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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바람 Dec 06. 2023

보이지는 않지만 다 쌓이고 있어

내가 놓은 덫에 내가 걸리다.

  내가 놓은 덫에 내가 걸려든 기분이다. 난 경제적 자유를 얻어 직업인으로서의 삶이 아닌 자유로운 시간 부자로서의 삶을 살고 싶었다. 내 시간을 팔아서 월급을 받는 삶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삶. 난 내 직업을 현대판 공노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름대로 열심히 경제 공부를 하고 투자를 했고 부모님께 받은 것 없이 시작한 것에 비해 또래들 보다는 나름 자산을 쌓았다. 물론 그 비교군은 비슷한 직업군에 같은 지역에 사는 친구들이긴 하지만... 그런 삶을 위해 워킹맘으로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2년 정도는 매일 경제 공부를 했었다. 영어전담을 맡았던 2년간의 시간이 코로나 시기와 맞물려 그때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는데 그 시기에 영어전담을 맡았던 건 행운이었다. 학급 담임이었다면 피곤에 절은 상태로 아이를 재우며 잠들었을 것이고 공부 따윈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코로나로 인한 인플레이션 시기에 자산의 풍선 효과를 누렸고 내 자산도 그만큼 불어났다. 2021년도에는 나도 곧 은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거품처럼 불어난 자산에 뜬 구름 위에 있는 기분이었다. 함께 투자를 했던 친한 언니와는 ' 이거 신기루처럼 다 사라질 것 같아!! 너무 무서워.' 라고 했었는데 진짜 우리말대로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순식간에.... 그나마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부동산과 주식에 관심을 갖던 21년도부터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너무 무서워져서 나는 욕심을 누르고 눌렀다. 그 덕에 많은 투자자들이 2022,2023년 고통에 신음하는 기간 동안 편안할 수 있었다.



  그랬던 내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내년에 만기 되는 집 한 채, 그리고 올해 입주하는 지방 분양권. 내년에 만기 되는 집은 법인에게 세를 내줬고 그 당시 최고가의 전세금을 받아서 매매가와 전세가가 딱 붙어 있어 당장 집을 판대도 내 수중에 떨어지는 돈은 거의 없는데 역전세가 코앞이다. 세입자가 법인이라 전세일자 조율도 불가능한 데다가 바로 전세금을 내주지 않으면 경매로 바로 신청가능한 전세권도 설정되어 있다. 행여 그때까지 매도가 안되고 날짜 맞는 세입자도 못 구한다면? 내가 그 목돈을 직접 마련해서 줘야는데 나는 지금 휴직 중. 휴직 중엔 교직원공제회 대출도 불가하다.

  


  게다가 요즘 PF 대출이니 뭐니 금융권이 흉흉해서 내년에 전세자금 반환대출을 믿고 있다가 이게 막히기라도 하는 날엔 눈앞이 깜깜해질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방 분양권은 현재 마피 5500까지 나온 상황이니 할 말이 없다. 투자의 대원칙을 깨고 불나방처럼 했던 투자라 결과 역시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기를 치자니 취득세와 낮은 전세가 때문에 도저히 그렇게는 못하겠고 손해 보고 팔자하니 우리 집 남자는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취득세는 풀릴 듯하다가 더불어 민주당의 반대로 막혀버렸고 진퇴양난이다.



  원래 휴직을 할 때는 3년을 쉬겠다고 맘먹고 휴직했는데... 이놈의 부동산 때문에 발이 잡혀버렸다. 내가 농담처럼 했던 이야기가 현실이 된 것이다. 나에겐 아직 휴직이 남아있는데... 자유를 얻기 위해 했던 투자가 내 자유를 앗아가 버렸다. 이 무슨 아이러니한 상황인지... 투자를 안 했다면 대출 따위 걱정하지 않고 맘 편히 쉬었을 텐데 세상에 공짜는 없다. 진짜 부자들은 공부도 더 많이 하고 지킬게 많아 더 피곤하다던데 나는 아직 그 정도는 되지도 못하지만 이걸 그런 상황에 빗대어 생각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난 그 정도 부자의 그릇은 안되나 보다.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싫은 것을 보면 말이지.



  결국 나는 부자가 되기 위해 내가 놓은 덫에 바보처럼 걸려들었다. 그래서 내년에 난 복직하기로 했다. 복직하기로 생각하자 1년간의 시간 동안 이룬 게 없는 듯하여 마음이 더 답답했다. 경매공부, 화상영어, 독서모임 2개, 글쓰기 수업, 사진모임, 독서지도사 자격연수. 나열해 보면 열심히 산 것 같지만 휴직하며 목표했던 경매 낙찰 1건을 못 받았고, 그렇다고 월세를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니고 학교로 돌아가려니 마음이 참으로 착찹했다. 정말이지 다시 돌아가기 싫었다. 뭔가 그만두더라도 믿을 구석을 만들어놓고 돌아가고 싶었다. 언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그만둘 수 있는 든든한 백을 만들어 놓고 싶었다. 열심히는 살았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아무것도 없다. 작년의 일들, 학교에서 겪었던 트라우마들도 함께 떠올랐음은 물론이다. 올해 경매 공부를 함께 했던 정미 언니에게 솔직한 마음을 털어놨다.



" 언니, 나 1년 동안 한 게 없어. 계획한 건 많았는데... 뭔가 바쁘게 살 긴 했는데 눈에 띄는 성과가 없네."


" 아니야, 너 진짜 열심히 살았잖아. 휴직하면서 그렇게 바쁘게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다 쌓이고 있어. 그리고 나중에 빛을 발할 거야."



  그런 내게 정미 언니의 말은 큰 위로가 되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쌓이고 있다는 그 말. 그래 난 보이는것을 얻진 못했지만 자신감을 얻었다. 그만두고 뭔들 못할까. 어디 가서 뭘 해도 지금 이 월급은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 그걸 얻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나를 위로해야겠다. 어차피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선택지는 이것뿐이니까.

장자크 루소의 말처럼 인내는 쓰지만 열매는 달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너무 슬프지만 그 열매를 얻기 위해 참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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