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다 OS. 삼성 OCEAN에서 앱 제작과 관련한 가이드도 배포하고, 강의도 하고,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앱 개발 대회도 개최하며 열심히 홍보했지만 결론적으로 망했죠. Note Edge에서 소개된 Edge Screen App들. SDK를 공개하며 외부 개발자들에게 Edge App 개발을 독려했지만, 결국 한 세대도 채 가지 못해 실용성에서 심미성으로 엣지스크린의 콘셉트 변화가 이루어지면서 칵테일바 서비스들은 뒷전이 됐습니다. 갤럭시노트7에서 차세대 인증방식으로 대두되며 금융사들이 인증시스템까지 구축해가며 밀어주었던 홍채인식은 갤럭시노트9를 끝으로 사라졌습니다. 리모트-컨트롤 S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서드파티 서비스의 지원이 없어도 내부 기능 지원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존재입니다만, 외부 앱들이 S펜 SDK를 적용했을 때 편리한 작업을 도와줄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그러나 런칭파트너로 해당 SDK 적용한 사례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리모트-S 펜 지원하는 SDK를 적용하여 기능을 최적화한 사례가 몇이나 됩니까? 갤럭시가 전 세계적으로 보면 많이 판매되고 있는데, 왜 외부 개발사들이 적극적으로 리소스를 대응하지 않는 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 애플리케이션의 개발자분께서는, 차기작에서 지속될지 빠질지 모르는 기능을 위해 리소스를 투입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과연 삼성전자의 하드웨어 개발전략과 소프트웨어 운영전략은 소비자들에게, 그리고 삼성전자의 전략적 파트너들에게 믿음을 주고 있는 것일까요?
서비스 종료하는 게 하도 많다 보니까, 삼성이 뭔가 새로운 서비스를 런칭하면 "이건 언제 서비스 종료함?"이라는 비아냥도 나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빅스비 홈에서의 링크드인 카드 지원이 종료된다는 공지가 떴네요. 이미 얼마 전에 삼성전자가 지분을 투자했다고 알려진 싸이월드의 QUE 서비스 카드 역시 종료되었죠. 외부 개발사에서 빅스비 지원을 포기하는 것을 삼성전자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어? 얘네 빅스비 힘준다더니 몇 년 못 가서 또 뒤로 한 발 빼는 건가? 믿고 싶지 않지만 충분히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해합니다. 안드로이드는 삼성 갤럭시의 전유물이 아니고, 구글이 주도하는 질서의 개방형 OS인 특성상 삼성전자의 의견이 100% 반영될 수는 없지요.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있던 프로세스를 구동하기 위한 정책을 어느 날 갑자기 구글에서 제한시켜 버린다면,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아무리 좋은 서비스라 할지언정 서비스를 지속하기 어려워지는 측면이 있다는 겁니다. 삼성전자도 굉장히 큰 조직이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개발그룹이 다르고, 파트너사와 정책 협의도 해야 하고, 개발 중 이슈가 생겨서 개편이 늦어질 수도 있습니다. 일이라는 게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만은 않기 때문에 그런 아쉬움이 발생하고, 내부에서도 충분히 목소리가 나올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제약사항들에 대해 이해하고 익숙해지게 되다 보면 나중에 중요도가 높은 이슈가 발생했을 때에도 안일해지게 됩니다. 몇 개월 전이었나요, 쏘카의 이재웅 대표가 혁신성장본부장 자리에서 내려오며 페이스북에 공유했던 사진이 한 장 있습니다.
당신의 제안은 혁신적이지만, 그것을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저는 현재의 실패하는 방식에 익숙해요.
뭔가를 시도해보고, 사용자들이 잘 사용하지 않고, 서비스를 종료하고. 실패하는 프로세스의 한 과정입니다. 이런 프로세스를 탈피해야만 성공적인 프로세스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기존 실패하는 프로세스를 반복하던 중 어느 한 가지가 대박을 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단순 운이었거나 어딘가에서 살짝 비틀어진 프로세스의 결과물일 뿐이지, 신념과 과정이 옳아서 성공한 것은 아닐 겁니다. 새로운 시도에는 언제나 리스크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기존의 담론을 따르지 않는 절차는 언제나 위험부담이 높아 보이기 마련이고,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임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선뜻 실행에 옮기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조직의 규모가 커질수록 턴어라운드 하는데 시간이 더 필요하게 되고, 턴어라운드를 위해 들어가야 하는 리소스도 어마 무시하게 늘어나기에 조직의 방향을 누구 한 명이 쉽게 바꿀 수 없습니다. 이런 턴어라운드는 항상 산업계에 영향을 미쳐왔고, 제2의 물결 제3의 물결을 만들어 내며 지금의 업계를 이루어나가는 원동력을 제공했습니다.
