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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바람 Jan 17. 2024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

나의 버킷리스트

" 너 정도면 이제 외제차로 바꿔도 되지 않아?"


볼보 전기차를 타는 정희 언니가 내게 말했다. 언니 남편도 볼보사의 좀 더 큰 차를 탄다.


" 나도 남편도 그다지 차에 욕심은 없어서 말이지. 이것도 충분해. 아직 멀쩡하기도 하고... 신랑차는 이미 10년이나 돼서 바꿀 만도 한데 자긴 멈출 때까지 타겠대. "

   

  난 차에 대한 욕심은 없다. 나에게 자동차는 네 바퀴로 굴러가는 이동수단일 뿐이다. 지금 타는 차도 자동차 회사에 다니시는 이모부가 2년 정도 타시고 중고로 파신다는 것을 내가 냉큼 샀다. 동생은 작년에 삼각별 엠블럼이 있는 차로 바꿨는데 내가 외제차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외제차 사고 싶은 거냐고 물었다. 난 그냥 도로에 외제차들이 차고 넘치는 게 신기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동생차나 지인들 차를 타봐도 대체 그 차가 왜 비싼 건지 이해도 안 될 뿐이었으니까. 정작 그 차의 생산국인 독일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연봉이 더 높아도 아주 저렴한 차를 탄다고 들었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고 했던가. 내가 10여 년 전에 쓴 버킷 리스트를 얼마 전에 보고 깜짝 놀랐다. 내 나이 서른 즈음이었을 것이다. 폭스바겐 구입, 내 명의로 된 건물 갖기, 내 이름의 책 발간, 스킨스쿠버 자격증 따기, 세계 여행, 사랑하는 사람 만나기, 사진전 열기. 이게 내가 적어둔 버킷리스트이다.

 

  내 명의로 된 건물은 아직 없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진 것을 모두 팔면 내 명의로 건물 한 채는 살 수 있으니 그것은 이루었다고 본다. 물론 여기서 건물은 생각하기에 따라 작은 규모에서 큰 빌딩까지 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루었다고 우겨본다.


  그 당시 나는 폭스바겐사의 딱정벌레를 닮은 뉴비틀이 너무 귀엽고 이뻐 보여 갖고 싶었다. 폭스바겐사가 대형 사고를 치며 인지도가 현저히 떨어져서 이젠 그 차를 사지도 않겠지만 비슷한 급의 차 정도는 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살 수 있게 되니 갖고 싶지도 않았다. 뭐든 가질 수 없는 것이 탐나는 법인가 보다. 어쨌든 사진 않았지만 살 수 있게 되었으니 목표는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작년 1월 나는 스킨스쿠버 자격 연수를 받았다. 내가 지인을 꼬셔서 같이 받았는데 이게 내 버킷리스트에 있는 줄도 몰랐다. 2022학년도 유난히도 지쳤던 그 해 겨울방학을 앞두고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을뿐이었다. 스킨스쿠버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자격증 보유자인 동희와의 호주 영어연수 때였다. 스킨스쿠버 마니아인 동희를 따라 케언즈에 갔고 그곳에서 바닷속 구경을 했다. 바닷속 세상을 본 후로 내게 아쿠아리움은 시시한 것이 되어버렸다. 자격증을 2개나 가지고 있던 동희가 부러웠었고 그래서 그걸 버킷리스트에 적었던 기억이 난다.


  작년에 받았던 스킨스쿠버 연수는 5일간이었다. 난 호주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서 봤던 산호와 물고기들을 떠올리며 더 깊은 바닷속 생물들을 만날 생각에 설레었다. 연수 3일째까지는 겨울이라 좀 추운 것 빼고는 좋았다. 잠수통을 메고 물속 깊이 들어가는 훈련을 했다. 처음엔 재미있고 신기했는데 선생님 없이 혼자 들어가라고 하시니 너무 겁이 났다. 겁먹은 난 물속에서 호흡기를 놓치고 말았다. 배운 대로 호흡기를 찾아 입에 물었지만 이미 물은 몽땅 먹었고 호흡기를 입에 물고도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어서 냅다 수면 위로 올라오고 말았다. 아, 이러다가 사람이 죽기도 하겠구나. 그날 집에 돌아와 검색창에 '스킨스쿠버 사망'이라는 단어를 입력한 순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어찌나 사망 기사가 많은지 그냥 이 자격증은 포기해야겠다 싶었다. 분명 그들도 즐겁고자 한 취미 생활이었을진대 죽었다니... 그냥 바닷속 안 보고 말지. 깊은 물에 대한 공포가 생겨버렸다. 지금도 그 순간의 느낌은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날 살아서 참 다행이지. 나는 그렇게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포기했다. 나중에서야 이게 나의 버킷리스트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랍고 아쉽기도 했지만 어쩌랴. 난 최선을 다했다.


  내 이름의 책 발간과 사진전은 아직 진행 중이라고 해야 할까. 사진전은 8년 전쯤에 단체전만 해보았다. 이것도 이뤘다고 해야 하나? 그러기엔 좀 부족하지 싶다. 사진에 대한 욕심 때문이겠지. 사진 스승님께서 파리에서 단체전 하자고 12월 초에 말씀하셨었는데 몇 년 안엔 그 꿈이 실현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최근에 그 말씀을 다시 하신걸 보면 말이다. 아직도 사진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으니 언젠가는 이뤄지리라 믿는다. 내 이름의 책 발간도 마찬가지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글쓰기 수업을 듣고 글쓰기 모임을 하고 있는 지금만 봐도 나는 내 꿈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쌓이다 보면 이 또한 언젠가는 이뤄지지 않을까? 그냥 지금은 굳이 책이 아니더라도 내가 꺼내고 싶은 이야기들을 쓰는 것 자체가 좋다. 가슴이 뚫리는 기분이랄까.


  사랑하는 사람은 만...... 났는가? 가지 못한 길에는 후회가 남는다지만 이건 미련이 많이 남는 일이다. 아직 내 인생은 반절은 남았으니 남은 반생을 기대해 봐야겠다. 물론 지금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될 수도 있고 아니면 그게 다른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 흠, 남편 덕에 우리 아들을 만났으니 만났다고 해야 되나?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버킷 리스트를 쓸 당시에 내가 자식을 염두에 두고 쓴 건 아니었단 말이다. 이것만큼은 슬프게도 생각대로 살아지지 않은 것 같다.


  세계 여행은 언제쯤 할 수 있을까?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빠른 은퇴가 우선이다. 아니, 내가 원하는 것은 일을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20년 차에 의원면직을 하고 그 이후엔 프리한 삶을 살고 싶다. 그게 무엇이 되었던지 말이다. 시간과 돈이 모두 넉넉해야만 가능한 것, 인도에서 만났던 아저씨처럼 길 위의 여행자로 나의 노후를 즐기고 싶다. 그분은 지금 이 순간도 여행자로서 삶을 즐기고 계신다. 가끔 보내주시는 사진들을 보면 어찌나 부러운지... 나도 그렇게 살고프다. 가만 생각해 보니 이건 시간과 돈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건강해야만 가능한 것,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겠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버킷리스트에 추가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삶. 그렇게 살면 보람이 있을 것 같다. 또, 달동네 같은 곳에 작은 도서관 하나 열고 싶다. 사람을 깨우고 가난을 바꿀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보다 '책'이지 않겠는가.


어쨌든!! 오늘도 나는 버킷 리스트들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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