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는 다른 부서에 근무하는 직원이었다. 마치 부모님들끼리 아들딸을 맞선 시키듯 각 부서 팀장님들끼리 추진했다. “우리 팀에 아직 미혼인 아가씨가 있는데~” 로 시작했을 소개팅 프로젝트(?)는 당사자들의 원만한 합의로 빠르게 성사되었다.
원래 다른 사람의 연애사가 가장 재미있는 법. 소개팅 오케이 사인을 보내자 팀장님이 나보다 더 신나 보였던 건 기분 탓은 아니었을 것이다.
소개팅 당일인 금요일 오후, 갑작스러운 업무 지시가 떨어졌다. 퇴근까지 2시간도 채 남지 않아 마음이 급해졌다. 퇴근 후 회사에서 만나 함께 이동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화장실 갈 틈도 없이 일했으나 결국 내가 근무하는 별관 건물 앞에 도착한 상대방을 20분가량 기다리게 만들었다. 연신 사과하는 내게 그는 빙긋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그와는 말이 잘 통했다. 같은 회사에 다니니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이 척하면 딱이었다. 초면의 어색함 속에서도 대화는 잔잔히 흘러갔다. 피자 한 조각이 남아 서로에게 양보하다가 결국 덩그러니 남겨둔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가 계산할게요.”
그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아니라며 지갑을 꺼내기에 다시 한번 막아섰다.
“늦은 것도 죄송하고 해서요.”
“그래도...”
“그럼 커피는 00 씨가 사주세요.”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카페는 시끌벅적했다. 그나마 자리가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작은 테이블의 2인용 자리에 앉았다. 장소를 옮기니 새삼 어색해져서 아메리카노만 연신 빨대로 빨아들이고 있을 때였다.
“이소 씨는 요즘 여자들이랑 다른 것 같아요.”
“네?”
그는 웃었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멀뚱히 그를 바라보았다.
“다른 여자들은 남자가 당연히 밥값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해 가만히 듣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소개팅에서 남자가 밥값을 내고 여자가 그 후 커피 값을 내곤 한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여자나 남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소개팅을 하는 방식’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일 뿐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기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요즘 여자들하고 다르네요, 정말.”
그는 나에게 나름의 칭찬을 하고 있는 듯했다. 문제는 내가 전혀 칭찬으로 들리지가 않는 데에 있었다. 나를 칭찬하면서 다른 사람을 비교 대상으로 두는 건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그것이 비록 특정되지 않은 인물일지라도.
비교를 통한 칭찬은 반드시 비난과 폄하가 포함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또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게 되기 때문이다. 밥을 산 나를 칭찬하기 위해 다른 여성들은 밥을 사지 않는 ‘요즘 여자’로 폄하되었다.
일상에서 오고 가는 대화에서도 이런 대화는 흔하게 찾을 수 있다. “쟤와는 다르게 이렇게 행동하는 너는 참 착하다.”, “그 친구보다 네가 훨씬 잘생겼다.”, “같이 있으면 기분 나쁜 사람이 있는데 너와의 시간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모두 묘하게 찝찝함을 남긴다.
또한 비교를 통한 칭찬은 평가를 수반하게 되기 때문에 더욱 불편하다. 듣는 이로 하여금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여 자신이 만든 평가 폴더 속에 차곡차곡 집어넣어지는 느낌을 들게 한다. “다른 남자들과 다르게 근면하고 성실하다.”는 말속에는 다른 남자들은 불성실하고 나태하며 너는 성실하다는 평가를 담고 있다.
나라면 어떻게 말했을까? “이소 씨가 쏜 밥이라 더 맛있었던 것 같아요.” 칭찬의 대상과 그로 인한 나의 감정을 솔직히 나타내면 그 정도로 훌륭한 칭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자릿수의 어린 나이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모든 일의 결과가 숫자와 줄 세우기로 평가되어온 나 역시 은연중에 수많은 비교와 평가를 통한 말하기를 해왔을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모르는 사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거나 불쾌함을 주었을 수도 있다. 칭찬이라고 모두 상대를 기분 좋게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머릿속에 몇 번이고 입력했다.
다음에도 만나자는 그의 메시지에 죄송하다는 답변을 보냈다. 실망할 팀장님의 표정이 눈에 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