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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자 Dec 22. 2016

까술레 (Cassoulet)와 로댕 (Rodin)

학부생들에게 강의를 하러가면서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강의에 흥미를 갖도록 할까입니다. 제가 가르치려는 미술사가 저한테만 재미있는거죠. 더군다나 미술 작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하기전에 과연 학생들이 역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을까하는 의문점이 크고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시대적으로 지리적으로 미국에서 멀 수록 심합니다.


아래의 작품은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오귀스트 로댕 (August Rodin, 1840-1917)의 깔레의 시민 (The Burghers of Calais, 1884-9)입니다. 서울의 올해 없어진 플라토 미술관 (로댕 미술관으로 개관)에도 있었죠. 전 세계에 12점이 나뉘어져 있고, 아시아에서는 도쿄의 국립서양미술관과 서울에만 있었지만 이제 도쿄만이 남았네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Gallery 548, 페트리 코트 식당 (Petrie Court Cafe) 바로 옆에 있습니다. 갓 돌을 지난 조카가 이 주변의 조각상들을 만져서 기겁하고 미술관을 나온 기억이 있습니다 ^^;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백년전쟁을 알아야 합니다. 프랑스의 도시 깔레에서 로댕에게 백년전쟁을 기념하기 위한 조각상을 만들어 달라고 의뢰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에게 백년전쟁 (Hundred Years’ War, 1337-1453)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흥미를 더 가질까 싶어 요리 얘기를 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고, 까술레(Cassoulet)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까술레는 프랑스 요리로 바로 백년전쟁때 탄생했다고 전해집니다. 사진에 보이듯이 솥에 흰 콩과 고기류 (소세지, 닭, 오리 등)와 야채들을 섞어 끓이는 요리입니다.


이것저것 재료를 넣고 만드는 요리로 미국의 캐서롤 (Casserole)과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전혀 다른 요리입니다. 추수감사절이 다가오는 이맘 때면 캐서롤 파티를 위한 이런저런 레시피들이 요리방송에 마구 쏟아져 나옵니다. 사진에서 보이듯이 원하는 재료를 넣고 오븐에서 구워내는 것입니다. 그라탕(gratin)과 비슷하지만 두 개의 요리는 사용하는 그릇이 조금 다릅니다. 이 두 개의 요리도 까술레와는 완전 다른것이죠. 까술레는 오랜동안 약한 불에서 뭉근히 끓이는 요리입니다. 재료도 꼭 흰 콩과 고기류 중 하나가 들어가야 하죠.

백년전쟁은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일어난 전쟁으로 엄밀히는 116년 동안 치뤄졌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전쟁한 것은 아니고 휴전기간이 중간중간 있었습니다. 잔 다르크 (Joan of Arc, 1412-1431)가 바로 이 전쟁시기에 나온 영웅이었죠. 영국의 플랜태저넷 가문 (House of Plantagenet)과 프랑스의 카페왕조 (House of Capet)를 계승한 발루아 가문 (House of Valois)사이의 싸움이기도 한데, 프랑스의 카페 왕조의 마지막 왕인 샤를 4세 (Charles IV, 1294-1328)가 왕위를 계승할 후세를 남기지 못하고 죽은거죠.


그러면 가장 가까운 남자 친척을 찾아야겠죠? 왕위를 계승할 후보가 둘 있었는데 영국의 에드워드 3세 (Edward III, 1312-1377)와 발루아 가문의 필립6세 (Philip VI, 1293-1350) 였습니다. 에드워드 3세는 샤를4세의 조카로 어머니가 이사벨라 드 프랑스 (Isabella of France, 1295-1358)로 프랑스 왕실 가문인 카페 가문에서 영국으로 시집와서 에드워드 2세와 결혼해 에드워드 3세를 낳은거죠. 1326년 에드워드3세가 왕위를 계승했을 때 14세에 불과해  1330년까지 섭정을 하며 실질적으로 영국을 다스렸습니다. 샤를4세는 그녀의 오빠였으니 에드워드 3세의 외삼촌이었던거죠.

그런데 영국의 왕이 프랑스의 왕까지 된다는 것이 받아들여질리가 만무했습니다. 모계를 통한 왕위계승을 금하는 고대의 살리카법전 (Salic Law)를 들고 나옵니다. 부계로 따져보니 샤를4세와 이사벨라의 삼촌인 샤를 드 발루아 백작 (Charles, Count of Valois, 1270-1325)의 아들인 필립6세가 있었던거죠. 발루아 백작은 카페 가문 출신으로 발루아 가문을 연 사람입니다. 당시 에드워드3세는 16세였고 필립6세는 35세로 어린 에드워드는 이런 상황을 따를 수 밖에 없었죠. 그러다 10년 뒤인 1337년 백년전쟁을 시작하게 됩니다.

백년전쟁의 전장은 주로 영국과 가까운 프랑스 북부 지역이었고 깔레 (Calais)도 주요 격전지였습니다. 지도의 빨간점에 표시된 곳이 깔레인데 도버해협만 건너면 바로 영국입니다. 프랑스로 들어갈 수 있는 항만 도시를 에드워드3세 (Edward III, 1312-1377)가 1346년 점령합니다. 깔레의 포위 (Siege of Calais)로 불리는 사건으로 프랑스의 필립 6세는 깔레 시민들에게 끝까지 항거할 것을 부탁합니다.

깔레 시민들은 절대로 영국에 굴복해 영국국민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격렬히 저항하게 되는데, 깔레는 이미 100년 전에 쌓아올린 성벽과 2중 해자 (moat)로 둘러싸인 요새 도시였습니다. 성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저항했던거죠. 그 기간이 1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성벽안의 깔레 시민들은 먹을 것이 없게 됩니다. 그 때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것이 바로 까술레라는 요리입니다. 요리 재료뿐 아니라 식수도 보급이 끊긴 터라 채소를 넣고 오래 끓여 그 자체에서 나오는 수분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죠. 당시 많은 깔레의 시민들이 굶어 죽고 결국 항복하게 됩니다.


그러자 에드워드 3세는 성문을 여는 열쇠를 넘기고 목숨을 바칠 희생자를 요구합니다. 여섯 명의 깔레 시민이 자원합니다. 이 여섯 명의 시민이 올가미를 목에 걸고 나오는 장면을 로댕이 조각한 작품이 바로 ‘깔레의 시민’입니다.

그런데 깔레시는 로댕의 조각이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영웅적이고 자랑스러운 모습의 조각상을 바랬는데 온통 고통과 슬픔만이 보이고 기존에 기념상들이 높은 받침대위에 올려져 시민들이 우러러 보는 방식으로 전시되는데 반해 로댕의 조각상은 바닥에 그대로 놓여 지나가는 행인과 부딪힐 정도라는 거였죠.


백년전쟁과 로댕을 생각하며 까술레를 만들어 보는건 어떨까요? 뉴욕 타임즈 레시피 링크합니다. http://cooking.nytimes.com/recipes/1017938-cassoulet

뉴욕에서는 Benoit나 Le Village같은 곳에서도 팔 것 같은데, Yelp에도 나오네요~ https://www.yelp.com/search?find_desc=best+cassoulet&find_loc=New+York%2C+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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