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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바람 Jan 03. 2024

엄마의 손맛이 사무치게 그리운 날

"언니, 나 이번에 가서 엄마한테 요리 배우려고."


"갑자기 왜?"


" 나중에 엄마 안 계시면 너무 그리울 것 같아서..."


2023년 12월 한 해를 마무리할 무렵  수원 사는 동생이 조카와 친정에 내려왔다. 유치원에 다니는 조카는 방학이고 잘 나가는 영어학원장인 동생 역시 강사들에게 수업을 맡기는 날이 많다 보니 시간이 많은 편이다. 최근 집안일 해주시는 이모님을 쓰며 요리로부터 해방되어 너무 행복하다던 동생이다. 얼마 전 얘기가 무색하게도 동생은 엄마에게 요리를 배워야겠다고 했다. 이유인즉슨 나중에 엄마 안 계시면 그 맛이 그리울 것 같다나. 나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본 적 있긴 하다. 나중에 엄마가 안 계시면 엄마 음식이 그립겠지. 엄마 반찬이 나에겐 제일 맛난 반찬이긴 하지.



 원래 나는 전주에 이사오기 전까지는 요리를 했었다. 배달이나 외식보다는 집밥을 주로 먹었다. 내가 요리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하나같이 요리하는 내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느리고 부드러운 손으로 칼질하는 게 도저히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나. 흥! 친구들뿐 아니라 동생도 그랬다. 그래놓고는 우리 집에 왔을 때 음식을 만들어주면 의외로 맛있다는 반응을 보이곤 했다. MBTI로 말하자면 대문자 E인 나는 지인들에게 그런 이미지인가 보다.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한 게 맨날 밖으로 나돌기나 하지 결혼 전엔 내가 요리를 해서 누군가에게 대접해 본 적이 없으니까.



  이사 올 때 주방 냉장고를 새로 구입하며 디자인이냐 기능이냐를 두고 갈등하다가 결국 디자인을 선택했다. 그 탓에 새로 산 냉장고는 빌트인이라 크기는 기존 냉장고에 비해 3분의 2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체감하는 냉장고의 크기는 반으로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다. 다양한 식재료를 냉장고에 쟁여두기는 예전에 비해 수납이나 크기면에서 어려워졌다. 집밥을 해 먹으려면 부지런해져야 한다는 소리다. 그런데 친정 가까이로 이사를 오니 엄마가 반찬을 해서 자주 주셔서 어느새 그 생활에 익숙해져 버렸다. 나에게 요리는 자연스럽게도 귀찮고 성가신 일이 되었다.



  심지어 작년엔 휴직 중이라 시간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바쁘던지. 물론 내가 다 찾아내고 만들어낸 일이긴 했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내가 하고 싶다는 이유로 하면서 늘 바쁘다 보니 요리는 언감생심, 제일 뒷전이 되었다. 아이 학원 끝날 시간에 정신없이 집에 도착해서는 저녁을 겨우 차려내고 한숨 쉬는 나날들이 이어지곤 했다. 어떻게 된 게 직장에 다닐 때보다 더 바쁘고 요리할 시간이 없는 건지 참으로 희한하다 싶었다. 친정에 자주 갔다면 엄마 반찬을 얻어와서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년 여름, 나는 잊고 지내던 결혼 전의 일들이 떠올라서 부모님의 얼굴조차 보고 싶지 않아 친정에 발길을 뚝 끊었다. 그러다 보니 엄마의 음식 대신 반찬가게를 이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반찬가게의 음식은 집에서 한 것만 못하고 입에 물렸다. 한 끼 먹으면 그다음 끼니엔 손이 가지 않아 항상 다 먹지 못하고 버리곤 했다.


  

  수원으로 돌아가기 전날 동생이 내게 말했다. 갑자기 엄마 요리를 왜 배우게 되었는지... 이유인즉슨 이랬다. 집에 오시는 이모님께서 엄마 반찬을 맛보고는 수준급이라며 놀랐다고...  나중에 엄마 안 계시면 이 맛 그리워서 어떡할 거냐고. 엄청 생각날 거라고. 살아계실 때 배우라고 했단다. 그래서 그렇게 반찬가게 음식들이, 사 먹는 음식들이 맛이 없었나 보다. 나와 동생은 하지도 못하면서 입은 까탈스러웠던 이유가 엄마의 음식 솜씨에 있었구나. 하긴, 친정에서 밥만 먹으면 매번 과식하는 신랑만 봐도 그렇다. 엄마는 한식 조리사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거니와 몇 가지 재료만으로도 순식간에 뚝딱 음식을 만들어낸다. 동생은 그동안 일해 주시는 이모님이 요리를 잘한다고 극찬을 했었는데 이번에 엄마와의 요리 수업에서 엄마의 새로운 면을 알았다며 나에게 얘기를 해주었다. 무슨 요리를 그렇게도 빨리 해내는지, 그 이모님은 엄마한테 명함도 못 내민다는 것이다. 엄마가 이모님보다 훨씬 잘한다고 놀랍다고 했다. 이제 와서 보니 자기의 빠른 일처리 속도는 엄마를 닮았단다.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고 했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오히려 보지 못했었구나. 이렇게 또 깨닫는다. 나는 아쉽게도 다른 일들 때문에 함께 요리를 하진 못했다. 그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동생에게 말했다.



  "네가 할 줄 아니까 됐네!! 네가 해서 나 주면 되겠어!! "



  작년 말 나는 엄마와 마음속으로 화해하고 다시 엄마의 반찬을 갖다 먹고 있다. 엄마를 용서하지 못했을 때는 신랑을 통해 가끔 주는 그 반찬들 마저 싫어졌었다. 다 갖다 버리고 싶은 맘이었다. 내 안의 분노가 나를 삼키는 듯했다. 나는 여전히 사과받지 못했지만 나를 위해 모든 걸 용서하기로 했다. 그때 엄마와 아빠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그분들을 이제는 이해한다. 나를 위해서... 용서는 나를 위해 하는 것임을 그때 알았다. 결국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은, 그 분노는 그때 용기 내지 못했던 나를 향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결국 미운 건 부모님이 아니라 나였다.



  아직 엄마가 건강하실 때 나도 엄마의 요리를 전수받아야겠다. 나중에 그 맛이 사무치게 그리운 날이 오면 내가 그 맛을 낼 수 있도록. 그런데 엄마 요리의 레시피는 뭐든지 '적당히'라고 하니 내가 제대로 배울 수 있으려나? 적당히가 제일 어려운 법인데 말이지. 뭐 내가 제대로 못하면 동생한테 해달라고 해야지 뭐.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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