새로운 프로세스를 통해 변화의 불씨를 만들었으면 그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아껴 주어야 합니다. 미래 디자인 중 하나로 폴더블 폰을 생각한 그들은 폴더블 디스플레이를 만들어 내기 위해 수 년간 연구개발에 매달렸고, 2013년 폴더블 디스플레이 'YOUM'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은 폴더블 스마트폰을 지속적으로 연구했고, 접었다 펴도 문제가 없는 디스플레이를 만들기 위해 수년간 계속해서 달려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개발 산물들로 중장기 과제였을 것으로 보이는 엣지디스플레이를 적용한 제품들이 출시되었고, 이제는 장기과제였던 갤럭시 폴드까지 시장에 출격했습니다. 기업이 이렇게 몇십 년씩 장기과제를 정하고 추진해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삼성전자 정도 되는 규모의 회사니까 가능한 일이겠지요.
그래서, 끈질긴 디자인 문화와 치열하게 연구개발하는 끈기를 스마트폰 소프트웨어에서도 보고 싶다는 겁니다. 한번 개발한 결과물을 간 보다가 접어버리지 말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용기와 패기. 미래 신성장동력을 지원해주며 단기간의 성과에 얽매이지 않고 가능성을 보는, 그러한 문화가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에도 녹아내렸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사용자가 적다고 기능을 삭제하고 '컨셉입니다'라고 말할 게 아니라, 왜 이 사용자들은 남들이 잘 안 쓰는 기능에 주목을 할까, 이들은 이걸 왜 쓰고 있을까 그 목소리에 주목해 달라는 겁니다. 그러한 사용자들의 목소리로부터 영감을 받고, 더 나은 기능을 소개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서비스 flow의 이동을 유도하는 과정, 진정 Fan과 함께하는 발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도 디자인경영센터가 삼성전자 내부에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한 노력들이 지금까지 우리를 미래로 이끌어 왔고, 앞으로도 미래로 이끌어 나가겠지요.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볼게요. 2010년 겨울, 제 손에 첫 스마트폰이 생겼습니다. 당시 중학교 2학년 진학을 앞두고 있던 제게는 정말 큰 선물이었고, 뛸 듯이 기뻤죠. 한창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위해 공부해야 할 때, 많은 부모님들이 당시 세상에 막 등장한 카테고리의 제품을 두고 "스마트폰을 애한테 사 주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고 이야기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세상 트렌드는 따라갈 줄 알아야 한다"면서 제게 아이폰 4를 선물해 주셨죠. 부모님의 결단 덕분이었을까요, 스마트폰을 통해 저는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고, 더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고, 다른 친구들보다 빨리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시장에 주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은 단순한 휴대폰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스마트폰을 통해서 수많은 기회를 보았습니다. 시작은 아이폰이었지만, 제 일상에서 불가능할 것 만 같았던 일들을 현실로 이루어낼 수 있도록 해준 제품은 다름 아닌 갤럭시 노트였습니다. 뭔가 들고 다니는 것을 굉장히 싫어해, 절대 메모하는 습관을 들일 수 없을 것 만 같았던 어린아이는 어딜 가나 S 펜을 통해 사소한 디테일들까지 메모할 줄 아는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노트 필기를 어떻게 이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어린아이는 삼성 노트의 다양한 펜과 색상으로 강의를 메모하고 하이라이팅 하는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이동할 때 펜과 노트를 가지고 다니지 않던 아이 역시 갤럭시노트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대학생으로 성장했죠. 하나부터 열까지 삶의 습관을 바꿔준 갤럭시노트 브랜드는 제게 정말 특별한 브랜드입니다. 그래서 특별한 브랜드가 더욱 특별해질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래서 저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실 삼성전자의 임원진, 실무진에게 이 글이 꼭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한 어린아이의 바람으로부터, 오랜 Galaxy Fan으로써의 바람이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