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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더나인 May 05. 2020

40살 연애의 시작과 결혼 도전기

40살 연애의 응원

나는 노총각일 것이다. 노총각이란 홀아비 냄새 풀풀 나는 단어를 나에게 입히고 싶지 않지만 작년 40살이 넘는 순간 순순히 인정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노총각일까? 그나마 덜 노총각이면 조금 위안이 될까 해서 노총각의 기준을 검색해보았으나 명확한 기준이 없어 통계청 사이트를 방문했다.


출처 : 통계청(kostat.go.kr)


1990년 기준 남자의 기대수명은 67.6세, 서울에 사는 남자의 초혼 연령은 28.3세.

2018년 기준 남자의 기대수명은 79.7세, 서울에 사는 남자의 초혼 연령은 33.5세.

(2018년 기준 38세 남자의 기대수명 역시 약 80세 정도이다)


90년대 어렸을 적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자 30세가 넘어가는 나이부터 슬슬 노총각으로 불리기 시작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기대수명의 반에 해당하는 나이를 빼박 노총각이라고 본다면 2019년 기준 약 40세를 노총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순전히 주관적이고 편향적인 기준이다). 어찌 됐든 나는 노총각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생각보단 덜 노총각이었네?라는 사실과 약간의 자신감을 가지고 40살 연애를 시작하기로 했다.



나이가 있다 보니 주로 30대 중반에서 후반의 여성을 만났다. 나이가 든 소개팅 자리에서 단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상대방이 나와 맞는 사람인지 금세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그렇고 상대방도 그렇고 그 간 살아오고 만난 사람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자리에 앉고 나서 몇 마디 나누다 보면 그 감이 오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식사 한 번, 때론 커피 한 잔으로만 자리를 뜨곤 한다.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걸 서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40살의 소개팅이라니 마치 시작부터 중간 보스를 때려잡아야 할 것 같은 극강의 난이도 게임에서 우여곡절 끝에 그녀를 만났다. 그녀를 보자마자 나와 비슷한 톤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생각, 감정선, 취향, 마음 씀씀이, 단어의 선택, 살아온 궤적 같은 것들이 나와 비슷하여(심지어 외모도 비슷하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넘쳐났다. 이렇게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고 이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 40년의 세월을 기다린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은 이제 전혀 아깝지 않았다. 나는 이 만남을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다. 내 기준의 기적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은 2002년 월드컵 이태리 전의 안정환 선수의 역전골 무게감 정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40살의 연애라고 해서 뭔가 특별할까 생각했지만 이전의 연애와 다르지 않았다. 맛있는 거 먹고 영화 보고 산책하고 차 마시고 눈을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누고.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체력이 예전과 같이 않다는 것이다. 쉬 피로해하는 3살 연하의 그녀는 주말 중 하루는 집에서 충전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기에 주중 1회, 주말 1회 만나는 루틴으로 데이트를 했으며 가급적이면 이동을 줄이는 방향으로 데이트 동선을 짰다. 새삼 체력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됐고 그녀는 중단했던 크로스핏을 다시 시작했다. 나 역시 40살 이후 줄어드는 체력과 근육량을 보완하기 위해 입사 이래 처음으로 사내 헬스장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40살의 연애는 체력 단련을 동반한다.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인지, 연애하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나자 결혼에 대한 초조함이 극에 달했다. 만약 나이가 조금 더 어렸더라면 이렇게까지 초조하지 않았을 텐데. 나이에 대한 압박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나는 속으로는 무거웠으나 겉으로는 무겁지 않게 앞으로의 미래를 같이 그려가자는 얘기를 그녀에게 했으나 그녀는 아직 결혼에 대한 생각은 좀 이르다는 답변을 했다. 한 달 만에 결혼 얘기를 꺼냈던 내가 조급했고 오히려 그녀에게 부담을 준 것 같아 후회되었지만 일말의 희망적인 얘기를 들을 수 없었다는 게 더 마음이 쓰렸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씁쓸한 발자국이 깊이 남겨졌다.



그날 이후의 연애는 초조함이라는 시큰한 시럽이 토핑된 달달한 케이크를 먹는 기분과 같았다. 데이트하는 동안의 즐겁고 행복한 시간과 혼자 있는 동안의 초조하고 불안한 시간을 각각 겪었기 때문인데 이는 그전에는 전혀 경험한 적이 없었던 연애의 맛이었다. 새로운 맛에 적응을 해야 하는지 새로운 케이크를 찾아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고 경험자의 조언이 간절했다.



어느 날 아직 미혼인 지인과 통화를 하다가 내 연애 사실을 알리게 되었고 나의 고민도 같이 얘기를 했다. 아무 생각하지 말고 딱 6개월만 만나보고 결정을 하라는 것인데 6개월이 지나 41살이 된 나를 생각하니 노총각 레벨이 한층 업그레이드된 '나' 자체가 쉽사리 그려지지가 않았고 너무나 먼 얘기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뒤이어 '너는 충분히 매력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그때가 되어도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야'라는 말이 괜한 빈말로 느껴지지 않아서 그 한 마디가 나에게는 아주 큰 힘이 되었다.



주위 사람들의 조언으로 어느 정도 초조함을 버릴 수 있게 되었고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내 시간에 조금 더 집중했다. 회사 일에 집중하여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고 준비하고 있는 자격증 공부 시간도 늘렸다. 운동도 꾸준히 지속했으며 나를 위한 작은 사치도 가끔 부렸다.



초조함의 감정은 긍정적인 감정이 아닌데 그 초조함이 나를 옭매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상대방도 그 감정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을 것이고 그 감정 때문에 우리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나이가 들어서도 연애는 참 힘들구나. 결혼을 고려해야 하니 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2개월 동안 제주도에 함께 가고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새해가 밝아 41살이 되었으며 스키장을 다녀왔다. 초조함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기에 조만간 다시 한번 결혼 의사를 물으리라 부정적인 대답이 돌아온다면 결단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던 차에 그녀가 먼저 얘기했다.


'아이가 너무 예뻐 보여. 우리도 조만간 아이를 가져볼까?'


그녀와 나는 슬램덩크 명장면으로 꼽는 그 하이파이브를 했다.



내 인생의 명장면이었다.


그리하여 40살에 기적같이 그녀를 만나 연애를 시작하고 41살이 된 올해 6월 마침내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다.


40대 초반 미혼 비율이 20년 전 30대 초반 미혼 비율보다 오히려 더 많다


이제 40살은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니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때이다. 기대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에 40이 주는 압박감을 버리고 자존감을 높이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치가 있지 않은가. 이 경험치를 가지고 뭐든지 시작하기 좋은 나이라고 생각한다. 뻔한 얘기 같지만 기본적인 게 가장 어려운 법. 초조함을 버리면 여유가 생기고 주위에서도 자신감 넘치고 매력적인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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