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뛰어들어 지켜 더 크게 안아」 독후감상문
독립서점 1세대 <유어마인드>의 대표이자
<언리미티드 에디션> 북페어의 기획자인
이로 작가의 첫 소설, 「뛰어들어 지켜 더 크게 안아」
나는 아이돌이나 연예인을 열심히 좋아해 본 적이 없다. 특히나 이성으로써는 한 번도 없다. 그 사람과 만나서 뭘 하고 싶다거나 심지어 연인이 되는 상상을 하며 좋아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나로서는 잘 공감이 되지 않는다. 배우가 멋져 보이는 건 작품 속 역할과 배우가 잘 어울려서이지 사생활에서의 그가 어떨지는 완전히 다른 얘기니까. 어쨌거나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덕후들이 보여주는 숫자를 생각해 보면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까지 했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좋은 걸까?
아이돌 찐덕후. 그녀는 어느 날 자신의 최애로부터 DM을 받는다.
짧은 분량, 흥미진진한 전개, 군더더기 없이 정갈한 문장, 긴 여운을 남기는 결말과 아름다운 편집. 모든 것이 사랑스러운 책이다.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하게 될 책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덕질에 어떤 마음이 깃들어있는지 주인공의 눈을 통해 그를 본다. 빛나는 별처럼 아름다운 나의 스타. 나의 최애.
나는 다른 팬과 접점이 없다. X의 팬과 온라 인으로 교류하지 않는다. 의견을 나누지 않는다. 그래서 싸울 일도 없다. 온라인에서 그러니 오프라인에선 더하다. 다른 팬들과 나란히 앉아 있어야 할 때도 가만히 침묵을 지키며 있다. 그래야 이 자리가 나에게 일대일의 공간이 된다. 눈치 보지도, 다른 사람과 공간을 스캔하지도 않는다. 침묵을 견딜 수 없다면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좋아하지 마세요. 짝사랑은 무응답까지도 응답의 일종으로 여기는 거예요.
이뤄지길 바라는 게 아니라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까지 이루며 사는 거예요. 일상에서 만난 사람이 X를 좋아한다고 대뜸 말할 때도 "아 그 래요? 그 사람 괜찮죠" 정도로 웃으며 넘긴다. (p. 46)
무리를 형성하려고 X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외롭지 않으려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허전해서 마음을 뺏긴 게 아니다. 마음을 뺏긴 게 먼저고 허전해지는게 다음이다. 뛰어 들어서, 지키고, 더 크게 안는 거다. 사랑에 빠져서 그 사랑에 몰두하지 못하는 순간이 아까 워 이 순간마저 함께하고 있다고 상상할 뿐인 거지 뭐가 아쉬워서 공허를 채우자고 마음을 쏟겠어. 누군가를 이토록 집중해 좋아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애정의 정도'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의견을 더하는 게 우스울 뿐이다. 적당한 정도를 설정해 두고 그 외의 것은 비정상적인 사랑으로 치부하는 것, 중독된 무언가 혹은 희생된 무언가로 넘겨짚는 것도 지긋지긋해. 그들은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 그게 뭔지 내 손으로 떠먹여 주지 않을 거다. 평생 놓치고 살아라. (p.48)
고백컨데 나에게 덕질은 엄청나게 많은 팬이라는 집단의 요란하고 이해할 수 없는 취미생활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마음을 알고 보니 그들은 내가 모르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 나는 못해본 사랑. 내가 빠져보지 못한 사랑. 나는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분명하고 확실한 사랑. 부럽다. 그리고 좀 분하다. 왜 나는 사랑에 빠지지 못한 거야. 왜 그 사랑을 모르는 거야.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다. 그런 존재가 없는 삶과는 확연히 다르다. 짝사랑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의 미소가 오직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그는 영원히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를 테지만 그 사람의 안녕과 행복을 응원하는 그런 마음. 그래서 오히려 더 이상적인 사랑의 형태에 가까운 마음이 짝사랑이고 덕질은 그 분야의 최종보스가 아닌가 싶다. 받을 것을 1도 기대하지 않는 마음으로 오직 주기만 하는 사랑이라니. 부모도 자식에게 온기든 애정이든 받는 것이 있는데 아이돌은 정말 아무것도 나만을 위해 주는 것이 없는 상대지 않은가 말이다. 독점하지 않아도 괜찮고 그저 그의 모든 것을 추앙하는 마음이란 사랑 말고 뭐라 설명할 길이 없다.
부럽다. 사랑에 빠져있는 이 세상의 모든 덕후들이 참 부럽다.